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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Feb 24. 2023

라Z?

라때와 MZ 사이에서

 조퇴하고 집에 들어와 누웠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빅보스께서 며칠 전 회식 때 안 쓰는 자전거를 주겠다고 하셨었는데 그 자전거를 오늘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빅보스의 집은 버스를 타고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조퇴를 했음에도 자전거를 받기 위해 빅보스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MZ와 라때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서른에 회사에 입사했다. 여자치고는 굉장히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셈이다. 모두가 꺼려하는 회사 산악회를 나는 자진해서 가입했다. 백수생활을 할 때 회사 산악회가 굉장히 좋아 보였다. 산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데 산악회비만 내면 회사에서 차도 섭외해 주고 길도 알려주고 아침 점심 김밥에 저녁식사까지 챙겨주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산악회 부총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는 산악회가 싫어졌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산에 가기 전 날에는 마트에서 과일이며 사탕이며 과자 같은 것을 사서 1인분씩 포장을 했고 당일 새벽에 일어나서 김밥을 수령해서 배부하고, 명단을 들고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지 챙겼다. 산행이 끝나고 나면 수고했다고 주시는 술 한 잔, 한 잔을 모두 받아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버스에 뻗어있다가 회사에 도착하면 쓰레기며 짐을 챙기고, 모두를 배웅했다. 산에 한 번 다녀오면 2주 정도는 그로기상태로 골골댔다. 회사에 일을 하러 오는 건지 산을 타러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질 즈음 지부를 옮기며 산악회를 탈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회사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기가 부총무를 맡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가입하기를 권했다. 전기자전거도 가입할 수 있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는데 여자는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가입했다. 첫 라이딩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두 번째 라이딩, 가을 라이딩에 전기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 모두에게 비겁하다, 얌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하하, 웃었다. 여의도에서 양평까지 라이딩을 했는데 다음 날 근육통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전기자전거로는 로드자전거나 MTB자전거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물론 빠르게 달릴 수는 있지만 배터리가 방전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 가야 하므로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저속으로 달렸다. 오르막에서는 남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었고 평지나 내리막길에서는 모두를 보내고 혼자 경치구경을 해야 했다. 민폐였지만, 그래도 모두와 함께하는 활동은 재미있다. 올 3월 봄맞이 벙개 라이딩이 계획되어 있다. 빅보스에게 자전거를 받았으니 필참이다.


 15년 전 백만 원 넘게 주고 구입했다는 MTB 자전거는 가볍고 잘 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면서 생각한다. 얼마 전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회식 때 3차 노래방에 가기 싫은 사람은 집에 가라고 모두 보냈다. 상사에게 깨졌지만 그래도 뿌듯했는데 다음 날 출근해 보니 선택받은 사람만 노래방에 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은 노래방에 같이 가고 싶었던 걸까? 어렵다. 입사 8년 차. 중하급 직원의 위치에서, MZ와 라때의 중간에서 고민이 많다. 일 잘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도, 착한 사람도 못되지만 주어진 일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주변의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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