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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Nov 01. 2024

슬기로운 점자 생활

연필(볼펜), 지우개, 노트... 학창 시절 가방 속에 매일처럼 가지고 다니던 것들이다.

물론 요즘은 컴퓨터와 휴대폰 메모장처럼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록을 할 수 있지때론 종이 위에 연필로 사각사각 마찰음을 일으키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번잡스럽던 마음이 말끔히 정리되기도 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뭘 들고 학교에 다닐까? 무엇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까? 물론 그들도 세상이 변한만큼 컴퓨터, 휴대폰, 음성녹음 등 그 방법도 많이 다양해졌지만 그들이 학창시절 책가방 안에 넣고 다니던 필기도구는 어떤 것이었을까?

점자종이, 점관, 점필이 필수품이 아니었겠는가?

오늘은 이들에 대해 각각의 기능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점자종이...

시각장애인 그들은 그것을 일명 '흰 종이'라 불렀단다.

색을 볼 수 없는 내 남편도 그냥 그게 흰색이라 하니 점자종이라는 말보다는 '흰 종이'라 부르는 게 익숙했단다.

뾰족한 점필로 콕콕 찍어서 쓰는 점자이다 보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노트나 A4용지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해야 한다.

보통 세 가지 두께로 나뉘는데 120 모조의 얇은 점자종이, 150 모조의 두꺼운 점자종이, 180 모조의 아주 두꺼운 종이로 나뉘는데 180 모조는 도화지 정도의 두께가 될 듯하다. 그러니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은 글을 기록할 때는 180 모조를 사용하긴 하지만 대신 점자를 찍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리고 꽤나 가격도 비싼 편이다.

남편은 학창 시절 주로 120 모조 종이를 사용했는데 잘 찢어지고 뜯기는 바람에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150 모조의 종이를 사용했었단다.

그럼 낱장으로만 구매를 했었느냐 물으니 200장 단위로 종이 한 장 한 장을 묶어서 판매를 했는데 과목별로 노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3구 바인딩 파일을 문구점에서 사 달라하여 손으로 더듬어가며 펀칭기로 구멍을 뚫어서 끼운 다음 표지에 점자로 과목명을 표기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비싼 점자종이를 아낀다며 점자가 이미 찍힌 종이를 물에 넣고 불린 다음 기숙사 방이던 어디던 겹쳐서 또는 낱장으로 말려 놓으면 새것처럼은 되지 않더라도 점자 모양이 희미해져 거기에 다시 점자를 찍어 연습장으로 사용했었다.

요즘은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급하게 뭔가 메모 할 때는 얇은 a4용지에도 중국집 메뉴판 두꺼운 종이에도 점자를 찍어서 기록하기도 한다.


두번 째로 점자종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 중 하나가 점관이다.

점자는 점필로 찍어 앞면이 움푹 들어가고 그 뒷면은 오돌토돌하다. 찍을 때는 앞에서 찍지만 결국 읽을 때는 종이를 뒤집어서 튀어나온 면을 손끝 감각으로 읽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점자의 행 간이 겹쳐져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그 아까운 종이를 앞뒤로 활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앞면엔 1, 3, 5, 7, 9열에 점자를 찍고 뒷면은 2, 4, 6, 8, 10칸에 점자를 찍어서 앞뒷면을 활용하는데 이때 점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칸과 열을 잘 나눠서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점관이다.

앞은 점자 구멍이 1,3,5,7,9열에 뚫려 있고 우측 끝에는 열을 알려주는 표시가 되어 있다.

노트형 점관은 종이를 사이에 끼운 점관을 뒤로 돌리면 한칸 아래 2,4,6,8,10칸에 점자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럼 나중에 점자를 다 찍어서 앞줄을 읽고 뒤로 넘기면 두번째 칸부터 시작해서 지그재그 형식이 다.

크기가 각각 다른 점관이다. 점관을 펼쳐 점자종이를 끼워넣어 점자를 찍고 뒤집어서 엇갈린 행 사이로 파여있는 홈에 점자를 찍는다.
수첩용 점관이다. 점관 표면을 젖히면 저렇게 6점자식(우리나라 점자) 홈이 파여 있다.
노트형 점관 사이에 스프링 노트형 점자 종이 한 장을 끼워넣어 점자를 찍는다.

점관도 크기와 종류도 노트형, 수첩형, 휴대형 등 아주아주 다양하다.

노트형은 종이를 끼워 앞, 뒤로 돌려서 점자를 찍으면 되기에 편하기는 하지만 작업 중 전화가 온다던지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찍으려면 어디까지 찍었는지 몰라 일일이 점관에서 종이를 꺼내 손으로 만져야 되는 불편한 단점이 있다.

점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점판이라는 도구도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책받침 정도의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된다.  

사진처럼 막대 모양의 쇠로 만든 '자' 모양의 점관 사이에 종이를 끼우고 툭 튀어나온 돌기를 점판에 난 양쪽 구멍 끼워 넣어 고정하여 점자를 찍는다.

책받침 역할을 하는 점판이다. 노트형 점관을 사용하지 않을 때 '자' 모형의 점관의 양쪽 돌기를 점판 구멍에 끼워 사용한다. 나무 점판은 가격이 훨씬 비싸다.
위 네개의 점자 돌기는 쪽수를 기록하도록 6점자가 뚫려있고, 양 옆으로 아래, 위 작은 돌기와 구멍은 점자종이를 앞면을 기록할 때는 위에 구멍을 내어 끼우고 뒷면은 아래 끼운다.
얇고 긴 점관이다. 저 사이에 점자종이를 끼워 점판의 구멍 안에 점관 돌기를 끼워 고정하여 사용한다. 점판 중간에 아래위 홈에 돌기를 끼워 휴대한다. 왠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 점판 상단에는 아래, 위로 양쪽에 각각 작은  돌기가 튀어나와 있는데 앞면에 점을 찍을 때는 점자종이를 위의 돌기에 걸어서 쓰고, 뒷면을 뒤집어서 사용할 때는 점자 종이를 아래 돌기에 끼워 넣어 서로 행과 열이 겹쳐지기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점관에는 점필을 잠깐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다.

회중점관용 수첩이란 상품도 나오는데 이것은 종이 자체가 비닐이기 때문에 쉽게 눌러지거나 지워지지 않아서 계좌번호, 보안카드 처럼 지워지지 않고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록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수첩용 비닐 점자용지이다. 지워지지 말아야 할 은행 보안카드 등을 기록할 때 쓰인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수첩 기능을 가진 전화번호 기록 점자종이, 점관, 점판, 점필 세트이다.

자석이 있어 점필을 붙여둘 수 있고, 롤링 형식의 점자종이가 부착되었다. 급하게 전화번호나 이름 등을 기록하여 톱날모양의 절취선 모양대로 잘라서 휴대폰이나 pc에 저장 후 폐기하게 된다.

평소에는 눕혀두는 쇠막대를 위로 올리면 우산 손잡이 모양의 쇠막대가 보이는데 이것은 기록해 둔 쪽지를 바로 옆에 뒀다가 자칫 날아가 버리면 맹인은 찾을 수가 없기에 쇠막대에 꽂아서 보관하라는 세심한 배려이다.

더군다나 자성을 이용해 점필을 붙여 둘 수 있어 유용하게 사용 했었는데 남편이 약 20여년전 구입했던 일제 제품이다.

우리나라의 점자도구가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거나 품질이 좋지 않았던 시절엔 어쩔 수 없이 비싼돈을 들여 일본 제품을 사다 써야했다.

그나마도 저 제품은 이제 단종이 되어 나오지 않는데 그 당시 점자 리필용지를 세묶음 샀던것이 저게 마지막이라며 아쉽다고 한다.

휴대폰 메모 기능이 생기며 자주 이용하지는 않아도 간혹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던 제품이라 아쉬움이 더 한 듯 하다.

요즘은 '버사 슬레이트(Versa Slate: 다기능 점관)'라는 4행 20칸의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이 점관은 종이가 필요없는 페이퍼리스 회중점관이다.  

기존에 이용하는 점관처럼 종이를 끼워넣는 대신 점판 자체에 플라스틱 점자핀(점핀)이 점관 안에 들어 있어 꽂혀있는 점필을 꺼내어 점자를 찍으면 플라스틱 점판이 뒤로 밀리며 점자가 만들어 진다.

필요에 따라 점자 지우기 버튼이 있어 그것을 누르면 다시 초기화된다.

기록한 내용을 영구적으로 보관을 할 수는 없지만 급하게 메모할 일이 있을 때, 전화번호라던지 이름등을 받아 적었다가 휴대폰의 메모장에 기록 후 삭제하거나 수업시간 계산의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종이가 필요 없으니 환경문제에 도움이 되기도 하니 초기 비용이 약 십만원이라 부담스럽기는 해도 한 개쯤 구입해 놓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서 하나 사 둘까 싶기도 하다.


위에 소개한 모든 점관과 점판에는 점자 종이를 고정할 수 있는 돌기와 점필을 꽂아 둘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멍이 없는 제품은 자석으로 대체하여 점필의 보관을 용이하게 한다.  


세 번째는 시각장애인용 필기도구 중 가장 중요한 점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점자종이, 점관, 점필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점필'이다.

다른 건 다 없어도 점필이 있어야 그나마 굴러다니는 얇은 종이던 배달 광고판 종이에든 급한대로 점자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필의 손잡이 재질은 플라스틱, 나무, 우레탄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요즘은 거의 플라스틱 점필이 대부분이지만 잘 미끄러지지 않는 나무 점필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다시 제작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우레탄은 잘못하다간 점자가 찍히는 감이 줄어서 남편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적인 점자종이는 괜찮지만 스티커 형식의 비닐 모텍스는 점자를 찍을 때 힘이 필요한데 손에 부담을 덜 줘 충격방지는 가능하지만 점자를 눌러 찍을 때는 손에 힘도 많이 들어가고 점자도 잘 찍히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점필의 생긴 모양은 둥근형과 납작한 형태의 점필이 있는데 남편은 둥근 형태의 점필을 좋아하지만 만약 어디라도 데굴데굴 굴러가기라도 한다면 온 바닥을 더듬고 쓸어서 찾아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점필의 종류 중엔 점필과 점소봉을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지우개 달린 연필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점자를 쓰다 오타가 나면 지우개 대신 손톱이나 손끝으로 꾹꾹 눌러 안으로 도로 집어넣어야 한다. 이때 점필의 몸체에 점소봉을 탈부착하도록 만들어서 오타가 났을 때는 점소봉을 꺼내 점자를 꾹꾹 눌러주면 오타를 지우는게 한결 편하다. 또 점필 끝이 상했을 때 리필용 점촉을 구매해서 끼우면 된다.

아무래도 점필의 생명은 점촉에 있다.  연필이 닳아없어지는 것 처럼 점필도 오랜시간 사용하다보면 상하는 일이 많아 시멘트 바닥에도 나무에도 갈아 쓰고 보이는 사람에게 너무 뾰족하지 않게 둥글게 갈아달라고도 부탁하여 사용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기술이 발달해 싸고 좋은 점필을 많이 만들지만 예전만 해도 변변한 제품이 없어 조금만 쓰면 휘거나 종이가 뜯기거나 점을 찍는 느낌이 좋지 않아 학생으로서는 아주 고가이던 일본제품을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했단다. 

 당시 일본산 점필 한개의 가격이 4~5만원이나 되고 그것도 여러 개를 장만해야 하다보니 그나마도 고등학생쯤이나 되어서야 겨우 구매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전 남편 친구들이 화투놀이를 하겠다며 점자를 찍어달란다.

친구의 점필로 화투에 점자를 찍던 중이었다.

몇장이나 찍었나 싶었는데 딱딱한 화투장에 점을 찍으니 감당이 안됐던 것인지 점촉이 댕강 부러져 버린다. 약 사십년 전 샀던 일본산 점필이었고 튼튼해서 오래오래 사용했는데 드디어 명을 다 하게 되었다며 애석해 했다.

자신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동안 함께 해 왔던 흔치 않던 물건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점필은 점촉인 쇠막대가 휘어지지 않게 주의가 필요하고 특히 가방 속에 넣고 다닐 때는 더욱 그러한데 점관엔 점필을 잠깐씩 꽂아둘 수는 있어도 이동할 때는 점필을 분실되거나 파손되기 쉬워서 이를 위해 점필 몸체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 안에 실이나 줄을 걸어 점관에 난 구멍에 연결해서 분실하지 않도록 하는 숨은 뜻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점필을 빌려달라 하면 점관이나 점판에 붙어 있어 통째로 빌려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단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줄이 베베 꼬이게 되면 성격상 그냥 놔 둘 수가 없고, 일일이 풀기도 힘들다보니 기숙사 서랍에 하나, 가방에 하나, 교실 책상 밑에 하나씩을 두고 따로 사용했다고 한다.

누구의 눈을 빌리지 않고는 일일이 문구점에 가서 필통을 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으니 자신만의 방법으로 점필을 보관해야 했다.


우리는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구매하지만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어디서 이런걸 샀느냐 물으니 남편이 학교를 다닐 시절엔 학교내  기숙사의 방 한 칸에 간단한 빵과 군것질거리, 시각장애인용 문구를 판매하는 학생자치회가 있었더란다. 고3 학생이 후생부장이 되어 학생자치회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도맡아 했단다.

지금은 한국시각장애인 복지관(한시복) 생활용구 전시장에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위의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으며 파란창 쇼핑 스토어에서도 판매하는 상품들이 있다.


점자도구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막상 자료를 찾아봤지만 정보를 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크게 관심이 있거나 화제가 될만한 주제도 아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 대한 글을 써 오면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직접 주제어를 검색해서 글을 읽으러 들어오곤 한다.

사명감이 느껴진다.

시각장애인 그들은 누가 관심이나 있겠나 싶기도 한데다 워낙 자연스레 지나온 세월이라 체계적인 정보나 자료가 없다.

틀린 자료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도움이 되는 글을 쓰려 매주 노력한다.

정안인의 눈으로 바라본 시각장애인의 일상과 그들의 삶의 노력을 성실히 기록해보고자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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