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의 끝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아침 아홉 시부터 시험을 보기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니 벌써 밤 열 시가 되었다.
270여쪽에 달하는 시험지를 오직 손끝 감각으로만 13시간씩 더듬고 또 더듬으며 치렀던 탓인지 맥이 쭉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또 걱정이다.
복지콜이나 나비콜이 잘 연결이 될까?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1.7배의 시험 시간이 추가로 주어진다. 예전엔 1.5배이던 것이 얼마 전 바뀌었다.
그러니 예전엔 시험이 끝나면 저녁 8시쯤이었는데 요즘은 8시 40분부터 시작된 시험이 밤 9시 40분쯤이나 되어야 끝이 난다.
2024년 11월 14일, 어제의 대학수학능력시험도 13시간 동안 치렀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먼저 묵자 시험지를 점역의 과정을 거쳐 점자 시험지로 찍어내거나 녹음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도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점역프로그램으로 점역이 이루어지고 점자 프린트로 출력이 되니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나 언어영역만 해도 약 100쪽의 시험지가 출력되고 전체 과목까지 합하면 약 270여 쪽의 소설책 한권 분량의 시험지가 만들어진다.
이뿐 아니라 점역된 시험지는 곧바로 정해진 숙소로 옮겨져 삼엄한 보안 속에서 교정작업을 거친다.
시험문제 출제자들처럼 정해진 호텔의 층수만 이용가능하며, 외부와 단절된 채 비시각장애 교사와 시각장애인 교사가 한 팀을 이루어 한쪽이 낭독하고 한쪽이 오타와 문장부호, 띄어쓰기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검사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예를 들어 1검에서는 국어과목을 확인했던 교사가 사회 과목의 교정을 보게 되고, 2검에서는 사회 과목의 교정을 보던 교사가 국어과목의 교정을 보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이루어진다.
그나마 수학 점역은 한 시간도 안되어서 끝이 나지만 국어나 영어 과목은 지문도 길고, 확인할 것도 많다 보니 모두들 피하고 싶은 점역교정 작업이라 했다.
그 기간이 모의고사는 10일, 수능시험은 2주에 걸쳐 이루어지며 다른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등도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점자 문제지뿐만 아니라 녹음형식의 문제지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 때는 녹음실과 계약을 맺고, 성우들이 2~3일에 걸쳐 녹음을 진행하게 되는데 점역교정이 이루어지는 같은 숙소의 지하쯤 되는 넓은 공간에 간이 스튜디오를 제작하게 된다.
부스와 음향시설을 구비해 두고 수학과 영어, 제2 외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의 녹음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언젠가는 언어영역을 녹음하다 고전문학의 지문 중 고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발음을 하지 않으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몰라 성우분이 난감해 했다.
그러자 교사들은 출제위원이었던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정작 교수 자신도 문제만 내 봤지 어떻게 읽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단다. 부랴부랴 대책을 세워야 했던지라 고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학자를 찾아내는 등의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출제위원들도 먼저 대책을 마련 후 문제를 출제한다고 한다.
제2외국어 시험을 치를 땐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일본어이고, 시각장애인 교사들도 일본어나 영어 점자는 익숙해서 교정을 보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수험생이 불어나 스페인어 등 생소한 점자어의 시험을 치르겠다고 한다면 비상이 걸린다. 그나마 알파벳 계열의 언어들은 영어와 비슷해서 어떻게든 읽으며 교정을 해 볼 수가 있지만 언젠가는 아랍어를 선택하겠다는 수험생이 있었단다.
아랍어 점자를 읽을 수 있는 교사도 없고 아랍어 점자가 있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어 생각 끝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연락을 해 봤지만 그곳에서도 전혀 손을 쓸 방법이 없어 결국 학생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아랍어 시험을 응시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괜히 장난을 해 본 거라나?
어쨌든 이런 절차를 모두 마치고 나면 시각장애인 학생들도 준비할 것들이 있다.
'편의시설 제공 신청서'이다.
신청서에는 추가 시간에 대한 항목, 편의 시설, 제2 외국어 과목 선택, 시험을 치르는 방법 등을 선택한다.
점자 시험지를 받을지, 성우의 목소리로 녹음된 것을 듣고 시험을 치를지, 또는 한소네라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전환 컴퓨터로 직접 조작하면서 시험을 치를지, 컴퓨터에서 TXT파일을 받아 기계음이 읽어 주는 소리로 시험을 치를 것인지 등을 선택해야 한다. 그럼 차출된 시각장애인 교사는 시험 장소에 찾아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 컴퓨터에 '센스리더'라는 시각장애인용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한다.
그 프로그램이 있어야 TXT 파일을 음성으로 읽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과 사무실의 노트북, 데스크톱 등의 컴퓨터도 새것이 생기면 남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센스리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일이다.
한소네도 개인 소장용으로는 입실할 수는 없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으로만 시험을 볼 수 있는데 이때 제공되는 한소네, 카세트와 컴퓨터는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편의시설 제공 신청서 제출 시 '편의제공 진단서'도 함께 제출해야 하는데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용도로 복지카드만으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장애 진단서를 새로 발급 받아 제출하라 한다. 언젠가 있었던 시험 사고 때문이다.
지방마다 진단서 제출 기준이 상이한데 어떤 지방은 서울, 대구, 부산, 광주에 위치한 3급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발급하는 서류만 인정하는 지역도 있고, 그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지역도 있다.
이 제도는 약 10년 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초기만 해도 제대로 된 양식이나 공문이 없어 병원에서는 괜한 책임이 따를까 하여 난색을 표하는 곳도 많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공식화된 공문과 양식이 있어서 수월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학생들은 시험 치를 장소를 배정받게 되는데 서울의 경우, 서울맹학교 학생(전맹)은 자신의 학교, 자신의 교실에서 시험을 보게 되고 저시력인들은 확대활자를 위해 여의도중학교의 약시학급에서 시험에 응시하게 되며 서울에 한 곳 더 존재하는 서울 한빛 맹학교 학생도 전맹은 서울 맹학교로, 약시는 여의도 중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게 된다.
지방은 서울에 비해 인원이 적다 보니 각 장애인을 모두 모아 지체, 시각, 청각 등의 장애별로 각 교실과 학교에 배치하여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자칫 일반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은 훨씬 일찍 시험을 치르고 퇴실하는 비장애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된다고 했다. 최근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때 수험생들은 점자판, 점필, 점자 종이를 가지고 교실에 입실하여 자신이 직접 번호와 답을 작성하게 된다.
지금이야 안마업을 진로로 삼기보다 시험을 치러 다른 진로를 찾게 되는 빈도가 늘면서 이런 제도들이 체계화되었지만 이전 학력고사 시절의 세대들만 해도 지금처럼 성우가 녹음실을 만들어 따로 녹음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시대였으니 점자 시험을 대신하는 방법으로는 옆에서 정안인이 대독 하는 것을 듣고 시험을 치르기도 했단다.
그 당시는 체력장 점수도 따로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은 체력장을 할 수가 없으니 20점 만점 중 15점을 부여받아 340점 만점에 325점이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점수였다.
시험을 치르는 일만 해도 이렇듯 복잡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니 시험 공부하는 그 과정은 또 얼마나 힘들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참고서나 문제집은 점역된 것을 판매하지 않으니 일일이 점역을 맡겨야 하거나 보이는 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불러달라 하여 일일이 받아 적어야 하고, 혹시라도 꼭 기억해야 할 단어와 중요한 문장엔 정안인들이야 별표나 밑줄, 형광펜이나 색볼펜으로 중요표시를 할 수 있지만 맹인들은 그런 사소한 일조차도 할 수 없어 일일이 점자로 몇 페이 몇째 줄이 중요하다는 장황한 글을 써야만 한다.
점역 참고서나 문제집도 몇달이 지나야 겨우 한권 받아볼 수 있다.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 시험을 치른 시각장애인들은 대구대학교의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구대학교 특수학과는 1946년 이영식 목사가 대구맹아학교를 설립한 것으로 1956년 5월 1일 대구시 대명동에 대구대학교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학교로 개교하게 되었
다. 그 후 여러 단계를 거쳐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61년엔 특수교육학과가 전국에 처음으로 설립되며 특수교육학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구시는 장애인 예술 중, 고등학교가 전국에 유일하게 존재하며 장애인 특수교육에 관한 예산과 열린 정책이 다수 존재한다.
요즘 들어서는 일반 대학교와 일반 과에도 많이 진학하지만 예전의 시각장애인은 거의 대다수가 이곳으로 진로를 정해 임용고사를 치르고 교사가 되어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일이 많았다.
안마업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이긴 해도 말이다.
올해 수능일은 모진 추위는 없어 다행이었다.
지금이야 자가용으로 데리러 오는 부모들도 꽤 있지만 예전엔 꽁꽁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지하철을 타고 가던 복지콜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나마도 복지콜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시험을 보고 나와서도 길에서 덜덜 떨며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고생 해 온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들께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눈이 아닌 손끝의 감각과 귀의 감각으로 13시간 동안 집중 of 초집중한 그들에게.... 또한 비장애인들보다 몇배나 더 힘든 수험생활을 보낸 그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시각장애인이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소개 해 본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속도를 맞추어 살기 위해 얼마나 고되고 피곤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것은 단지 시험과정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과정이 그러하다.
1.7배의 시간이 더 필요한만큼 삶의 속도는 어쩌면 더 많은 추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준다면....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여 편의를 제공하는 제도를 관련 법규가 시행 된다면 다소 느리기는 해도 소외 마저 당해야 하는 고통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닌 동행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