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가 족히 넘는 차가운 새벽, 인적도 없는 도롯가에 선 남자는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연신 팔을 흔들어댄다. 장갑도 없는 맨손으로 벌써 한 시간째 팔이 떨어져라 흔들어대지만 한 손엔 케인을 들었기 때문일까? 그 흔한 영업용 택시 하나 서지 않는다.
매번 있는 일이라 담담해질 만도 한데.... 날씨가 차가와선지 마음이 차서인지 세상을 향한분노인지 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곱은 손을 펼쳐 계속 흔들어본다.
비록 택시를 잡는 일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랬다. 눈먼 자의 세상에 대한 외침은 늘 그렇게 답이 없었다.
마치 차가운 새벽, 연신 팔을 흔드는 그의 부르짖음에 아무 반응이 없던 그날처럼 대답대신 돌아오는 건 얼굴을 찢을 듯한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무관심과 비웃음이었다.
남편이 혼자 출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새벽 풍경이다.
그때는 신생아를 어디에 맡겨두고 나갈 수 없는 아내가 걱정할까 혼자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겨우 집에 들어왔던 날이었다.
참... 누구나 사는 게 힘들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 힘이 쭈욱 빠진다.
눈먼 자들도 차는 타고 다녀야겠는데 운전을 할 수가 없으니 택시든 지하철이든 이용하지만 그게 남들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몇 년 전 어느 날은 남편이 다리를절뚝이며 집에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
"지하철을 타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내 발등에 돌덩이를 떨어뜨렸어"
"뭐? 돌덩이?? 지하철 안에서 돌덩이가 발등에 떨어졌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떤 중년의 여자가 손잡이도 없는 비닐에 돌덩이를 넣고 한 손으로 움켜쥔 채 남편이 앉은자리 앞에 서 있다가 발등에 떨어뜨린 거란다.
갑자기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으로 화들짝 놀랐지만 앞이 보이질 않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앞에 선 여자가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에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 달라 했지만 되레 자신이 '아무 일도 없으니 괜찮다'는 말만 연신 해댄다.
정작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왜 말을 못 하느냐며 손을 뻗어 여자의 손을 더듬어보다 비닐에 쌓인 돌덩이를 만져보게 되었고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단다.
남편은 상대에게 이럴 땐 상황설명과 함께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하고, 동시에 연락처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자 겨우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단다. 혼자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 지하철 역사직원에게 호출하여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선가 중년의 남자가 나타나 자기가 아까부터 지켜보자니 장애인이라는 핑계를 대고 합의금을 뜯어내려 한다며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오더란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지만 괜한 시비에 말려들고 싶지도 않고, 발의 통증도 너무 심해서 별 대꾸 않고 가려는데 계속 자극적인 소릴하며 집에 따라와 죽여버리겠다는 둥 시비를 걸더라고 했다.
화가 난 남편이 짧게 접힌 케인을 들고 흔든 것을 빌미 삼아 경찰을 불렀고, 그 발로 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받고 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여자와 남자가 한 패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날 우연히도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고, 시비를 걸어온 남자는 상습적으로 돈을 뜯어내던 사람인지 CCTV를 확인해 보니 두 손을 가만히 주머니에 넣고 험한 말만 해대니 남편만 흥분한 듯 보였다.
사건이 경미한 데다 남편 또한 발등과 발가락 뼈가 전부 금이 가는 바람에 몇 달 동안 일을 쉬어야 했기 때문에 반성문을 쓰는데 그쳤고, 아쉽지만 그 사람은 합의금은 받을 수는 없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일을 쉬자니 자영업자인 우리에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돌멩이를 떨어뜨린 사람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라 보상금을 받는 것도 어려웠다.
또 어떤 지인은 지하철을 타고 문 앞 기둥에 서 있는데 자신이 내릴 곳인지 모르고 정신을 딴 데 팔던 어떤 사람이 급하게 뛰어내리며 지인을 치고 갔단다. 어찌나 세게 치고 갔던지 멍하니 서 있던 지인이 지하철 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다리부터 허리까지 지하철 사이에 끼고 말았다.
그대로 지하철이 출발하기라도 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텐데 마침 안에 있는 남자 승객이 급히 끌어올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며 나처럼 뚱뚱한 사람이 그 사이에 낄 정도면 그 폭이 얼마나 넓길래 그런 일이 다 있느냐며 남편과 서로 우스개처럼 얘기한다.
다른 글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안전문이 설치되기 전에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는 일은 심심찮게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나마 지금은 그런 사고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 버스는 또 어떤가..
지금은 버스정류장에 그나마도 음성안내 서비스라도 있지만 예전엔 그런 게 어디 있나...
어디로 가는 버스냐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들 제 갈길을 갈 뿐 친절히 알려주는 이들도 없고, 어쩔 땐 가로수에게도 인사하고 길을 묻고, 전봇대에도 물어보는 웃지 못할 상황도 펼쳐진다.
어떤 지인도 학창 시절 주말이면 집으로 가기 위해 맹학교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여러 대의 버스가 줄줄이 도착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기사님께 몇 번 버스냐 물어봐서 자신이 타야 할 버스가 아니면 또 그다음 버스 기사에게 묻는다. 그러나 두 번째 버스까지 물어보고 나면 세 번째, 네 번째 버스도 이젠 문을 닫고 출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단다.
그나마 자신이 탈 버스가 적어도 두 번째에는 서야 그걸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지, 그러기 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따가운 햇볕 아래서나 발이 얼어붙을 듯한 찬 겨울에도 눈앞에 버스를 두고도 수차례 그냥 버스를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뿐이겠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뭐라도 타야 하기에 그나마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일반 택시를 타고 다니기엔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동서비스의 역사를 보자면 처음엔 해피콜로 택시를 불러 타고 다녔다.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업이라는 특정 직업이 있어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한다.
결국 시각장애인 연합회가 해피콜과 결연을 맺어 그나마 시각장애인에게 승차거부 없이 친절했다는 게 큰 특혜였다.
보통 장애인은 재수가 없어 승차를 거부하고 설령 승차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따따블은 기본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90년대 초반 서울시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 지원센터'를 개설하여 일명 '복지콜'이라 하는 차량을 운영하였으나 초반엔 예약제로 운영되던 것이 시초이다.
2003년,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었던 최동익 전 의원에 의해 신장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즉시호출형'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센터에 장애인 접수가 되어 있어야 하며 차량 탑승 후엔 복지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복지카드를 확인하는 데는 접수되어 있는 이용자인지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때 복지콜 이용이 한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정지되는데 그 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한 방법으로 장애인 카드를 확인한다.
시각장애인은 1~3급, 신장장애는 1,2급이 이용할 수 있으며 이들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고 갈 때만 1일 2회로 횟수를 제한한다.
각 지역별로 연합회에서 각자의 체계대로 시각장애인 택시가 운영되고 있는데 서울은 서울시 전역과 위성도시인 12개 시(부천, 김포, 양주, 고양, 의정부, 남양주, 구리, 하남, 과천, 안양, 광명, 성남)와 인천공항에 한해서만 운행한다.
그러나 피치 못할 상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루 7~9시간 동안 대절 서비스가 있고, 승합차와 승용차를 고를 수 있으며 주로 지방에 일이 있을 때, 간단한 여행을 다녀올 때 많이들 이용한다.
그럴 땐 기사님의 식사를 제공해 드리는 대신 기사님은 식사와 보행 등을 도와주신다.
요금체계는 5km까지는 기본요금 1,500원이 부과되며 5~10km 이내는 1km당 280원씩 할증되고 10km를 초과하게 되면 거리병산 요금제로 1km당 70원의 요금이 더 할증된다.
동승자와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운행 중간에 장애인을 제외한 정안인을 내려주거나 태울 수는 없지만 단 10살 미만, 65세 이상은 신분증을 제시하면 중도 승하차가 가능해서 남편이 부모님을 댁에 내려드리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승합차를 포함하여 5종류의 차종으로 총 161대를 운행한다.
차량이 연결되고 나면 몇 킬로에서 출발하며 어떤 기사님이 배정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고, 기사님으로부터 몇 분 후 도착한다는 안내 전화가 온다. 도착해서도 안내 전화가 오는데 약 10분 정도의 시간을 갖고 기다려 주신다.
어떤 이들은 삼십 분도 좋고, 사십 분도 좋다며 그때 샤워를 하는 사람이 없나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그나마 10분으로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이다.
복지콜 기사님들은 다른 차량 운전자와 성격이 좀 다르다. 거의 99% 이상의 기사님들은 차량 밖에서 또는 출입문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동반인이 있던 없던 안내를 도맡아 하려 한다.
그리고 차 문을 열어주고 내릴 때 역시 차 문을 열어준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기다렸다가 씌워주기도 한다.
단독보행이 전혀 안 되는 분들은 20여 미터를 이동할 때도 복지콜을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간단한 심부름을 해 줄 때도 많다.
그뿐 아니더라도 어느 가게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야된다고 하면 함께가주거나 무거운 것을 들고 나오면 거의 대부분 들어주신다.
병원에 들러서 접수와 결제를 돕는 등 사사로운 심부름을 해 주실 때도 많다.
별도의 비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일도 아니다 보니 이용자들 대부분은 너무나 고마워 음료수라도 사 드시라며 몇천 원에서 몇만 원을 더 쥐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남자 승객들과는 서로 호형하제하며 지내는 경우들도 더러 있고, 일이 끝나면 친한 장애인들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거나 휴가 때면 시각장애인들끼리 놀러 가는 데 따라가서 돕기도 한다.
우리도 친한 기사님들이 커피도 마시러 오고 공짜 치료도 해 드리고, 집에 놀러도 가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복지콜이 마치 동네 미용실처럼 소문의 발원지이자, 정보가 오가는 곳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서울시 시각장애인들의 교통이용상황을 해결할 수 없어 2017년부터 나비콜, 엔콜 소속차량 7,400대를 투입해 장애인 바우처 택시를 운영하며 4만 원 이하 택시 이용요금의 75%를 지원하여 운영해 왔다.
2020년에는 마카롱 택시와도 업무를 협약하고 바우처 택시 17,400대를 확대해서 운영하는데 1일 4회, 월 60회로 제한하여 운영 중이다.
그러나목적지 주변에서몇십 미터만잘못 내려줘도 시각장애인은 그곳에서 헤매야 하니 아무래도 복지콜이 편하긴 하다.
지하철을 이용 시에는 필요에 따라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해 주는데 예를 들어 무슨 역, 몇 다시 몇 구간에 승차하여 어느 역에 하차할 예정이라 하면 직원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지하철 출구까지 안내를 도와준다.
예전에는 공익근무요원이 배치되어 있어 업무를 주로 담당했는데 요즘은 공익요원도 없고, 직원도 점점 줄어가는 추세라 나와줄 직원이 없는지 역장까지 나와 남편을 안내해 주더라고 했다.
요금은 동반인을 포함해 무료이다.
버스 또한 작년 2023년부터 요금을 지원해 주는데 지하철처럼 복지카드로 승차 시부터 무료가 아니라 개인이 결제 후 한 달이 지나면 정산하여 다시 개인 계좌에 입금해 주는 방식이다.
항공과 철도 이용 시에도 안내를 부탁하면 직원이 모든 절차를 도와주기도 하고, 요금은 본인과 동반자를 포함해 50%의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동반인이 있을 때는 50%의 할인혜택을 주지만 자신들이 안내할 때는 100%의 요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차량이동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다.
바우처 택시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일부 기사님들이 호출을 수락하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카카오 택시는 아직 이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다 보니 주위에 차량이 많이 없는 곳에서는 연결되기가 힘들고, 복지콜도 주위에 차량이 없는 날, 또는 어디서 시각장애인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있다면 그곳에 모두 동원되는지라 차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또 같은 서울이라도 차고지가 가까운 지역은 차량 연결이 잘 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은 몇 시간이고 애타는 심정으로 차량이 연결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날들이 많다.
어디서 행사가 끝나고 나면 차량을 호출하는 시각장애인들과 택시들로 난리도 아니다.
복지콜이야 기사님들이 직접 나오셔서 호출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얼굴을 아는 경우도 많아 안내해서 타고 가면 되는데 일반 바우처 택시는 바로 앞에 있어도 시각장애인이 탑승하기가 힘드니 안내인이 없는 이가보이면내가 알던 모르던 이 사람 저 사람을 도와드린다.
또 차량이 잘 연결되지 않으니 차량 접수자와 잘 모르는 사이던 아는 사이던 네 명이 꽉꽉 타고 여기저기 경유해서 세워달라는 게 보통이고 그나마 잘 보이는 저시력인들은 익숙한 횡단보도, 지하철역 앞에서 내려 기사님의 수고를 덜어드린다.
그들 말로 '봉사(시각장애인) 시간'이라는 게 있는데 차량연결 여부에 따라 있던 약속이 없어지기도 하고 앞당겨지기도 늦춰지기도 한다.
정말 웃기는 건 몇 시간이고 복지콜도 바우처 택시도 연결이 안 되어 울분을 터뜨리다가 차량이 연결될 땐 한꺼번에 두 가지가 다 연결되어 하나는 취소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참 많다.
또 어떨 때는 차가 늦게 연결될 것 같아 일찍 불러놓고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십분 안에 차가 연결 되었다 해서 씻다 말고 나와야 할 때도 있고, 일찍 되겠지 싶은 날은 몇 시간이고 연결이 안 되어 집에도 못 가고 초조한 심정으로 앉아 있거나 병원예약이나 지인과의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날들도 참 많다.
'주변에 차량이 없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확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이렇게 살아야 되나..'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차가 연결되는 대로 대충 방향이 맞으면 어떻게든 끼여 앉아 함께 승차하는데 그걸 보는 것도 딱하기가 말이 아니다.
어느 기사에선가 시각장애인 차량연결 평균 시간이 약 45분이란다.
그만큼 기동성이 떨어지고 그에 비례해 세월의 변화에 적응하고 따라가는 속도도 늦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편을 비롯한 주위 시각장애인들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뭔가 다른 방법의 대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엔 동의한다.
과연 무인자율주행 자동차가 보편화되면 이런 문제가 많이 해결이 될까?
가격이 만만치 않을테니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혜택도 없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이것도 참 감지덕지한 일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