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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Sep 06. 2024

손으로 보는 시계

남편과 사귀고 얼마 되지 않아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시계를 본다??'

남편을 만난 후 내가 지금까지 경험과 지식으로 체득한 것의 경계를 넘어 전혀 알지 못하던 미지의 영역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손으로 만져서 보는 시계도 그것 중의 하나였다.

남편의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는 비장애인들의 시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금색줄 시계였다.

다만 유리 뚜껑이 덮여있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리를 위로 젖혀 열어보고 움직이는 분침과 시침을 손으로 살짝 만져보며 시간을 확인한다.

그나마도 우리나라에는 시각장애인용 시계가 흔치 않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친구가 직접 사 들고 온 것이라 했다.

비장애인들이 신기하다며 한 번씩 만져본 시계의 얇디얇은 시침과 분침이 휘거나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종로에 있는 시계방에 가서 고쳐가며 애지중지 수년간 아껴 쓰는 중이란다.

세월이 지나며 감각적인 디자인의 시계들이 즐비하지만 구형 디자인의 금줄 시계를 계속 착용하고 있는 남편이 안타까워 보였다. 조금 더 세련되고 멋있는 시각장애인용 시계는 없을까 틈틈이 알아보던 중 '브래들리 타임피스'에 대한 존재를 알게 다.

그것도 우리나라 '이원'이라는 기업에서 한국인이 만든 시계라니 더욱 관심이 갈 만했다.

시각장애인 시계인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이원 기업의 창업자인 김형수 대표가 2011년 MIT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을 때 시각장애인이던 옆자리 친구가 자꾸 시간을 묻는 것이 계기가 되었단다.

친구는 분명히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계속 시간을 묻는게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건 버튼을 누르면 시간을 알려주는 '말하는 시계'라고 했다.

그런데 주위가 씨끄러운 데서는 잘 들리지 않아 시간 확인이 어렵고 수업 중이거나 도서관 등의 조용한 장소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유리 뚜껑을 열어 만질 수 있는 촉각시계도 사용해 봤지만 시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침이 부러지거나 고장이 잘 나는 까닭에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장애인들은 이미 스마트워치를 사용하는 최첨단 시대 속에 왜 시각장애인용 시계는 발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직접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만의 시각장애인용 시계를 개발하여 오히려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용하고 싶어 하는 멋진 시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디자이너, 엔지니어, 시각장애인과 함께 협력하여 만들게 된 것이 브래들리 타임피스였다.

이 시계는 두 개의 구슬이 내부의 자석을 따라 움직이며 시간을 나타낸다.

앞면과 측면에는 둥글게 파인 홈이 있는데 앞면의 구슬은 분(minute)을, 옆면에 있는 구슬은 시(hour)를 가리킨다.

평소 더 자주 확인하는 분을 더 수월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에 앞면에 분을 나타내는 구슬을 장치한 것이다.

눈으로도 구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시간을 확인할 때는 입체 눈금(3/6/9시를 나타내는 눈금)을 따라 손끝으로 만져보고 구슬이 굴러간 위치를 확인하여 시간을 확인한다.

그러나 생활을 하다 보면 구슬이 제 멋대로 움직일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손목을 살짝 흔들어주면 자력으로 인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 명칭에 '브래들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미국의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래들리 스나이더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폭발물 해제 작업을 하다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입은 지 불과 1년 만에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 수영 종목으로 출전하여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하게 되었고, 그 후 2016년 출전했던 경기에서도 세계 기록을 깨며 여러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던 인물이다.

김형수 대표가 설립한 이원(EONE)은 에브리원의 줄임말인데 브래들리 스나이더야말로 자신들의 기업의 뜻과 부합되는 인물이라 생각하여 그가 출시한 시계에 '브래들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실제 이 시계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전체 구매고객의 98%가 비장애인이라 한다.


물론 이 시계를 사용하면서도 불편한 점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안마 기술중 타법을 구사하기 위해 손님의 신체를 두들길땐 쇠구슬 두 개가 홈 안에서 움직이며'스릉 스릉' 돌아가는 소리가 고, 빠르게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데 구슬이 돌아가서 시간이 맞춰질 때까지 팔을 흔들어야 하는 것도 불편한 것 중의 하나라고 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음성지원을 해 주니 시간이야 알려면 알 수도 있지만 안마 일을 하는 그들이 손님이 있는데서 부스럭거리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묻고, '몇 시입니다'하는 안내를 받을 수가 없으니 유리 뚜껑 시계던 뭐던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예전에 착용했던 유리뚜껑 시계는 분침이 있어 조심성 많은 남편이 용하기엔 가장 편하고 익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맹인스러워보여 스마폰의 시계 기능을 보완 해줄 수 있는 것으로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착용한단다.

남편이 실제 사용하는 시계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칠이 벗겨지는게 보인다.

국내에 '닷(Dot)'이라는 소셜벤처기업의 창업자 김주윤 대표도 미국 유학시절 점자 성경책을 접하며 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세계최초의 점자 스마트 워치인 '닷워치'와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패드 '닷패드'이다.

그 중 닷 워치는 30개의 작은 핀이 내장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문자를 점자로도 바꿔 준단다.

또한 점자 패널로 시간은 물론 날짜, 알람 등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스톱워치, 발신자의 이름 점자 변환 표시, 타이머 등의 점자모드와 점자를 몰라도 사용할 수 있는 촉각모드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을 음성으로 사용해야 하다 보니 문자 내용도 공개적으로 줄줄 읽어준다. 대부분 아주 빠른 속도로 기 때문에 정안인들은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해도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나 같은 서당개는 상대에 대한 사생활을 본의 아니게 다 듣게 되니 이런 점자 서비스가 제공되는 스마트 워치라면 시각장애인의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몇 년 전 남편이 직접 모니터링 한 바에 의하면 점자가 너무 굵은 데다 속도가 늦어 실질적으로 사용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점자는 무엇보다 점간이 중요하다고 한다. 너무 좁아도 안되지만 점간이 너무 넓어 한 번에 내용이 다 만져지지 않다 보니 내용을 확인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의견을 전했다는데 시각장애인들의 이러한 실질적인 불편사항이 반영되어 기술이 보완된다면 좋을 듯싶다.


그러하더라도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불편하고 불합리한 것을 바꾸려 노력하는 그들이 있어 장애인들도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이런 이들의 선한 영향력을 통해 사회적, 정서적으로 소외된 장애인들에게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것에 대해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비록 기술력도, 기획능력도 없지만 이렇게나마 작은 목소리를 내며 이들의 삶을 소개하고 함께 나누며 생각하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주 글을 써 본다.

너와 내가 함께 하는 'everyone'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나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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