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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Aug 13. 2023

공주님 안기로 입원 온 환자분

사랑꾼 노신사

사랑꾼에는 나이가 없나 보다. 70대에 백발을 하신 노신사가 아내분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 입원을 오셨다. 

다른 병원 환자복을 입고 계시던 아내분은 작은 키에 마른 체구로 남편만 바라보고 계셨지만, 노신사께서는 환자를 바라만 보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타 병원에서 어떤 검사와 시술들을 받았는지, 지금 복용 중인 약물과, 교수님께 전해 들은 앞으로의 치료계획까지 상세히 말씀하셨다. 서류로 떼오신 소견서 등의 의무기록들과 전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환자분들의 나이가 지긋해지시면 그동안의 기록들도 함께 누적이 된다. 더군다나 하나의 질환만을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약의 종류만 해도 열 가지가 넘어가게 된다. 잘 모르겠다며 알아서 잘해주십사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노신사께서는 모든 치료과정에 하나하나 동참하고 계셨다. 그 가운데 어떠한 무례나 반감도 없으셨다. 종종 의료진을 믿을 수 없어 의심의 씨앗으로 시작된 과정과는 상이한 부분이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 걸까, 내 평생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할 수 있을까' 존경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환자분 역시 남편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셨다. 환복마저 같은 성별의 간호사가 아닌 남편의 손에 맡기셨다. 식사와 거동 모두 스스로 하지 못하시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남편을 찾으신 지 오래되신 듯했다.



사소한 문제로 입원하셨던 거였다면, 지금의 나한테도 예쁜 기억 하나로 남겨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환자분은 암이 오래 진행된 상태셨고(어떤 암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배변을 할 수 없어 장루를 통해 대변을 배출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전 병원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출혈의 징후인 헤모그롤빈의 수치가 정상이하로 나타나 큰 병원을 찾으셨던 것이다. 암은 말기였고 큰 수술을 견디실 만큼의 건강상태도 아니었어서 다른 병원에서는 치료를 거부받으시다 겨우 오셨다고 했다. 아내가 한 달이라도 더 살게 해 달라며 간청하셨다는 이야기도 얼핏 건너 들었다.



불행히도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기셨고 헤모글로빈의 수치 역시 지속적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갑자기 환자가 말을 하지 않는다며 노신사께서 평소와는 달리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여기 좀 와주세요!" 이상한 느낌에 하던 일을 멈추고 가보니 환자분은 동공이 풀린 상태로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곧 병동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달려와 응급카트를 펼쳤다. 혈압이 너무 낮아 기계로는 측정이 되지 않는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맥박이 있었다. 승압제를 사용하고 산소를 때려 넣으며 중환자실로 옮겨드리는 것까지, 병동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보통 응급상황이 되면 보호자 응대는 나중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의료진에게 환자 곁을 내어주고 한편에 물러나서 안절부절 상황을 지켜보시거나, 차마 보지 못하시고 나가계시기도 한다. 긴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중환자실에 인계를 위한 통화를 하다 그제야 무너져내리는 노신사를 발견했다. 다리가 떨려 서 계시지 못하고 벽을 붙잡으며 주저앉으셨다. 조용히 흐느끼며 울음을 참고 계시는 것을 보며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그 와중에 인계에 방해가 될까 염려하시는 마음이 숨 막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치료과정에 충실히 관여하시면서도 날 서지 않았던 모습들이 다시 한번 상기가 됐다. 그저 치료에 더 도움이 될까 하는 작은 바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서있을 때 마저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셨다는 점이었다.  



간호사로 환자를 대하면서, 종종 필요한 부분을 알아차려 챙기곤 했다. 간지러운 부분을 대신 긁어주는 손이 되어,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라포를 쌓고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들었다. 언젠가부터 컨디션에 따라 주변 사람을 챙기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내게 중요한 루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노신사를 만나고 뒤통수를 턱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에게 여유가 있을 때 주변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희생이었다.
중요한 본질을 여운이 오래 남게 새긴 순간이었다.



그 후 환자분은 중환자실에서 회복하고 원래 있던 병원으로 옮겨가셨다. 혈액 수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고, 어쩌면 임종 전에 함께 보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국이 있다면 이런 분들을 위한 곳일 테니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공주님 안기를 하고 산책을 다니시지 않을까,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손을 꼭 잡으시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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