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온도차

아버지는 코끼리였다

by 호두파이

''흐흠,, 흠흠.,!!''


'아버지는 벌써 몇 바퀴 째 집안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고 바깥 화장실에 잡쓰레기를 치우고 계시는 중이실 거다'


잔기침소리와 가끔씩 가래를 뱉어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면 우리 자매들은 그제야 아침 잠자리에서 마지못해 일어나 이불을 개키고 방안을 청소했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반듯한 아버지의 일상ㆍ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수려한 외모와 큰 키, 조리 있는 말솜씨로 온 동네 사람들에게 해결사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70년대 초반, 당시 정권을 비판하는 신문기사 몇 마디가

잘 나가는 젊은 기자의 앞길을 막았고,

그 후 하는 일마다 어쩐 일인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아버지는 출판사업을 마지막으로 ,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집안의 소소한 잡 일만을 하는 초라한 늙은이로 힘든 세월을 보내다가 65세의 이른 연세로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어느 해, 아버지의 제삿날에 우리 자매들이 모였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딸 부잣집 5 자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달랐다


입이 짧아 늘 반찬투정을 하고 고기반찬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는 큰언니는

아버지의 젊고 멋 시절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참 멋쟁이였지, 종횡무진 사회의 이곳저곳을 다시면서 기자로서 활동도 잘하셨지만,, 매일매일 바지 주름 세우느라고 엄마는 우리 아침밥도 제대로 안 챙겨줬잖어~^^''


''이구, 아버지는 언니랑 넷째만 예뻐했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다정한 눈길, 다정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어.. 나 미술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내 책가방이랑 교복 다 찢어버리고 목검으로 죽도록 맞았다니깐,,, 이구 그때 생각하면...''

얼굴과 몸매가 예뻐서 늘 동네 총각들에게 연애편지와 구애를 받았던 작은 언니, 그 작은 언니의 기억은 이렇다


동네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문을 들었던 아버지는 학교는 왜 다니냐고, 불같이 화가 나서 작은 언니를 혼내셨다

교복을 찢고 벽에 걸려있던 목검(아버지는 학생 시절 검도를 배우셔서 벽 한쪽에 손 때 묻은 목검이 걸려있었다)으로 언니를 때렸다

난생처음 보는 , 무서운 얼굴의 아버지의 고함소리, 뜯어말리는 엄마의 비명과, 잘못했다 얘기하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작은 언니의 고집스러운 외침을 나는 기억한다


''난 아버지가 무지 싫었어.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엄마가 벌어오는 돈에만 의지해서

긴 세월을 집에서 허송세월 했던 아버지가 난 싫었어''

내 바로 위의 셋째 언니의 기억이다


두 딸을 낳고 세 번째로 아들(오빠)이 태어나고 서열순으로는 넷째이지만 땰로서는 셋째ㆍ

그 언니는 늘 두 살 터울의 오빠와의 다툼이 많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늘 좋은 과일과 음식은 오빠 몫을 따로 챙겨놓아야 했고 그 나머지를 우리 5 자매가 나눠야 했기에 늘 넉넉하게 먹지는 못했지만 그리 가난하지도 않았던 살림이었는데 유독 셋째 언니만 오빠에게 치여 제대로 자기 뜻을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실제 그 부분도 다분히 영향은 있을톄지만ᆢ..)

상급학교를 들어갈 때마다 재수를 하는 오빠 때문에, 대학의 문턱에서는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던 셋째 언니.

그 언니는, 아버지의 오랜 시간의 무직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혜택과 권리가 무너졌음을 늘 속상해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표출해왔다


''나는 아버지가 아직도 그리워

내가 아마도 아버지 옆에서 제일 많이 잤을 걸~?''

막내 여동생의 말이다


막내를 임신했을 때, 딸을 내리 낳아 할아버지에게 미움받던 엄마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고 하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또 한 명의 아들을 기대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엔 꿈도 꾸지 못했던 이벤트를 준비하셨다

매일매일 단골다방 *레지(옛날 다방에 가면 차심부름을 하던 여자 종업원)를 시켜 아버지 신문사와 꽤 먼 거리인 우리 집까지 쌍화차와 커피를 거의 매일 배달하게 하셨다

진한 쌍화차에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워 레지가 건네주면 엄마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이 받아 들고는 주위 사람들 보란 듯이 천천히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호사를 누리며 태어난 막내 여동생은 계란 노른자 덕분인지 50이 넘은 지금까지도 큰 목소리와 튼튼한 체격으로 언니들을 좌지우지 휘집고 다닌다


원했던 아들이 아니었음에 처음에 실망은 하셨겠지만, 막내라 그런지 가장 따뜻하게 사랑도 많이 주신 것 같다

성격이 자매들 중에 가장 넉넉하고 좋은 것을 보면 서열도 성격 형성에 꽤 중요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막내는, 간경화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투병기간도 함께 했음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허~, 무엇이든 간섭하지 않고 용인했던 늙은 아버지의 넉넉함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할아버지 한 사람에 대한 느낌과 기억이 이모들이 다 다르구나''

우리 딸들에게 얘기하니 작은 딸아이가 깔깔대며 얘기한다

''그럼 외할아버지는 코끼리네~^^

옛날 고사에 나오잖아

코끼리를 두고 장님 몇 명이 말하길, 코끼리 몸을 만진 장님은 벽 같다고 하고,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 같다고 말한.."


그렇구나ㆍ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우리가 자라고 겪은 시기에 따라

다 다르고, 우리 기억의 편린대로 그 기억을 가둬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느낌과 편견도 이 처럼 우리 마음속에 그대로 가둬버리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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