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던 그것 항암약물치료

대차게 이겨내 보자! AC항암 첫 이야기

by 럭키쥬쥬

결국 그리되었다. 종양학과 외래를 잡아두고 마음은 다잡았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한 마음.

꼭 해야만 하는지, 안 하는 것과 하는 것의 득실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교수님 본인이라면 하시겠어요,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뭉게뭉게 달린 채로 진료실에 들어갔지만, 교수님은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저라면 이렇게 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먼저 쿠션어로 넣어주셨다. 여기에 무슨 질문을 하겠냐고요. 그저 네 하고 나와야지 뭐. 그래도 나름 소소하게 몇 마디 질문은 했지만, 이제 기억도 나지 않을 뿐. 컨디션 좋으면 오늘 당장 주사 맞고 가시죠?라는 말을 들었으나, 컨디션은 좋지만 마음의 준비가 아직이에요.라는 말로 며칠의 시간을 미뤘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신나게 일식 요리 먹부림의 시즌을 만끽하였다.


항암 교육은 이미 외래날 다 받고 와서 당일에는 특별한 건 없었다. 내가 맞는 약물은 흔히 AC라 부르는 항암제다. 아드리아마이신 PFS(독소루비신)과 엔독산(사이클로포스파 미드)을 3주 간격으로 4회 처방받았다. 흔히 빨간약이라고 한다. 뭔가 링거를 달고 한두 시간 맞을 거라 상상했었는데, 와우. 나의 병원은 이 정도 처방은 5분 컷, 주사기 5-6개를 손등 정맥으로 직접 주입한다. 보자마자 식겁했던 주사기 사이즈. 하지만 내가 누구냐 벌써 졸라덱스를 1년 반 가량 맞아온 사람으로 이제 정맥 내어주는 것 정도는 타격감이 1도 없지.


입에 사탕 하나 우물우물 거리며 약물 투입을 시작했다. 몸에 들어옴과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감각.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초신경이 따끔거리는 느낌이다. 항문이 아픈 느낌이 있어 신기했다. 대략 5분도 안 걸린 주사를 맞고 복도를 나오는데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맞은 스테로이드 때문에 밤 잠을 하나도 못 자고 꼬박 밤을 새웠다는 것. 정말 최악이었다.


항암 시작 후 1주일간, 쉼 없는 구역감과 체력 저하가 나를 힘들게 했다. 구토방지제를 먹어야 잠잠해지고, 약 기운이 사라지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울렁거림. 이것은 마치 하루 종일 뱃멀미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쉼'이라는 걸 모르는 내가 소파에 앉아 잠들고, 낮이건 밤이건 어디서든 자꾸 졸기 시작했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고, 움직임이 점점 줄어드는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견딜만해라고 느껴지기도 했는데, 가장 불편한 건 변비였다. 변비로 힘들어서 약을 먹어야겠다라고 느끼던 그 순간, 설사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달력을 보니, 2주 차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못싸는 것보단 싸고 힘든 게 낫다고 하지만, 각자마다의 어려움이 다 있겠지. 하루에 10번 가까이 화장실을 드나들다 보면 내가 이렇게 설사하다가 죽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설사는 답이 없다. 이미 장점막이 다 깨져버린 상태니, 설사약을 먹으며 버티는 수밖에. 좌욕을 끊임없이 해 주는 수밖에. 집 밖에 안 나가는 수밖에.


종양학과 외래 봤던 날, 가발을 미리 맞췄다. 그리고 14일이 도래하기 전 그러니까, 머리가 우수수 빠지기 전에 쉐이빙을 하고 가발을 찾았다. 머리카락이 단 1도 빠지지 않는데 밀어버리려니 좀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3일 후면 다 빠진다니 골룸이 되기 전에 밀어버리자 싶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14일이 지나니까 소소속 빠지고 있는 샤프심 같은 머리카락들. 아마 긴 머리카락 상태였다면 엉망진창이 되었을 테니, 미리 정리한 건 올바른 판단이었다. 부작용은 여전히 설사와 복통, 장에 과도하게 차는 가스, 안구의 시린 증상. 이 정도가 지속된다.


2주가 지나고 나니 컨디션이 많이 회복된다. 부작용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그래도 설사하다 죽겠다는 말은 안 나오고, 집 밖으로 나가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좀 강변도 걸어볼까 싶고, 영화를 보러 갈까도 싶고. 아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지지? 컨디션 너무 좋네?라는 생각을 하며 달력을 보니 며칠 후면 2차 항암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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