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걱정을 숨길 수 없던 그간의 이야기
8월 8일, 전절제 수술을 마치고 바로 첫 번째 외래에서 들었던 희망찬 소식은 림프 전이가 제로라는 말이었다. 지극히 유방 국소에 한정된 암이었다는 것. 불행 중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어서 전해 들은 온코 검사, 즉 다중 유전자 발현 검사를 시행하자는 것.
이 검사는 수술장에서 절제한 나의 병변 부위를 해당 검사 기관에 보내는 방식이라 기다림의 기간이 꽤나 길다. 하지만 이 검사로 앞으로의 표준치료 방식을 결정함에 있어, 항암 약물치료가 필요한지. 항호르몬 치료가 필요한지를 정할 수가 있다. 즉, 다시 말하면 검사 결과에서 고위험군이 나오면 항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고, 이 말은 또 재발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게 보인다는 말과도 유사하다 볼 수 있다.
처음 유방암을 발견하고 수술까지 한 달, 수술 후 온코 검사를 통해 결과를 기다리는데도 한 달 남짓. 늘 언제나 기다림의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나의 조직검사 결과를 보면 애매모호함이 한가득했다. ki 지수도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종양의 크기는 2센티가 넘었고. 핵 분화와 관련된 지수도 아주 양호한 편은 아니었기에 어떤 상황을 보아도 애매모호해 주치의의 판단과 해석이 더 개입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에이 뭐, 어차피 아픈 거 이왕 제대로 치료하면 예방적 차원에서 항암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또다시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너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잖아? 갑자기 지극히 업무용 오피스 뇌로 장착해서 생각해 보면, 온코 검사 결과에서 항암의 효과가 3% 이하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항암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은 거다. 나와 같은 타입의 사람 100명을 보았을 때, 항암을 했을 때 유의미한 항암 약물 치료의 결과가 나오는 사람은 고작 3명 정도라는 건데. 그 3명의 사람이 유의미함을 보기 위해 97명이 불필요한 치료를 하는 건데. 그 97명에 내가 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99%의 항암을 준비하는 텐션, 항암을 패스하길 바라는 1%의 희망을 안고 지냈던 것 같다.
가급적 매일 운동을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킬로 가까이 걷기도 했고, 헬스장에서 주 5일을 출석하고 식단과 가벼운 운동을 지속하다 보니 체중은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추세가 되었다. 발병 직전까지 운동을 열심히 하며 다이어트도 하고 있었는데 그게 부스터 작용을 한 건지. 7월부터 밀가루 등의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고 술을 먹지 않기 시작했더니 4킬로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밀가루를 제한하며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피부 트러블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과 위장장애가 줄었다는 사실이다. 평소 장 기능이 좋지 않아서 대변보기도 힘들어하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소화불량을 베프로 달고 사는데, 요즘은 장 기능이 회복되고 있는 게 몸으로도 느껴진다. 실로 놀라운 사실. 역시 결국 몸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중요한 것. 그래서 좋은 것을 잘 먹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
항암을 하라고 하면 뭘 준비해야 하나 이것저것 생각해 보고 알아보다가 눈썹 문신, 치과 진료(충치, 스케일링), 폐렴/대상포진 예방주사를 생각해 두었다. 그리고 동네에 이제 진료 기록을 팔로우할 수 있는 내과를 하나 지정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요양병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집 앞에 커다란 암 전문 요양병원이 있는데, 거기 가서 드러누워있을까 생각도 들고, 온갖 리스트가 머리에 떠 도는 가운데 우선순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1%의 희망이 만드는 위시리스트도 있었다. 반지를 새로 사고, 운동화를 사고, 급작스러운 여행을 가고,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다녀오고, 예쁜 원피스를 사 입겠다는 희망찬 포부! 과연 이 두 가지의 리스트 중에 무엇이 결정될지 모르는 와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즐겁고, 가끔은 초조한 그런 날들이었다.
온코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한 외래 진료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마음이 붕 떠 있어서 그런지 진료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 넘게 일찍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원무과로 가 검사 결과지를 발급받았다. 진료에 앞서 검사 결과를 미리 알면 머리가 좀 정리되니, 주치의 설명을 그나마 좀 제대로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다. 검사 결과 수치가 나쁘게 나오면 항암을 해야 하는 거니, 진료실에서 주책맞게 울지 않고 미리 울고 들어가자 싶기도 했고. 수치가 나쁘지 않아 항암을 패스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가야지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수치로 주치의와 환자가 함께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를 대비해서였다. 여러 가정법 형태의 문장으로 항암을 했을 때와 하지 않을 때, 2가지 버전의 결과를 나에게 이야기해 줄 테고. 이제 보호자 분과 함께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할 텐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중차대한 미래를 결정하기엔 너무 찰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사실 진료를 보러 가기 전날까지 이미 집에서 논의한 결과는 있었다. 드라마틱하게까지는 아니어도 항암의 효과가 두 자릿수 이상의 유의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항암은 하지 않겠다는 합의였다.
사실 항암 약물치료라는 게 일장일단이 있다. 세포 독성 항암이 가진 무서운 파괴력은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몸 안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증식하는 모든 세포를 공격하고 파괴한다. 두피의 머리카락, 모낭, 구강을 포함한 몸속 모든 점막, 손톱과 발톱, 골수 등. 그래서 항암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다가 내 사지가 파괴되고 암을 죽이려다가 내가 죽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갑상선으로 인해 면역력이 무너진 나는 겨우 되살리고 있는 면역력을 항암으로 다 부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 값이면 항호르몬 치료와 일상 관리로 최선을 다해보자는 이야기를 해 두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치의가 항암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네, 하고 하게 되겠지만)
발급받은 검사결과지를 들고 차마 한 장을 넘기기 무서워 한참을 울었다. 이 몇 장의 서류가 나에게 어떤 내일을 주게 될지 너무 두려웠고, 막막했다. 오랜 시간 망설인 끝에 넘긴 검사 결과지는 스코어 8점으로 저위험군, 9년 이내에 원격 전이 발생 확률 3%, 동일 그룹에서 항암치료 진행 시 베네핏은 1% 미만.
1%에 걸었던 항암 패스의 기적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실을 들어갔고, 나는 항암 약물치료 제외, 항호르몬 치료 10년을 처방받게 되었다. 아직 가임기 여성으로 타목시펜 복용 10년, 졸라덱스 주사 5년(3개월 단위)을 시작했다. 졸라덱스는 진료 당일 바로 처방받았는데 바늘이 무슨 요구르트 빨대인 줄... 무시무시한 크기의 바늘이었다. 난생 살아생전 처음 보는 바늘인데, 저걸 5년이나 마주해야 하네...-_-
호르몬 치료제의 부작용을 체크하기 위해 2개월 후 검진이 잡혔다. 그리고 6개월 검진까지 자궁 내막 두께 체크를 위한 진료를 잘하고 진료기록을 가져가야 한다. 타목시펜의 부작용 중에 하나로 살이 찐다는 말이 있길래 물었더니 단순히 살이 찐다기보단 탄수화물이 축적이 잘 되기 시작하니 평소에 먹는 양보다 절반 가량을 덜 먹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들었다. 그래 뭐 이미 탄수화물은 잘 줄이고 있었으니 다행이다. 여러 부작용 중에 안과 진료를 요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안면홍조 등을 동반하는 폐경 증상이 시작되기도 할 텐데 부디 너무 심하지 않게 잘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무던하고 둥글둥글한 삶을 살아야겠다.
라고 말은 하지만, 오늘도 지키지 못하는 선언이자 희망이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