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Aug 20. 2023

장애아 둔 엄마의 구원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던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애석하게도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가 별이 된 게 엄마의 구원이었다.



진호(가명)는 18살의 소년이었다. 아주 말랐지만 키는 제법 커 160 후반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새하얀 피부에 창백한 얼굴로 하루 24시간 그리고 1년 중 365일을 누워 있는 진호는, 그렇게 지낸 지가 몇 년 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차마 묻지 못했지만 어쩌면 태어나 한번을 걸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진호와 어머니는 소화기내과에 있다가 호흡기내과로, 온갖 짐을 싸들고 이사를 왔다.(병원에서는 전동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타 지역에서 살던 귀족이 수도에서 데뷔탕트를 하듯, 진호의 어머니는 새로운 엄마들의 모임에 발을 들였다.


엄마들의 연대는 어디서든 가히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맘카페의 영향력은 동네 장사를 뒤흔들고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목소리에 법이 제정되기도 한다. 가끔 방향을 잘못 잡아 요즘은 학교 선생님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내 아이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엄마들의 사념이 자리 잡고 있다.


병원에서 환아들의 어머니 모임 역시 굉장한 유대감과 결속력으로 다져져 있는데, 아픈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건강하게 나아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천 번은 들었을 텐데, 그저 미안한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진호의 어머니는 치료과정이나 병원 생활에서의 꿀팁을 쏟아내며 끈끈히 묶여있던 어머니 모임에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계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모임의 한가운 데에 있었다. 거기에 의료진들과도 살갑게 지내시며 가끔 지나친 요구를 하는 보호자를 달래고 병원의 절차를 대신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진호의 상태는 조금씩 나빠져가고 있었다. 크게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기보단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계였던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자그마한 자극이 방아쇠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그날은 특히 심장과 관련된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건강한 아이는 엄마와 손잡고 검사실을 갈 테지만, 중환아는 그렇지 않다. 침대 옆에 설치되어 있던 각종 기계들과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한 응급물품을 침대에 모두 싣고 이송원, 보호자, 인턴, 때로는 주치의까지 동행해 이송을 하게 된다.  


당시 진호는 약물을 정밀한 속도로 주입하는 기계, 인공호흡기, 활력징후를 모니터링하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통째로 들어 이송용 침대에 옮긴 뒤 각종 기계를 싣고 진료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병동을 나가지 얼마되지 않아 어디선가 진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동 밖의 소리에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눈물범벅이 된 어머니와 피가 범벅이 된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찔했다.


아니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줘요

침대를 옮기며 조금씩 위치가 달라진 기계들이 지홍이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기관절개관의 구멍이 넓어져 가끔 출혈이 생겼던 게 결국 동맥을 건드렸던 것이다. 목에 있던 구멍으로 혈액이 솟구치며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이유였다. 주변에 있던 의료진이 다 뛰어와 환자를 침대째 병동으로 옮겼다. 흔치 않은 상황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혈을 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을, 어머니는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듯했다. 비명인지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와 다른 어머니들이 부축해 병동을 나가는 소리가 한참을 들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꽤 흐르고 교수님이 사망선고를 하시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돌아오셨다. 그간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 이겨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극복하리라 하는 작은 희망을 들고 오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많이 달랐다.


온 세상이 아이였을 어머의 삶에 갑자기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했다. 나는 진호의 어머니가 학원가를 돈다는 헬리콥터 맘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아이만을 보고 살았을 거라고 맹세한다. 먹고 자고 숨을 쉬고 배변을 하는 모든 과정이 어머니의 케어 없이 불가능했을 진호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였다. 반대로 어머니에게도 진호가 세상의 전부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중환아를 향한 어머니들의 집착과 같은 헌신에는 보람이 따라오지 않는다. 기적에 가까운 희망을 좇으며 많이 나빠지면 입원을 하고 조금 나아지면 집에서 돌보며 그렇게 십여 년을 지낸다.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겐 이렇다할 선택권이 없고 방치할 경우 방임이 되기 때문에, 학에 가까운 어머니들의 돌봄 아래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연대가 병원에서 유독 끈끈하게 형성된 것도, 각자를 위로할 몇 안되는 방법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진호가 퇴원처리 되고, 어머니가 그간의 짐을 정리하러 다녀가신 뒤 다른 보호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며 들었다. 또 다른 환아의 어머니가 같은 입장이기에 꺼내실 수 있었던 말이었다. 어떠한 표정 하나 없이 무뚝뚝하게 보호자의 애환을 설명하신 그 말에, 순간 섬칫하고 오래 애달팠다.


엄마한텐 차라리 구원이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고 이송원님이 살짝 와서 진호 어디 갔냐고 물어보셨다. 한참 머뭇거리다 멀리 갔다는 말에 더 묻지 않고 바로 눈물을 떨구셨다. 또 며칠 뒤 보안팀 직원분들과, 조리사님도 진호를 찾았다. 말 한번 섞어보지 못한 진호를 물으며 다들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진호 어머니는 구원을 받으셨는지 시간이 많이 흘러 자유로워지셨을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를 볼 때마다 종종 생각이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홀로 입원한 그의 사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