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밸런스 게임

무연고로 산다는 것

by 호두파이

''왜 전 재산을 몽땅 기부한 거야? 차라리 말 안 듣는 조카라도 얼마 남겨줬으면 저리 쓸쓸히 가지는 않지..''

병실을 들어서자 , 의식 없이 몇 달을 홀로 누워계시던

옆 병상 할머니 자리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다른 병상의 간병인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전해 들은 소문은 이랬다.

그 할머니가 한 평생 시장에서 좌판으로 생계를 꾸려오셨는데, 가족 하나 없이 살다가 뒤늦게 친조카인지 아님 양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카 한 명과 노후를 보내다가 전 재산을 모 대학에 기부를 하셨고 했다

여기까지는 뉴스에 날 만한 미담인데 , 무슨 일 때문인지 함께 살던 조카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아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카가 화가 나서 할머니와 인연을 끊었다는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노환이 깊어지면서 할머니는 그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재산을 기부받은 대학 측에서는 할머니에게 기본적인 치료를 해주기로 약속했다는 것ㆍ

딱 거기까지가 내가 소문으로 들었던 내용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엄마 병문안을 가면서 옆 병상을 힐끔 힐끔 살펴보아도, 그 소문이 사실인지 그 할머니를 찾아오는 그 어떤 사람도 볼 수 없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체온을 체크하거나 주사액을 교체하는 간호사만 아주 무표정하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엄마 수술이 잡혀 이른 시간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병원 교수와 인턴, 실습생들이 할머니 병상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할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까무러칠 뻔 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몸을 덮었던 시트가 벗겨져 있었고 , 바짝 마른 알몸의 상태의 할머니가 의식 없이 누워 계셨다

회진 교수는 할머니의 이 곳 저 곳을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고, 제자들은 그 교수의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교수를 따라 우르르 다음 회진을 위해 병실을 빠져나가면서

십 수 명의 의료진 중에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갈색 거죽을 덮어주고 가는 람은 없었다


그 일련의 광경을 본 나는 내 몸이 발가벗겨진 느낌처럼 훅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서둘러 할머니의 몸에 시트를 덮어주면서 '만약 이 할머니가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돌봐 줄 그 조카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아

이런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걸까?''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수 십 년 제대로 먹지도, 쓰지도 못하서 힘들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 좋은 일을 하고서도

당신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그 당시 대학병원 측에서는 할머니께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곁에서 보기엔 그랬다) 할머니는 몇 달을 더 ,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로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생을 마감한다는 ,

나의 부끄러운 알몸을 덮어 줄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의식 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

전 재산을 기부하고도 이렇게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거의 방치 수준의 기초 치료만 받고 있는데,

만약 무연고자나 기초수급자로 살다가 쓸쓸히 차디찬 골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누가 그 죽음을 성스럽게 모실 수 있을 것인가?


그 할머니의 병상 옆 자리를 차지했던 엄마도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벌써 10년이 넘는 일이지만

난 아직도 누군가의 병문안을 갈 때마다

그 할머니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침대 시트를 덮어드릴 때 늦가을 낙엽처럼 버석버석 소리가 날 만큼 바싹 말라버린 할머니의 알몸이 생각나고,

무표정한 얼굴로 회진 돌던 이름 모를 교수와 의료진이 생각나고,

그 어마 무시한 광경을 보고도 담당 간호사한테만 소극적으로 항의를 했던 내 비겁한 40대가 생각난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최소한 그때보다는 나아졌겠지, 그런 희망을 가져보지만

가끔씩 뉴스에서, 주위에서 그 비슷한 사례들을 듣곤 한다


그 때마다 나는 내게 묻는다

내 나이 여든 즈음, 내 나이 아흔 즈음

나는 연고일까? 무연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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