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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Sep 27. 2024

어느 시각장애인의 죽음

2024년 9월 24일.

아직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화요일 낮 13시.... 국회의사당 앞엔 전국 각 지역별로 모여 앉은 300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로 인산인해다.

지난 9월 4일 스스로 세상을 등진 시각장애인 故 장성일 씨의 아픔에 동참하려... 또한 허울뿐인 활동지원법에 대한 개정을 촉구하는 성난 시각장애인들이 다시 한번 길바닥에 앉아 시위를 한다.

눈을 감고, 나 하나 추스르며 사는 것도 가시밭길처럼 힘든 일인데 매번 이렇게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람이 죽어나가도록 뭔가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 해마다 안마바우처 사업을 하는 안마원을 시, 구청 직원 한 두 명이 와서 감사를 하는 것은 으레껏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고인의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듯했다. 그러자 카운터에 앉아 대신 글씨를 써 주고 있는 직원더러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느냐 물었고, 자연스럽게 활동지원사라는 대답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활동지원사는 그야말로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생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위법이라며 자기들 마음대로 규정한 개똥 같은 법이 존재한다.

장애의 경도에 따라 각 장애인들마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며 사업장에 취업한 근로장애인에게는 근로지원인 서비스도 제공되는데 한 명이라도 장애인 직원이 고용되어야지만 근로지원인이 파견되고 1인 자영업자에게는 지원되지 않는 서비스였다.(으나 올해 부터 1인 사업장에도 근로지원인 서비스가 마련되었지만 아직 시범 단계일 뿐이며 예산도 부족하다)

비장애인들은 1인 사업자라도 계산도 하고, 응대는 등 바쁘기는 해도 혼자서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눈이 필요하니 가족이 돕지 못한다면 비장애인 고용인이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이 그렇듯 대부분은 벌이가 시원찮다.

가뜩이나 인건비도 많이 오른 데다 안마 바우처 수가가 한 사람당 1회 42,000원인데 하루에 방문하는 바우처 고객이 그리 많지도 않기에 겨우 벌어 겨우 먹고사는 1인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어서 직원을 따로 고용할 처지가 못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활동지원사 제도가 있지만 생업에 직접적인 관련이 되는 일은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으니  그들이 말하는 1인 시각장애인 업장의 예를 들면 이렇다.


활동지원사가 출퇴근 보조를 도와 안마원에 함께 출근한다.

고객이 들어와 인사를 하는데 처음 듣는 소리이거나 잡상인이라면 그것을 지켜보던 활동지원사가 누구시냐 물어서 고객이면 생업지원이고 아니면 활동지원이 되는 것이다.

바우처 고객은 정해진 단말기로 결제를 해야 하고, 차트에 수기로 일시를 적고, 사인을 받고, 자부담금 4,200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것에 개입하면 생업지원이 되는 거다.

지폐에는 점자 모양의 표식이 되어있어 시각장애인이 만져보고 금액을 알 수 있도록 해놨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평편화 되어 손감각으로 알기 힘들고 같은 금액의 돈이 있을 때는 크기 비교가 되지 않아 얼마짜리 지폐인지 알기 힘들 때가 많다.

내 남편도 택시 기본요금이 3천 원이던 시절 만 원짜리 세 장이 삼천원인줄 알고 지불하고 돌아와 돈을 세어보니 삼만 원이나 지불한 것을 알게 되었고 기사는 그 돈을 받으며 이게 웬 떡이냐며 싱글벙글했을 일이다.

그것처럼 안마원에서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는데도 사실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중도실명인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가게에 비품이 떨어져 활동지원사가 물품을 사 온다면 생업지원인데 그것을 집으로 가져갈 것과 가게 쓸 것으로 나눈다면 이건 생업지원일까 활동지원일까?

사업장에서 글을 읽어줄 때 영수증이면 생업지원이고 아니면 활동지원인가?

점심 식사 시간에는 식사 보조를 할 수 있는데 사실상 반찬의 위치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다 떨어지면  도와주어하는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세세한 일이 많이도 일어나는데 그럴 땐 밥만 차려주고 나가서 따로 먹어야 한다나?

사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이도 없지만 어쨌든 공무원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규정이라고 말하고 위반 시에는 서비스 금액을 환수조치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거다.

만약 안마 출장을 가야 한다면 비장애인의 도움이 절실한데 택시를 태워주면 그건 생업지원일까 활동지원일까?

같이 따라갔다가 사업장에 돌아오거나 아예 집으로 퇴근하면 이건 생업지원인가 사회활동 지원인가...


올해 1인 기업에도 근로지원인 제도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활동지원 서비스의 폭을 늘려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서로 근무 조건이 맞아서 서비스를 해 줄  있다면 안마원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도우면 되는 것이고 따로 근로지원 제도니 뭐니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 세상 어렵게들 산다고 고생들이다.

 

어쨌든 안마원에서 한치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 대신 카운터에 앉아 글씨를 쓰고 돈 계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의정부시청에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한 시간 반 동안 강압적이고 보복성의 조사를 받았고, 조사받는 장소에서도 추징금 2억 원을 환수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통보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당장 활동지원사가 안마원에 출근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탓에 한치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혼자서 약 15일간 안마원을 운영하다 그곳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 데 대한 분노와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그는 30대에 돌연 실명을 한 중도 실명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것도 이미 죽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어린 두 아들과 부모님을 거리에 내몰 수 없었기에 안마를 배워 조그마한 안마원을 개업하고 5년간 영업을 하며 혼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터였다.

나의 남편처럼 선천적이거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이들은 그나마 중도실 명인들보다는 훨씬 생활하기가 익숙하다.

하지만 중도실명인들의 삶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것을 우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내 남편이 '부정수급자'라는 낙인이 찍혀 수억의 추징금 환수 조치를 받고 혼자서 영업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남의 일이라 생각되지 않고, 혼자 더듬거리며 여러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을 당시 상황을 생각하니 함께 참가한 시위 현장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러 멈춰지지 않았다.

활동지원사가 생업에 직접 관여된 안마를 한 것도 아니고, 영업을 한 것도 아니고 한치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 활동지원과 생업지원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족쇄를 채우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이란 말인가...

가사지원만 해도 그렇다. 정해진 근무 시간엔 꼭 붙어 있어야 하는데 장을 보러 갈 때면 남자 시각장애인들은 옷을 사거나 할 때가 아니면 잘 따라가지 않는다.

다른 장애인들과는 다르게 설명을 해 줘도 뭐가 어찌 생겼는지 어찌 아는가... 오죽했으면 은행에 가더라도 비밀번호까지 다 알려주고 입출금을 맡기는 것이 시각장애인의 현실인데 안마원에 출근 후 활동지원사가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놓고 빨래를 하는 등의 업무도 같이 있지 않았불법이란다.

퇴근 후 직접 다 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활동지원인가...


어떤 이들은 추징금이 없어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팔아 일억에 달하는 벌금을 내다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사업장을 접고 기초수급자가 되어 사는 이들도 있었다.

이용자인 장애인들에게 수십만 원의 이용금을 매달 꼬박꼬박 받아내면서 왜 그러한 법을 만들어내는 걸까?

더군다나 와상장애나 다른 지체장애인들은 한 달에 주어지는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많게는 700시간, 400여 시간인데 시각장애인에게는 120~150시간, 가장 많은 독거 시각장애인이 250시간인 것을 생각하면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이 받는 시간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활동지원사 제도는 시각장애인에게 불리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 전 센터에서 직원이 나와 물어보는 설문지는 모두가 지체장애에 관한 내용뿐이다.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볼 수 있나요?'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것이지 알려주면 용변은 볼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옷의 단추는 채울 수 있습니까?'

어떤 지인은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시각장애인이지 손가락 병신이 아닌데 그럼 단추를 못 채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단다.

그럼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이용 시간이 줄어드는 거다...

아무리 민원을 넣어도 수십 년째 질문지의 형태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많은 추징금을 어디다 썼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듯 불합리한 제도에 산발적인 불만과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를 수년간 해 왔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1인 시각장애인 사업자는 물론이고 다른 시각장애인들까지 시위에 발 벗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정부시의 담당 과장과 주무관은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는 AI 같은 소리나 할 뿐 유감스럽게 되었다는 사과 한마디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안마사 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 연합회는 지난 금요일, 서울역 광장에 분향소를 만들었으나 제지하는 코레일 측에 의해 철거되었다.

다음날 새벽 세시 기습적으로 다시 분향소를 설치하였으나 철거요구를 받았고 그 소식을 들은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서미화 의원과 김예지 의원이 부랴부랴 달려와 중재를 하여 그나마 다음날 오전까지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도 의정부시장과 그날 안마원에 파견되었던 담당 과장과 주무관은 코빼기도 비추기 않았다.

난 이들이 일주일만 눈을 가리고 살아봤으면 좋겠다. 아니 단 하루만 눈을 감고 안마원을 경영해 봤으면 좋겠다.

이러한 자들이 어찌 장애인 복지과 담당 직무를 계속 유지할 양심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리하여 이번달 말까지 공식적인 사과가 없다면 이제는 모두 의정부 시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하기로 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박주민 의원이 시위장소에 나왔다. 얼굴만 비치지 말고 진정한 법 개선이 되기를 바란다.

당일 시위 중 대한안마사 협회장과 시각장애인 연합회장이 보건복지부 차장을 만나러 갔고, 네 가지의 요구 사항 중 활동지원사 제도에 대해 재검토해 보겠다는 데 까지는 이야기가 오간 듯했다.

또한 재검토시에는 민, 관, 협이 함께 하기로 하자는데 까지는 합의를 본 듯하나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거의 매 해마다 시각장애인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와야만 했다.

2005년, 비장애인에게도 안마업을 허가하겠다는 말에 여러 사람들이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하고 삭발을 하며 여, 야로 나뉘었던 국회의원들조차 하나로 뭉쳐 다시 찾아오게 된 안마업으로 가정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키워내어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합헌으로 수차례 재지정된 시각장애인 안마업은 망해가며 수급자로 내몰리는데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비장애인 마사지샵은 제재도 못하면서 힘없는 장애인 활동지원법에 대한 환수 조치만 하는 구청 공무원의 이중적 잣대 또한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일이다.

활동지원사를 불법 이용하는 색출 콜센터까지 만들어 제보자에게는 삼천만 원씩의 포상금을 주며 수백, 수천, 수억 원의 환수금을 받아내고 또 다른 수급자를 만들어내는 제도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서비스 이용 당사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실생활에 맞는 법규를 만들어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아래는 장성일 님이 자신의 작은 안마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기 전 휴대폰에 작성한 유언이다.


'삶의 희망이 무너졌네, 너무 억울하네.

5년이 넘게 의정부시나 센터들에서 아무런 언급도 없더니 갑자기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현실하고 행정하고 하나도 안 맞고 지랄 같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장애가 있어도 가족을 위해 살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 허무하네.

아들 미안. 엄마 아빠한테도 죄송해요.

가게에 있는 황금돼지(저금통)는 오픈 때부터 모은 것이에요. 불우이웃 돕기로 모은 것이니 소년 소녀 가정에 기부해 주세요.

그럼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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