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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Oct 04. 2024

보이지도 안 보이지도 않는 사람

시각장애인의 종류는 크게 저시력(약시)과 완전실명(전맹), 두 가지로 나뉜다.

국내 의술이 발달하며  젊은 층부터는 전맹의 비율이 크게 감소하여 전체 시각장애인의 인구대비 약 12%가 전맹에 속하고 나머지는 저시력에 속하지만 어렵게나마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많고, 한쪽 눈만 실명된 이들은(시각장애 등급으로 치면 6등급 정도 된다) 불편하지만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기도 하고, 노환 등의 이유로 장애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통계가 어렵지만 국내 약 60만 명의 저시력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저시력인에 대한 의학적 정의를 내리자면 안경, 렌즈, 약물치료 또는 수술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교정시력이 0.2~0.3 이하 또는 10~30도 이하의 일상적인 생활에 장애를 줄 만큼의 시기능을 가진 자들을 저시력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조금 더 살펴보면 원인 질환으로 보통은 50% 이상이 출생 시 또는 출생 1년 이내에 발병하게 되는 선천적, 유전적 발달이상, 미숙아 망막병증, 선천백내장, 눈백색증, 무홍채증, 사시, 약시, 안검하수, 굴절이상, 눈떨림, 불규칙 난시(각막이상, 원추각막), 혼탁(각막혼탁, 유리치 혼탁, 백내장), 시신경 병증, 황반이영양증, 뇌병변, 안외상 등의 원인으로 발병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위의 질환 외 당뇨망막병증, 노화에 의한 황반변성, 시신경 위축, 시피질의 병변(종양, 외상, 뇌졸중, 발작), 사고에 의한 안외상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한다.


선천성 소아 저시력인들은 주로 맹아학교에 입학하거나 일반학교 내에 약시학급에 진학하기도 하고, 일반학교에서 안 보이는 눈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친 후,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식, 인정하고 뒤늦게 안마를 배워 시각계에 들어와 살기도 한다.

일반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듯 우리나라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는 '약시학급'이 따로 존재하는데 예전엔 한 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3개의 반을 더 늘려 운영하고 있다.

선천성 저시력인들의 시각과 시야는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지인 중 비장애인들과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과 출산 후 뒤늦게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아 안마업을 하는 이가 있는데 조그마한 쿠키 봉지에 쓰여 있는 뒷면의 글씨를 읽을 만큼 시력이 좋아서 도대체 왜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인가 싶지만 그 조그마한 글씨는 읽어도 양념된 고기가 다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몰라 차라리 불에 많이 익혀 태우는 게 속이 편하다고 했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회사 생활도 해 봤지만 어느 날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눈동자에 부옇게 막이 씐 듯 컴퓨터 글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일처리를 하지 못하니 동료 직원들이 자신을 오해할 때도 많았고, 명절이 되어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던 중 젓가락 한 짝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들고 손으로 더듬어 찾는 것을 본 동서가 '어머 형님 이쯤 되면 장애인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던 일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비장애인들 눈치를 보며 어렵게 사느니 시각계에 들어와 살게 되니 마음이 너무나 편하다고 했지만 시댁에서는 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일반 회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가방 안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물건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때 가방 입구를 벌려 눈으로 쳐다보며 찾지 않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여기저기 손으로 더듬어 찾을 때면 자신이 영락없는 시각장애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또 어떤 지인은 수미터 떨어진 사물과 사람의 형태를 너무도 정확하게 알아보기에 도대체 왜 시각장애인이냐 물으니 지름 10~15센티 정도의 각도의 것만 보일 뿐 그 시야를 벗어나면 바로 옆에 딱 붙어 있는 사람과 사물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출장안마 일을 가는데 너무도 익숙했던 길이라 자신 있게 길을 걷다 바로 옆에 공사현장이 생겼던지 그것도 모르게 평소대로 걷다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거의 수술을 해야 할 만큼 무릎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단다.

그날 이후부터는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고, 낮이라도 가끔씩 케인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보통 유전적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RP)이 터널식 시야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그런 유전인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살다 발병이 되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발병 시에는 야간시력에 문제를 겪다 가장자리 시야부터 점점 좁아지며 터널처럼 보이는 현상을 겪다 결국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약 100개에 달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발병하기에 정확한 원인과 완치법은 전무한 상황이다.

그래도 RP를 제외한 이런 이들을 시각계에서는 일명 '슈퍼약시'라고 지칭하는데 비장애인이 없는 자리에서는 슈퍼약시들이 전맹인의 보행인도자가 되어주고 책을 읽어주거나 식당에서는 고기를 굽고, 식사를 돕는 등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약시학교에 다녔던 지인도 눈이 나빠져 맹아학교로 전학을 왔더니 주위에서 도움만 받고 살던 자신이 사랑과 베풂의 아이콘이 되어 있더란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도 노안이 온다는 거다.

학술적으로 증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오십 대 중반의 남편의 지인들이 갑자기 시력이 줄어 단독보행이 힘들어지거나 케인을 들어야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나마 보이던 간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목적지를 찾는데 애를 먹고, 휴대폰을 눈 가까이 들이대면 보이던 화면과 글씨가 보이지 않지만 전맹들처럼 빠른 속도로 소리를 듣는 데 전혀 익숙지 않아 난감한 일상을 맞게 되거나 독서 확대기나 현미경으로 보이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데도 점자 읽는 법은 모르니 이를 어쩌나 싶고, 케인 보행을 갑자기 하려니 어색해하는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러 차례 수술을 거듭하며 그나마 저시력을 유지해 오던 이들도 이제는 수술을 해도 시력은 더 나빠지고 스테로이드제를 다년간 복용하며 원치 않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또한 이러한 슈퍼 약시가 아닌 이들 중에는 색깔과 형태만 감지하는 이들도 있는데 물론 전맹의 입장에서는 이것조차도 부러운 일이다.

적어도 자신이 무슨 색 옷을 입는지 양말은 서로 다른 색으로 바꿔 신지는 않는지, 사람이 앞에 있는지 없는지 대충 키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도 있으니 아예 볼 수 없는 것과 약간이라도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시력 정도까지 보이는 이들을 저시력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외 시신경은 있어 빛 감지만 가능한 이들부터는 전맹이라 한다.

결혼 전 연애를 하며 남편이 빛 감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화려한 불빛의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을 보여주고 싶어 가까이 데리고 가서 물어보니 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뜨겁기만 하단다.

'이렇게 화려한데 안 보인다고?' 그런데 어두워진 버스 정류장 광고판 불빛은 또 보인단다.

방에 켜진 불빛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편의점 불빛, 휴대폰 불빛도 보이는데 왜 안보일까.... 가만히 관찰해 보니 유색의 불빛은 못 보고 백색 불빛만 감지하는 듯했다.

"자기 색맹이야??"라는 우스개 소릴 하니 그제야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딱 한 점의 불빛만 보이니 무척이나 눈이 시리고 아픈지 스마트폰 화면을 항상 꺼 둔 채 터치 기능으로만 사용한다.

어느 날은 스테인리스 그릇의 면기에 국수를 먹던 남편이 맞은편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그릇에 부딪히며 반사된 빛에도 힘들어했었다.

그래도 컴컴해지면 꼭 불을 켠다. 어차피 불필요한 사람은 나인데 왜 굳이 불을 켜느냐 물으니 캄캄하면 기분이 좋지 않단다.

그나마 그 빛이라도 보여 자주 가는 곳은 여기가 어느 편의점쯤 이겠다. 여기는 버스 정류장이겠다 싶은 느낌이 있어 이 빛마저도 감지할 수 없게 돼 버리면 아주 아쉬울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러니 빛 감지 조차도 할 수 없는 이들은 어쩌다 방 안에 불이 켜 있어도 누가 와서 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계속 불을 켜 놓고 살게 된다.  


저시력인들 중에는 두꺼운 안경으로 그나마 시력 교정이 되는 이들도 있고, 맨 눈으로 일 센티 가까이 책을 들고 보는 이들을 위해 컴퓨터 화면과 활자 확대경이 경우에 따라 휴대용과 탁상용으로 개발되는데 탁상용은 넓은 각도로 회전이 가능하고 4~40배가량 글씨와 그림을 확대해 주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맹인들에 비해 사회적 인식, 복지, 공학 기기에 대한 개발과 시설물이 턱없이 부족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전 글에 소개했던 유도블록은 사실 전맹인들보다는 저시력인들이 더욱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이기에 빛의 파장이 길고 눈에 잘 띄는 노란색으로 설치한다고 했지만 저시력인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니 몇 년 전 서울역사에 설치된 유도블록을 까만색으로 칠해 놓았더란다.

노란색으로 다시 칠해달라 민원요청을 하였으나 도시정비 콘셉트가 '블랙&화이트'라 그럴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돌아왔고 이에 반발하여 저시력인 연합회 회원들이 며칠에 걸쳐 시위를 하자 결국 노란색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케인을 들고 가는 시각장애인은 비장인애인의 도움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케인 없이 단독 보행을 하는 저시력인들을 비장애인들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어떤 활동지원사는 이용자의 집안에 있는 화분이 쓰러져 다치거나 흙이 쏟아질까 걱정이 되어 종이에 '조심하시오'라고 써 놨었던가보다. 그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는 저시력 이용자가 결국 화분을 쓰러뜨려 흙이 몽땅 쏟아지자 종이에 조심하라고 써 놨는데 그걸 못 봤느냐기에 '그걸 내가 어떻게  봐요'라는 말에 '그럼 더 크게 써 드릴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들어 저시력인에 대한 보조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부각되며 관악구에서는 실로암장애인자립센터와 함께 '저시력자를 위한 버스 노선 인식앱(비전버스)'을 상용화하기로 했다.

5월부터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1차 테스트를 진행하고 8월부터 저시력인들에게 2차 테스트를 한 후 최종판을 11월에 배포할 계획인데 관악구 내 버스정류소 10곳의 버스노선 번호를 영상 AI로 데이터화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안내음성의 순서대로 도착하지 않는 버스, 빗물로 인해 판독이 어려웠던 경우, 야간에 겪는 어려움 등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버스 정면, 측면과 후면을 촬영하여 버스 노선 번호를 인식해 화면과 음성, 진동으로 안내해 주기도 하고, 버스 내 카드 단말기, 하차 벨 위치 안내 기능 등을 인터넷 없이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2023년부터 삼성전자는 저시력인 시각보조 루션 '릴루미노'를 경기도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에 30여 대를 무상으로 시범 보급했다.

릴루미노는 '빛을 다시 돌려주다'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하는데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여 글라스와 USB케이블을 유선으로 연결해 사용한다.

릴루미노 글라스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생활 속 이미지를 촬영하고 앱에서 윤곽선 강조, 확대와 축소, 색반전과 대비 등의 영상 처리를 통해 인식률이 높아지며 글라스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개선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제대로만 작동이 된다면 저시력인들이 영상을 시청하고, 사물을 확인하는데 획기적인 도움을 받게 것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자는 빛이라도 보는 자를, 빛이 보이는 자는 색깔과 형태만이라도 볼 수 있는 자를, 또 흐릿하게라도 보이는 자를, 또 그들은 터널식으로라도 보이는 자를, 저시력인들은 정안인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글을 읽고,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또 나의 눈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겸손한 마음으로 도와야 함을 늘 절감하며 산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때로는 귀찮음이 발동될 때가 있지만 남편이 눈이 필요하다면 침대에 누운 몸을 발딱 일으켜 바로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만약 나라면... 내가 그러한 욕구가 있는데 당장 하지 못한다면.... 을 항상 마음속에 되새기며 살고자 한다.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더없이 편견을 벗고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매일매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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