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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Aug 16. 2024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된 독구

"엄마, 이제부터 우리 강아지 키우기로 한 거야?"


"잉... 그려... 예쁘냐?"


"응, 털이 복슬복슬하고 귀가 축 쳐졌네... 뭘 많이 먹었나 봐 배가 빵빵해!!!"


"우리 아들 좋겄네... 기숙사서 올 때마다 친구가 있어서..."


"응.... 나도 동생 생겼다... 아.. 근데 얘 여자야? 남자야? 이름은 지었어?"


"암넘이여... 이름이 뭐 있어? 그냥 독구라고 부르먼 되지...."


"헤헤.... 손 등을 핥는다... 아이 간지러워 독구~ 빨리 커서 오빠랑 놀러 많이 다니자~~!!"


소년은 강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색인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보드랍고 보송한 털을 쓰다듬는 그 감촉만으로도 귀여움이 한껏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녀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뭘 그렇게 많이 먹어대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맹학교 기숙사에서 집에 올 때마다 부쩍부쩍 자라 있어 그냥 만져만 봐서는 집에서 키우기로 했던 독구가 맞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서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매주 토요일 4교시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땅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배를 하늘로 보이도록 뒤집는다. 

그리고는 크고 풍성한 꼬리로 살랑살랑 마당을 쓸어대는 걸 보면 자신의 어린 주인이 참 좋긴  한가보다.


"아~ 점심 먹고 우리 친구들이랑 사촌형들이랑 산에 가서 놀건대 너도 같이 갈래?"


4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기숙사에서 얼른 짐을 꾸려 서울역에서 또 한 번 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로움도 힘들지 않다.

이제 방학 내내 독구와 어디든 놀러 갈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자꾸만 헤벌쭉 웃음이 난다.

바로 다음날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겨우 몇 숟가락 뜨고는 밥상 앞에서 얼른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엉덩이 하나 겨우 걸칠 듯 한 좁은 마루 끝에 앉아 땅바닥을 손으로 더듬어가며 운동화를 겨우 찾아 왼발 오른발에 맞춰 신는다.

그동안 독구는 벌써 나갈 준비를 다 마쳤는지 소년 옆에 앉아 헥헥댄다. 


"가자! 독구야~!!"


"어? 이거 뭐야? 너 내가 가자고 한 말을 알아들어?"


신기했다. 이 녀석은 어린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이제 가자'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목줄을 입으로 물어 와 소년의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와~~!! 독구야!!! 너 내가 안 보이는 거 어떻게 알아? 너 되게 똑똑하다~!!"


신기함에 고개를 연신 갸우뚱하며 독구가 쥐어준 쇠줄을 목에 걸고는 동그란 쇠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니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 한 뒷산 방향으로 소년을 잡아끌며 앞장선다.


"독구야~ 네가 오빠 데리고 가니까 되게 편하다...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 거야?"


"독구, 오늘은 덕선이네 갈 거야"


"독구, 오늘은 외삼촌네 가자~"


그렇게 독구는 소년이 원하는 대로 앞서가고, 소년은 독구의 목줄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매일 아침 여기저기 놀러를 다닌다.

그러나 하루종일 비가 오는 날은 꼼짝없이 집에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독구야,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다... 오빠는 너무 심심해...."


다음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해가 하늘 가득인가 보다.

어쩌면 어제보다 더 큰 더위를 몰고 왔는지 잠깐의 시원스럽던 공기가 다시 무겁고 끈끈한 기운으로 꽉 차 있다.

이럴 땐 바람 부는 산으로 가야 한다.

우렁찬 나무가 한가득한 산에 올라 노는 게 가장 좋은 피서법이다.

그런데 여느 날처럼 소년을 앞질러 총총총 걸어가던 독구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춰 선다.

소년은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발짝을 떼려 하자 독구가 얼른 몸을 가로질러 소년의 앞을 막아선다.


"독구, 왜 그래?"


독구는 목을 뒤로 젖히며 낮은 소리로 낑낑댄다.

소년이 왠지 목줄을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손에서 목줄을 놓자 독구가 길을 가로질러 펄쩍 뛰어넘더니 '컹!'하는 짧은소릴 낸다.

소년이 발아래를 손바닥으로 살짝 더듬어보니 작은 실개천에 제법 큰 웅덩이가 생겨난 듯했다.

그런데 이 녀석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의 어린 주인이 한 발에 문제없이 건너던 작은 실개천을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웅덩이를 막아선 건 그렇다 쳐도 펄쩍 뛰어넘어가 소릴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소년은 독구가 '컹'하고 짖었던 소리로 거리를 가늠하여 웅덩이를 힘껏 뛰어넘으니 독구가 얼른 비켜서 주었다.


"독구~ 고마워~~ 와~ 근데 너 참 신기하다...."


소년은 독구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연신 쓰다듬으며 자랑스러운 웃음을 한가득 웃는다.

때로는 다른 친구들도 자기네 개를 데려 왔는지 그럴 때면 독구도 친구들과 함께 산속을 누비며 뛰어놀기가 바쁘다. 그러나 멍멍이 친구가 없는 날엔 본부 놀이나 총싸움이 길어질 땐 독구한테 미안한 마음이다.


"독구~ 먼저 집에 가 있어~"


망설이는 독구는 차마 먼저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독구~ 오빠는 사촌형들이 데려다줄 거야... 걱정 말고 집에 먼저 가서 밥 먹고 있어... 오빠 빨리 갈게~"


앞을 못 보는 어린 주인이 걱정이 되는지 못내 망설이면서도 소년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독구가 쪼르륵 산에서 내려가 소년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독구가 소년의 집에 온 지도 벌써 2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새끼도 몇 차례 낳아 가계에 보탬이 되어주었고, 소년도 이제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이 되었다.


그날은 친구들과 딱히 만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독구가 먼저 목줄을 물고 와 소년의 손바닥에 내려놓는다.


"독구~ 나가고 싶어? 오늘은 너랑 나랑만 놀아야 돼~ 그래도 나갈 거야?"


오늘따라 독구는 오빠와 단둘이 있고 싶은지 자꾸 나가자는 몸짓을 하더니 소년을 끌고 자꾸만 언덕 위를 오른다.

언덕 위에 다다르자 가쁜 숨을 몰아낼 새도 없이 소년을 올려다보던 독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울음을 구슬프게 울어댔다.


"아우우~~~"


"독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독구?"


"아우우우~~~"


"독구~자꾸 왜 그러는 거야?!"


"아우우우우~~~~"


 "그만 울어... 왜 그러는 거야.... 그냥 가만히 쉬고 있어..."


예상치 못한 독구의 행동에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럴수록 더욱 구슬프게 울어대기만 하니 방법을 모르는 소년은 독구에 가만히 쉬자고 다독여본다. 그러자 독구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소년의 다리에 한참을 기대어 앉아있다.  


"독구야~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어? 오빠는 처음 들어봐... 독구 그렇게 우는 거....."


그래도 독구는 미동도 없이 소년이 쓰다듬는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에 접어든 그날 저녁, 언덕 위로 불어온 바람에 소년의 머리카락과 독구의 길지 않은 털이 나부끼듯 한다.

함께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날 저녁엔 소년의 눈엔 담을 수 없는 붉은 노을이 점점 짙어만 가고 있다.


그날도 토요일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뭔가 허전하고 이상하다. 소년이 대문을 열기도 전부터 낑낑 소리를 내며 흙마당에 발랑 누워 소년을 반기던 녀석의 몸짓이 느껴지지 않는다.


"독구~~!!!!"


"............"


"독구야~~!!!!"


"..............."


"엄마, 엄마~!!! 독구 어딨어? 독구가 안 보여~!!!"


"........ 독구 팔었어....."


"왜? 독구를 왜 팔아? 독구를 어디다 팔아?!!!"


"개장수헌티 팔았어...."


"뭐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없었잖아!!! 독구를 왜 팔았냐고!!!! 아빠, 엄마 미워!!! 빨리 독구 찾아와~~ 얼른 가서 우리 개 찾아오라고~~!!!!"


소년은 있는 대로 소릴 지르며 엉엉 울어댄다.....


"팔려가고 없는 개를 어디서 찾아와...."


"아빠, 엄마는 독구가 어떤 개인지 알아? 어떤 개인지 아냐고!!!!"


"아이고, 이눔아... 개면 그냥 개지 무슨 개가 어딨어...."


"독구는 앞에 웅덩이가 있을 땐 내 앞을 가로막고 못 가게 하는 그런 개라고!!"


"그건 지도 못 건너갈 것  같으니께 그랬겄지..."


"아냐... 아니라고!!!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가 나처럼 안 보여봤어??? 난 다 느낄 수 있다고!!!

데리고 와... 우리 독구 당장 데리고 와...!!!!"


"아이고... 이 눔이 왜 이려...."


"독구야~~~!!! 독구야~~!!!!"


아무리 소리 질러 불러봐도 다른 집 개들만 왕왕 짖을 뿐 어디서도 독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소년의 발소리만 들어도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자신의 얼굴과 손등을 핥아주었을 독구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기숙사에 돌아가서도... 다시 집에 돌아와서도... 소년은 독구 생각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다...


'독구.... 너는 너의 운명을 알고 있었니? 그날 나를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늑대처럼 울던 그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왜 우느냐고 했지만 독구 너는 이런 날이 올거란걸 느끼고 있었구나....

오빠는 보같이 눈치도 못 채고.... 항상 나를 지켜준 널 구해주지도 못하고........... 독구야.......!!!!'


남편이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와의 추억을 각색하여 글로 옮겨본다....

그랬다. 독구는 시각장애 안내견 훈련이라곤 받아본 적도 없는 그냥 잡종 개였다.

아무도 독구에게 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해 본 적도 없었지만 독구는 남편을 위해 맹인 안내견을 자처하게 되었다.

길 가다 마주친다 해도 독구만 달려와 반길 뿐 남편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날 이후 오십 중반에 이르는 지금까지 남편은 독구를 잊지 못한다.

누군가가 남편에게 혹시 못 먹는 음식이 있느냐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식성이 아주 좋아 못 먹는 게 없긴 하지만 못 먹는 음식 안 먹는 음식이 딱 하나씩 있습니다. 그건 알레르기가 있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복숭아는 못 먹는 음식이고, 보신탕은 안 먹는....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70마리이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안내견이 2만 마리에 달하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980마리가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안내견이 보급되었다.

국내에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가 1993년 설립되고부터 지금까지 280마리가 분양되었지만 그 수가 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차가운 시선만큼 안내견 역시도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애인 복지법 제40조에 의거하면 안내견은 대중교통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출입이 가능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의 출입을 거부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법적인 장치가 있으나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개선은 아직 개발도상국가 이전의 상태와 비슷한 상황일 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회에서 조차도 안내견 입장을 거부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안내견은 개가 싫고 좋고의 의미를 떠나 특수목적견으로서 시각장애인의 신체 일부라는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되려면 어느 특정직업을 선발하는 기준 이상으로 까다로운 데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안내견 대상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지능이 높고, 호감을 얻기 좋은 인상이며, 체격이 좋고 체력이 뛰어나면서도 공격성은 낮고 사람에 대한 친화력이 좋은 정말 완벽에 가까운 견종을 선택하는데 아마 내가 멍멍이 었다면 안내견 대상에도 들기라도 했겠는가 싶은 우스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품종은 골든레트리버와 레브라도 레트리버이지만 안내견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의외로 저먼 셰퍼드가 주로 분양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안내견 또한 1972년 국내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대구대학교의 임안수 교수가 분양받은 저먼 셰퍼드 '사라'이다.

그러나 입마개를 하지 않는 특수목적견의 특성상 저먼 셰퍼드는 왠지 공격성이 높을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에 최근에는 골든레트리버나 레브라도 레트리버를 90% 이상 선발하며 털 알레르기가 있는 일부 시각장애인을 위해 털이 덜 빠지는 스탠더드 푸들을 교육하기도 다.

안내견의 기원은 1819년 맹아학교의 창립자가 펴낸 책에 그 개념이 소개되지만 1916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의 수가 급증하며 독일의 몰덴부르크에 안내견 학교를 설립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전 유럽으로 퍼지며 1923년 포츠담에 맹인 안내견 훈련소가 개설되었으며 1929년에는 미국 모리스타운에도 훈련소가 설립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양성과정은 모두 7단계로 나뉘는데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아래와 같다.


1단계: 안내견 대상 선정

안내견 대상은 안내견 학교 내에서 그에 적합한 성품과 혈통의 개들 중 엄선한 종견과 모견을 통해 태어난 강아지들 중에서 선택되는 것으로 1단계가 시작된다.(시작부터 난도가 높다)


2단계: 퍼피워킹

대상 강아지가 생후 7주가 되면 약 1년간 일반 가정에 위탁되어 집, 마트, 대중교통에 이르기까지 사회화 훈련을 하는 퍼피워킹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예방접종, 사료, 관리용품등을 안내견 학교에서 전적으로 지원하며 정기적으로 가정에 방문하여 훈련과 관리를 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퍼피워킹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2020년 롯데마트 송파점에서는 퍼피워킹 훈련을 받는 강아지를 데리고 간 견주에게 '장애인도 아니면서 왜 개를 데려왔느냐'며 출입을 거부한 사실이 공론화되며 사람들의 비난을 받은 사실이 있다.


3단계: 안내견 훈련

퍼피워킹 훈련을 무사히 마친 강아지들은 약 2년간의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되는데 기본훈련, 복종훈련, 지적 불복종 훈련, 보행 훈련, 교통 훈련을 받게 되고, 이때 시험 합격률은 30% 그치게 된다. 

나머지는 각자의 성향에 맞는 치료견, 인명구조견 등의 다른 직업으로 분류되거나 그 나머지는 일반견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4단계: 분양을 원하는 시각장애인과의 만남

분양을 받기 원하는 시각장애인과 인터뷰 과정을 거쳐  성격, 직업, 걸음걸이. 건강상태, 생활환경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안내견을 선정한다.


5단계: 파트너 교육

4단계에서 적합한 안내견으로 선정된 강아지와 시각장애인이 4주간 함께 교육을 받게 된다. 이때 안내견학교에 마련된 숙소에서 2주의 훈련이 이루어지고 나머지 2주는 시각장애인의 가정과 활동영역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6단계: 사후관리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분양이 완료되면 훈련사들이 매년 2차례 해당 가정을 방문하여 시각장애인의 보행상태와 안내견의 건강상태 등을 확인한다.


7단계: 은퇴견 관리

시각장애인 한  명당 7년 단위로 새 안내견을 배정받는다. 그렇기에 열 살 전후 안내견은 은퇴를 하게 되며 자원봉사자 가정에 위탁되거나 안내학교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게 된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보행 및 업무 중인 안내견은 위 사진과 같은 복장을 착용하는데 이때의 안내견을 함부로 쓰다듬거나 만지거나 크게 이름을 부른다던지 음식을 주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실제 안내견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먹지 않도록 교육받으며 발이 밟히거나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더라도 짖거나 반항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2005년 SBS에서 신년특집으로 2차례에 걸쳐 방영된 '내 사랑 토람이'를 보면 지하철에서 발이 밟힌 토람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안내를 하다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동물병원에 찾아가게 되고 발가락이 찢어진 사실그제야 알게 된 시각장애인(실제 주인공인 한빛맹학교 특수교사이며 최초의 여성 안내견 사용자인 전숙연 씨의 역할을 맡은 배우 하희라 씨)이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때부터 눈이 퉁퉁 부어 다음날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을 만큼 울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에서 연출되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처지가 내가 봐 온 남편과 나의 처지(때로는 내가 안내견의 절반쯤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여서 더욱 격한 감정이입을 느끼며 코를 팽팽 풀어대고 꺽꺽거리며 울어댔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안내견이 많지 않다 보니 시각장애인이 모인 장소에서도 안내견을 많이 볼 수는 없지만 가끔 남편과 만나는 지인과 함께 또는 시각장애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안내견을 보면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쓰다듬지 않고는 힘들 정도로 자제력을 잃지만 꾹꾹 눌러 참아본다.

그나마 우리 가게에 오는 안내견은 편하게 있을 수 있기에 견주의 허락하에 하네스도 벗기고 마음껏 쓰다듬고 뽀뽀도 하고, 견주 대신 물도 먹이고 간식도 주는 등 사심을 듬뿍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처음 안내견을 보게 된 건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김예지 의원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돌아와 남편을 만났을 때였다.

위에서 언급했듯 7년마다 새 안내견을 배정받기에 지금 활동하는 '조이' 이전 안내견인 '찬미'를 만났는데 길을 걸으면서도 '찬미야 왼쪽~'하면 왼쪽으로 걷고, '앞으로 쭉 가'라면 신통방통하게도 말을 척척 알아듣는 것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그 후에도 연주회에 가게 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무한 친절을 베풀며 헬리콥터처럼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는데 그 굵고 힘센 꼬리에 세차게 맞아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막내 아이가 네 살쯤, 나와 단둘이 놀이공원에 갔다가 어떤 정안인 아주머니가 하네스를 착용한 안내견을 데리고 분수대 앞에 앉아 계시기에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성인이 된 시각장애인 아들과 아들 친구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오게 되었는데 그중 저시력 친구와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하여 잠시 쉬고 있는 안내견을 막내와 함께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견주를 보니 남편과 알고 지내는 이전 글에 소개한 하트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것이다.

맹인들은 적어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가 대부분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 '현명이'와 마음껏 사진을 찍는 호사를 누렸었다. 

몇 해 전 현명이도 은퇴하여 퍼피워킹 당시 자원 봉사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남편에게서 종종 어린 시절 '독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다.

이름도 성도 족보도 없는.... 안내견 훈련이라고는 들어도 본 적도 없는 총명한 그 녀석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 우리 아이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조차도 눈물과 웃음이 나게 하는 독구의 이야기를 고마운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그려본다.


"내 남편의 유년시절 작은 한때, 예쁜 추억을 갖게  준 독구야, 참 고마워....

오빠는 오십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독구와의 추억을 잊지 않는단다.

동네 아이들은 병신이라 손가락질하고, 구덩이를 파 놓고 빠지기를 기다리며 놀려대도 독구는 항상 그런 오빠의 위로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도록 먼 길로 돌아가다 보면 그곳엔 장애물이 있었고, 움푹 팬 웅덩이를 너의 작은 몸으로 막아서며 먼저 뛰어가선 '오빠도 할 수 있어~!!'라며 용기를 주었던 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니...

너무도 오래된 일이라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면 따가운 시선과 차가운 비웃음도 독구가 있어서 이겨내었날들도 많았단다...

그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치유와 위로라는 실체로 남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거야...

반백이 훌쩍 넘는 이날까지 너와 함께 뛰놀던 산속 어딘가를 잊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 아직도 그곳에 있어....

아직 변성기를 맞지 않은 눈먼 소년이 해맑은 소릴 질러대며 너와 술래잡기 하던 그 언덕 위에 아직 머물 있어...

바람에 낮게 흔들리는 풀잎 위에서 그의 다리에 기대어 쉬던  마지막 털의 감촉을 여전히 기억하는 소년이 있어....

고마웠다. 독구야... 외롭고 지치는 맹인 살이에 예쁜 기억을 남겨 주어서....

언니가 오빠 대신 고마운 인사를 전할게....

안녕....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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