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으흐흐흑...... 악~! 아아악~!!!"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
" 저 형, 또 악몽 꾸나 봐..."
"그러게... 매번 어떡하냐?"
"하긴.... 부모한테 버림받은 마음이 오죽하겠어? 나 같아도 한이 맺히지...."
"나중엔 돈까지 갈취해 갔대잖아..."
"정말?... 야 진짜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다..."
K가 서울맹학교로 전학을 왔던 때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다.
다른 지역 맹학교는 아직 고등부가 생기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서울맹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거다.
그래도 시력은 남아있는지 지팡이 없이 보행이 가능한 정도였다.
하지만 방학이면 오갈 데 없는 K가 어쩌는 수 없이 맹인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었다.
다른 맹학교는 거의 대부분 고아원과 함께 운영되는데 반해 서울 맹학교는 유치부는 있어도 고아원 시설이 없다. 그렇기에 방학이면 기숙사를 개방하지 않아 학생들은 짐을 꾸려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개학이 가까워지면 돌아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K처럼 오갈 데 없는 학생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럴 때면 머리가 큰 고등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나 선, 후배 집에서 지내거나 여기저기 배회하다 학교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나마도 K는 교회에서 방학 동안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K가 전학 오고 첫여름 방학이 지나 2학기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정민아~!!!"
"어~ K구나? 방학 동안 교회에서 잘 지냈어? 어제 기숙사에 온 거야?"
"딱딱... 따닥따닥..."
"정민아 너 지금 어디쯤에서 얘기하냐?"
"뭐? 나 안 보여?"
"딱딱... 따닥따닥...."
"뭐야? 케인 들고 있는 거야? 아예 안 보여?"
"응.... 뭐 그렇게 됐어...."
"아니.... 무슨 사고라도 있었어? 그래도 꽤 많이 보였잖아...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어느 날 밤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하나도 안 보이기 시작했어...."
"어휴....... 참......"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뿌옇게라도 보이던 눈이 안 보이게 되는 일이 더러 있긴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조차 받게 된 K의 경우라니 딱하기가 말이 아니다.
K가 아홉 살쯤 되었을 때, 그의 아빠, 엄마는 그를 지방의 맹학교 기숙사로 보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수개월이 지나도록 그의 부모는 아무도 학교에 K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물론 함께 살면서도 살뜰히 챙기던 부모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영영 버림을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보이는 눈을 의지해 어떻게든 집을 찾아야 했고, 내 부모를 찾아야 했다.
어린 K는 선생님께 부탁해 보기로 마음먹었고, 선생님은 기꺼이 도와주겠노라 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 버스, 저 버스를 갈아타고 어렵게 집에 도착하니 낡은 철제 대문이 빼초롬 열려 있다.
"엄마~~!!! 엄마~~!!! 어엄마~~!!!"
"누구세요? 누군데 이러는 거야?"
"올케 언니, 누가 왔어? 누구야?"
엄마와 고모가 함께인 듯하다. 분명한 내 엄마와 고모의 목소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K의 담임입니다.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고 한 번도 부모님이 찾아오지 않아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저와 함께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머.... 저는 이런 아들이 없어요!!! 얘 너 누구더러 엄마라고 하니?"
"고모!!! 고도모 같이 있잖아.. 엄마, 왜 그래?"
"어머머? 얘 좀 봐 누굴 더러 고모래? 너 누구 찾으러 와서 고모라는 둥 엄마라는둥 부르고 그러니?"
"그럼 이 아이의 보호자가 아니라는 겁니까?"
"아유~ 그럼요~~ 우린 이런 애 몰라요!!!"
"아니야... 아니라고... 엄마가 저번에 나 데리고 학교 가자고.. 이제 학교 가면 글도 배우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다면서 데리고 갔었잖아.. 나 잘 안 보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엄마인 거 다 보여....!! 왜 그래 엄마!!! 고모 나 K잖아..."
"선생님, 이 아이가 착각을 하나 봐요.. 아휴... 눈도 잘 안 보이는 애가 참 안 됐다.. 엄마도 잃어버렸구나..."
그날 그렇게 되돌아올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70년대 말이었던 그 시절 유전자 검사가 있을 리도 없고, 어른이 아니라고 하면 어린애들 말은 당연히 아닌 게 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러나 분하고 서러운 마음은 가셔지질 않았다.
날이 갈수록 그날 그들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지는 듯했다.
물론 그날 이후로 아무도 K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자신을 낳아준 핏줄에게 매몰차게 버려진 것을 확연히 알게 된 그날의 충격은 생각보다 깊었고, 더 한 고통이었다.
고아가 되어서도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벗 삼아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살아왔는데 그나마 흐릿하게 보이던 눈조차 보이지 않고 하루아침에 캄캄한 암흑천지로 변해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까지 받았는데 이제 정말 빛 한 점도 볼 수 없는 그는 마치 신조차 자신을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교회에서 지내는 동안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신께 대들고 따지다가도 때로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처절하게 매달렸다..
그러나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듯 한 허망한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K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취업을 나가 안마사로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만져본 돈이 들어오니 자취할 집 보증금도 구할 수 있고, 월세도 내며 내 한 몸 먹고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적 문제가 항상 걸렸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부모라는 이들로부터 본적도 바꾸고 싶고, 할 수만 있으면 호적이라도 파 내 가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또 그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내어 세대분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십여 년 전 그들과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가 이전과 다르다. 어디서 k가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그들 귀에 들어간 까닭인지 그가 자신들의 아들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던 지난 그날이 되새김되어 더욱 역겨울 뿐이다.
"너 그렇게 자꾸 고집부리고 그럴 거면 천만 원 내놓고 세대분리인가 뭔가 해!!"
".........."
아무런 연고 없이 맹인으로 아득바득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는데 그나마의 생각도 할 여지를 깨뜨리는 억장 무너지는 소릴 한다.
피같이 모은 돈... 장님으로 살며 손가락질과 무시당해도 그나마 돈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팔십 년대 중후반 천만 원이라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음에도 세대분리를 하는 조건으로 그 돈을 내놓으라니 강도가 따로 없다.
하지만 지난날 어린 아들과 조카를 앞에 놓고도 뻔뻔스럽게 모른체 하던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이 떠올라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어떻게든 이 더럽고 찝찝한 악연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줄게.... 다 가져가!!!!"
"뭐,,, 뭐라고? 정말이야? 정말 천만 원 준다고? 어머머 여보, 얘기 들었어? 천만 원 바로 준대잖아"
"그래... 가져가... 그리고 죽어도, 아파도 나 찾지 마... 나도.....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찾지 않을 거니까..."
십수 년을 매일같이 그들을 원망하며 딱지가 앉을대로 앉아 쇠처럼 단단해진 심장인줄만 알았는데 그들과의 완전한 끝을 선언하려니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꽉 막히는 기분이다. 괜히 나오려는 주책없는 울음을 참으며 그는 그렇게 그들과 끝을 맺었다.
그날 이후부터 K의 악몽은 시작됐다.
하지만 허구한 날 욕을 해대고 울부짖으며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악연을 끊겠다는 그 다짐은 생각보다 그 상처가 큰가보다.
안 보이는 눈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럽고 불편한데 이처럼 부모에게서조차 버려지는 장애인들이 종종 있다.
아니면 짐짝 옮기듯 집으로 데려가선 끼니를 챙기지도, 신변을 보호해 주지 않고 방치하다 다시 기숙사로 옮겨진다. 또 그나마도 더 나은 집은 장애 없는 형제들과 비교하며 비아냥댄다.
함께 끼어 앉아 만화영화라도 볼라치면 눈도 안 보이는 주제에 너는 거기 왜 앉아 있느냐며 면박을 주는 집도 있다.
하물며 세상은 어떻겠는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세상 속에 내던져진 그들의 삶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애처롭고 불편하다.
언젠가 사춘기 아이 문제로 다른 학부모와 통화를 할 때였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힘내라는 말에 나도 나지만 남편이 힘들어한다고... 자신이 장애가 있어 아이가 그러나 싶어 속상해한다는 말에 상대가 나에게 위로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또 그 나름대로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고, 다 희망을 갖고 살게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분... 아무래도 인간극장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인간 극장이 시작되는 1화부터 끝나기 전까지는 우여곡절을 겪다가도 방송 끝부분에는 항상 밝은 분위기의 엔딩곡과 함께 희망을 꿈꾸게 하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따뜻한 나래이션의 인간극장을 너무 많이 봤는가 보다.
장애인의 삶은 비장애인들에게 그런 식으로 고착화된 듯했다.
인간극장 엔딩 장면과 나래이션은 어쩌면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일상 그 어디쯤일 뿐이지 결과가 아니다.
내가 매번 연재하는 글 속 장애인의 삶은 참 구질구질하고 슬픈 날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어떤 학부모의 생각처럼 다른 이들의 생각도 그쯤 어딘가에 박제되어 있는 것 같아 맹인의 삶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글을 쓴다.
하지만 살아야겠기에... 살아야 하기에...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붙잡고 살 길을 찾는 것이고, 웃으려는 것이다.
좋아서... 신나서... 행복해서만 웃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울 것이 아닌가....
그래야 그들이 어떤 욕구를 가졌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할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내 작고 부족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그렇기에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를 써 보는거다.
때로는 부모에게조차 버려져야 하는 속 아픈 그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