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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Jan 06. 2024

산복도로 한복판, 언론의 역할을 묻는 빨래방이 있다

하루한권독후감 20240104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20240104] 김준용·이상배,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남해의봄날, 2023.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권력의 감시, 진실을 향한 투쟁, 약자 보호 등 꽤 거창한 얘기들이 단번에 떠오른다. 모두 매우 중요한 얘기지만 결국 언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최근 故 이선균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행태에서도 볼 수 있듯 작금의 언론은 사람을 중시하기는커녕 도리어 비인간적이라고 느낄 때가 적잖다. 


이런 와중에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무작정 빨래방을 연 기자들이 있다. 바로 <부산일보>의 김준용·이상배 기자다. 지금은 <부산일보>에서 일하지 않는 PD 두 명도 함께 했다. 디지털미디어부에 속한 이들은 회사로부터 2천만 원을 지원받고 부산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열기로 결심한다. 부산을 둘러싼 22킬로미터의 산복도로(산허리를 지나는 도로라는 뜻)가 담고 있는 부산의 근현대사 이야기를 찾기 위해 그들은 호천마을 산복도로에 산복빨래방을 차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인부들조차 도망갈 정도의 산동네에서 저자들은 때로는 건설자재를 함께 옮겨가며 빨래방 공사에 열중했다. 동아리방을 셀프인테리어한 경험으로 무작정 덤빈 빨래방 타일 공사는 정작 세탁기와 건조기가 들어오니 거의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고 한다. 


빨래는 무조건 공짜. 세제와 섬유유연제, 전기세와 수도세도 모두 <부산일보>에서 지원했다. 산복도로 계단을 뛰어가며 홍보를 하고 왜 총각들이 여기서 빨래방을 하냐는 질문에는 "호천마을 어머님들이 젤 미인이시고 젤 아름다우셔셔 이 마을에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95쪽)"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네 명의 기자와 PD 혹은 빨래방 직원들이 아침 9시부터 빨래 준비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나섰다. 그렇게 176일 동안 504개의 빨랫감을 세탁했다. 25개의 기사와 39개의 영상물은 덤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그들이 발굴한 호천마을 주민들의 삶은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다. "신발공장 그만둔 뒤로 아직도 '나이키'를 안 신는다카이. 그때 시달린 기억이 너무 남아 가지고(75쪽)"라며 신발공장에 학을 떼면서도 현덕순씨는 지금도 신발창을 붙여 납품하는 일을 부업 삼아 한다. 


매달 10일 월급날마다 쌀 한 가마, 보리쌀 열 되, 연탄 100장에 "우리 시엄니가 좋아하시는 막걸리까지 사 가지고 가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76쪽)"라며 장사꾼과 외상값 받으려는 식당 주인들로 북적거리는 월급날 공장 입구를 회상하는 현덕순씨의 얘기에는 근면성실만이 유일한 정답이자 활로였던 그 시절, 유일한 환락의 하루였던 월급날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산복빨래방의 첫 손님인 이영희씨는 스무 살 때 일면식도 없는 군인의 편지를 받았다. 알고보니 농사를 도우러 인근 마을에 지원을 나갔다가 그 마을에 있는 사촌언니가 갑작스런 중매를 선 것이다. 아직 결혼 생각이 없던 영희씨였지만 편지 속 사진을 보곤 마음이 달라졌다. "사진을 보니까 얼마나 잘생겼던지. 거기에 홀딱 반해 가지고 한번 만나 보기로 했지(109쪽)"라는 마음에 만난 둘은 얼마 안 가 결혼했다. 


경북 의성에서 농사로는 생활을 감당치 못할 것 같아 한 달 된 딸을 등에 없고 시댁 식구와 다 같이 부산으로 떠났다. 그렇게 영희씨는 50년째 산복도로에 살고 있다. 마을 공용 우물은 너무 사람이 몰려 산꼭대기에 있는 절까지 가서 빌고 또 빌어 겨우 물 한 동이 얻을 수 있는 시절에 호천마을에 와서 그런지 영희씨는 지금도 "집에 있는 큰 고무 다라이에 물을 가득 채워 놓으면 어찌나 마음이 좋던지(112쪽)"라고 생각한다. 일 년에 열두 번 제사는 힘들었지만 먹을 게 없던 시절 제사만큼 또 재미난 일은 없었다고 추억한다. 


이런 돈 주고도 못 듣는 얘기들에 빨래방 직원들은 공짜 빨래로만 보답하지 않았다. <부산일보> 사진부의 지원으로 이야기값에 공짜 사진도 포함됐다. 손님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영정 사진을 찍어 달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나 "영정 사진보다는 어머님, 아버님의 바로 지금,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담기로 말이다. 가족사진 말고, 꽃 사진 말고, 초점 나간 사진 말고 제대로 찍은 예쁜 어머님, 아버님 사진을 남겨 드리자(141쪽)"라는 쪽으로 직원들의 생각이 모였고 그날 하루 산복빨래방은 산복사진관으로 둔갑했다. 


저자들의 이러한 좋은 의도와 목적과 별개로 오늘날은 내가 좋아하는 방송과 드라마, 웹툰과 유튜버·스트리머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는 솔직히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제아무리 잘 만든 컨텐츠라도 누군가가 봐야 성공이라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 참신한 기획으로 여러 언론상을 탔지만 산복빨래방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4천 명, 평균 조회 수는 1500회 남짓. 객관적으로 성공했다고 하기 힘든 수치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시도가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기자로서, 그것도 지역 언론 기자로서 알리고 싶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전달할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다. 산복빨래방은 이런 고민이 더 많은 시도로 이어져도 괜찮다는 응원처럼 내게 남아 있다(195쪽)" 


우리 언론이 저자들이 말한 것과 같은 고민과 시도를 하길 바란다. 당장 성공하진 못할지언정 결국에는 성공의 길과도 맞닿아 있음을 진정 언론의 역할을 고민해본 이라면 알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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