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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Oct 11. 2024

보이는 글자를 보이지 않는 글자로 바꾸는 사람들

세상에는 내가 알 수도 없는 많은 직업이 존재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글을 보이지 않는 글로 바꾸는 '점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쉽게 떠올릴 수 있을까? 

세상은 점점 디지털화되어가며 그들을 찾는 수요가 점점 줄어가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아직도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전국 4~5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빛이 되어주는 '점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공식 자격증 이름은 '점역교정사'로 '점역사'와 '교정사'는 업무 현장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굳이 분리해서 말하자면 '점역사'는 점자도서나 전자도서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교정, 교열하는 이들을 '교정사'라 하지만 굳이 둘로 나누지 않고 편의상 '점역교정사' 또는 '점역사'라 한다.

국내에는 약 550여 명의 점역사가 있는데 이는 1~3급까지 통틀어서이고 1,2급 자격증 소지자는 약 100명 내외로 이쯤 되어야 점역 일을 수월하게 완수할 수 있기에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점역사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이들은 주로 사회복지시설과 전문출판 업체 등의 장애인 복지관에서 근무하게 되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관으로 매년 2회 보건복지부가 공인한 민간자격시험이 치러진다.

3급 자격증은 20세 이상의 고졸 이상의 학력을 소지하였거나 시각장애인 관련기관에서 3년 이상 점역, 교정 업무를 수행했던 경력자에게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데 한글맞춤법, 한국점자 규정에 맞는 점역과 교정에 대한 국어 시험을 치른다.

2급 시험은 3급 자격증을 취득 후 1년 이상 경과한 자로서 4년제 대학 이상 졸업 또는 졸업예정자이거나 관련기관에서 4년 이상 일 한 경력자에게 시험 자격이 주어지며 3급이 치른 시험과목과 수학, 과학, 영어, 음악 과목 중 한 가지 이상을 선택한다.

1급은 2급 자격을 취득한 후 1년 이상 경과하였으며 관련 종사장에서 5년 이상 업무를 수행한 자가 응시할 수 있는데 3급 자격시험 과목과 2급 자격시험을 통과한 과목 외 전 과목을 치르게 된다.

점역의 원칙은 원문에 오자가 있더라도 그대로 옮기는 것이 기본 원칙이며 만약 점역사가 이를 고쳤을 경우 그 이유를 밝히는 주석을 첨언하도록 한다.

요즘은 한글점자 변환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점역할 앞 문장을 치고 엔터를 누르면 천장이 넘는 페이지가 수십 초 내에 변화되어 직접 점필로 찍거나 점자 타이프를 쳐서 책을 만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정식 점역사라는 직업이 체계화되기 전 대는 비시각장애인 가족이든 친구, 저시력인에게 부탁하여 책을 읽게 하고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들은 대로 점자지에 직접 점필로 찍는 것이 점역의 시초였다.

남편이 학창 시절에도 급할 땐 그 방법을 사용했지만 그나마 80년대 초중반부터는 70년대 미국 선교회 주관으로 발족된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의 전신인 '연합세계 선교회'가 미국인의 후원금을 받아 시각장애인 학생을 대상의 장학사업과 더불어 점역 유료 봉사를 시작해왔다고 한다.

그 당시는 컴퓨터니 점자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이 없었으니 원하는 책을 의뢰하면 손으로 점자 타자기로 일일이 타이핑해서 링제본 된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데 그 기간이 무려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단다.

그나마 참고서나 악보는 더 비싸서 200페이지 되는 분량의 책을 당시 만원 돈을 지불해야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글자만 손으로 읽는 게 아니다. 악보, 음악기호 또한 손으로 읽을 수밖에 없으니 음악 점역사가 필요하다.

 자료를 찾아보면 1999년 실로암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음악 점역을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남편은 중고등 학교 시절 음대 진학을 위해 세계 연합 선교회 또는 사슴회(나중엔 친목단체로 변질되며 점역 사업은 얼마 안 되어 흐지부지 된다)에 직접 악보를 의뢰하여 이용했으니 실로암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음악점역을 처음 시작했다는 것은 어떤 기준인지 모호하다.


국내 음악점역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60명이지만 복지관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2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보통 한 달에 50개의 점자악보를 제작하며 공식적인 의뢰 또는 개인 이용자가 신청하면 일정의 금액을 받고 점역 작업을 한다. 만약 교회에서 특송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당 묵자 악보를 복지관에 의뢰하고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 우편으로 배송되거나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이때는 brl이라는 확장자로 저장되며 이는 브레일(점자) 파일의 약자이다) 그럼 그것을 예전 다른 글에 소개했던 '한소네'라는 시각장애인용 소형 컴퓨터로 저장시켜 손으로 훑어보며 가사와 악보를 숙지하거나 또는 다른 이들은 모두 악보를 들고 찬송가를 부르지만 남편은 한소네손가락으로 읽으며 노래를 부른다.

음악점역은 한글점자처럼 변환프로그램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 일일이 음표에 대한 점역을 하고, 빠르기, 셈 여림, 어떤 악기가 연주되고 빠지는지 모두 점역해야 하지만 또 시각장애인들이 보기 좋게 빼야 할 것은 빼거나 더하기도 해야 한다.

특히 오케스트라 악보 점역은 까다롭기가 더 할 수밖에 없다.

음악 점역사 자격은 먼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해야 하며 한글점역교정사 자격증을 기본적으로 취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악보에 씐 영어를 점역하기 위해 영어 점역사 자격과 음악점역사 자격증도 다 함께 취득해야 한다.

시험 과목도 국어, 영어, 음악, 수학, 컴퓨터나 과학, 중국어, 일본어 등 6개의 과목의 시험에 합격해야 취득할 수 있을 만큼 꽤나 까다로운 자격증이다.

음악전공자라 하더라도 해석이 난해한 악보이거나 음악 점자 규정에 없는 기호가 있을 때는 점역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 작업을 하고 주석을 달게 된다.

이렇게 까다로운 악보점역은 한 곡당 평균 1~2주일이 꼬박 걸리는데 악보를 점역 후 최종적으로 음악점역사와 점역 교정사가 함께 컴퓨터로 제작된 점자악보를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여 교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교정사가 음악점역 악보를 소리 내어 읽으면 점역사가 악보를 보고 교정을 거쳐 점자프린터로 출력하거나 개인적인 의뢰가 아닌 곡은 음악재활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brl(브레일 파일) 파일로 점자악보로 배포되고 등록된 시각장애인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한다.

한글이든 악보묵자일 때보다는 작업을 마친 점자 책은 그 양이 수배로 불어나게 되는데 우리 도 점자 악보, 바이올린, 플루트 등의 악기 연주법, 안마에 관련된 점자책이 많았다.

특히나 클래식과 동요를 사랑하는 나의 남편은 MBC 창작 동요제 수상작 악보집이 1회부터 종영된 28회까지 있어 이사 때마다 그 짐이 보통이 아닌지라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점자 책을 처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철이 되면 우리 집엔 묵자와 점자 두 가지 버전의 후보설명지가 배달되는데 점자 설명지는 앞 번호 기호일수록 한 인물에 대한 설명이 거의 전화번호부 책 한 권을 방불케 할 만큼 두껍고, 그 양이 엄청나게 많다.  

투표장에 가서도 묵자 위에 점자 표기가 되어 있는 선거용지를 나눠주는데 만약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함께 왔을 경우, 특히 정안인 배우자가 있다면 신분 확인 후 함께 투표장에 들어가 투표를 도와도 무방하다.

그뿐인가 우리 가게로 배달되어 오는 공공기관의 점자 알림 책, 건강보험료 용지, 점자 명함, 점자 달력 고궁이나 박물관에 비치된 점자 안내장도 모두 점역사(점역 프로그램)의 일인 것이다.

굳이 비시각장애인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고도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정보를 얻고, 판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동정이 아닌 동행의 일부가 된다.


보이는 글을 보이지 않는 글과 악보로 점역하는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직업의식으로만 업무를 감당하기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노력이 봉사가 되었고, 직업이 되었다. 물론 이들의 작업환경과 처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내 100여 명 밖에 없는 점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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