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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Sep 13. 2024

시각장애인도 꿈을 꿀 수 있을까?

분명히 꿈속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만났는데 이젠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흐릿하게 윤곽이라도 보였는데 실명된 지 십 년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를 낳아준 부모의 얼굴도 이젠 까마득하다.


남편의 친구 중 열 살 때까지 비장애인으로 살다 장티푸스 예방 주사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실명을 한 친구의 이야기다.

맹아학교에 들어왔을 무렵엔 그나마 한쪽 눈은 그런대로 보였었는데 침대 시설도 없던 기숙사 방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던 시절, 모두가 잠든 밤 한밤중에 깨어 화장실 가던 친구 녀석이 엄지발가락으로 눈을 걷어차는 바람에 그나마 보이던 한쪽 눈이 터지며 그마저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시신경도 살아있지 않아 의안을 넣었다.

사고를 친 그 녀석도 제가 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불쌍하기는 매한가지인지라 물어내라 할 수도 없으니 어쩔수 없는 전맹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실명하고 몇 년 간은 꿈에서나마 세상을 볼 수 있었는데 인간의 기억력이 고작 그것밖에는 안 되는 것인지 하나하나 기억을 잃어가더니 어둠 속 공간이 가득할 뿐이다.

그나마 또렷했던 가족의 얼굴도 희미해져 가더니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나던 부모님의 얼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잃어간다는 것이 너무도 큰 형벌인 듯하다.


이렇듯 시각장애인이 사는 세상은 현실뿐 아니라 잠자며 꾸는 꿈의 세상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실명이 언제부터 되었느냐에 따라 형상을 기억하는 시간이 달라지지만 그나마 중도실명을 한 이들은 한동안은 기억 속 풍경들을 꿈에서나마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작 몇 년간의 선물 같은 시간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의 남편처럼 한 번도 사물을 본 적이 없는 자들은 꿈속에서도 만져보고, 두드리고, 더듬는 게 전부다. 시각적인 기억이 없어선지 꿈도 단순하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밤새 점자 책만 꽂는 꿈을 꾸었다고도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가는지 몸이 이리저리 흔들대서 잠에서 깨면 보통 피곤한 게 아니라고 했다.

또 어떤날은 어딘지도 모를 곳을 하염없이 걷느라 힘든 날도 많단다.

어느 날이었나? 먼저 잠든 남편이 잠꼬대를 한다.

'야! 너 누구야?'

말투가 나긋하지 않은 것을 보니 누군가와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상대가 자신을 밝히지 않는가 보다.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직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인지 제법 큰 소릴 내며 화를 낸다.

'아니 도대체 너 누구냐고!!!'


현실세계에서도 의문만이 가득한 세상..

사람들이 왜 지금 나만 빼고 웃는지, 어떤 상황을 보고 화를 내는지, 우리가 매일 보는 하늘과 구름은 어떤 것인지, 들꽃은 얼마나 예쁜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얼굴은 어찌 생겼는지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는 까닭에 꿈에서라도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 세계가 꿈을 꾸게 하는가보다.

하지만 오히려 어둠의 공간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외로움 밤새 허우적대다 아침을 맞으면 개운치가 않은듯 하다.

마치 몇 시간째 그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해 답답했던 그날의 꿈처럼....


그러나 부디....

현실의 나날들은 꿈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그저 꿈으로 끝나지 않을 현실의 세계가 그들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얼마전 탁상의 행정 앞에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어느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이야기가 이들을 더욱 힘빠지게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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