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告하는 희망의 메시지
한국은 망한다 - 09 리더십의 부재 1
제7장
리더십의 부재: 지도자는 누구인가
"지도자가 길을 잃으면, 나라도 길을 잃는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존재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는 길을 아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인기와 이미지 정치가 비전을 대신하고, 정치적 생존이 국가적 비전보다 우선한다.
방향 잃은 나라는 표류하고, 국민은 불안 속에 방황한다.
이 장은 리더십의 공백이 어떻게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지를 짚는다.
제1절 대의 없는 권력, 지도자 없는 정치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너무나 오래되어 이제는 낡은 질문처럼 들리지만, 실은 지금 이 시점에 가장 절박하고 근본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정의, 평화, 공공선, 국민의 존엄, 인권과 생명에 대한 보호.
그 대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책임을 지닌 사람이 바로 지도자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질문은 마치 허공에 메아리치는 외침처럼 들린다.
권력은 남아 있지만 지도자는 사라졌다.
1. 대의 없는 권력
대한민국의 정치는 ‘리더’가 아닌 ‘권력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거’를 이용하고, 정당을 사유화하며, 지지층을 동원하고, 국민을 분열시킨다.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실제로는 공(空)의 약속일뿐, 그 약속이 향하는 곳에 ‘대의’는 없다.
공동체를 위한 방향과 가치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생존과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껍데기뿐인 언어들이 난무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은 대개 수단이거나 허위다.
정치인은 여론조사 수치를 들이밀며 "국민이 원했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것은 편향된 통계와 조작된 민심의 반영일 뿐이다.
대의 없는 권력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나무처럼, 외양만 존재할 뿐 생명력을 잃은 정치 체계를 드러낸다.
2. 지도자가 사라진 시대
지도자는 ‘어디로’ ‘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때로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존재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방향을 묻지 않는 시대, 이유를 묻지 않는 국민,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을 함께 목격하고 있다.
리더십이란 고통을 분담하고, 책임을 감수하며, 나보다 큰 것을 위해 결단하는 행위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권은 책임보다는 회피, 결단보다는 말장난, 분열적 갈라 치기를 택한다.
지도자는 사라졌고, 정치를 흉내 내는 권력자들만 남았다.
3. 왜 우리는 지도자를 잃었는가?
그 책임은 단지 정치인에게만 있지 않다.
우리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비전을 보지 않고, 이미지와 자극적인 말에 휘둘렸다.
언론은 의제를 만들기보단 정치인들의 설화(舌禍)와 말싸움을 소비했고, SNS는 진영 논리에 갇혀 ‘좋아요’가 지도자의 자격을 대신했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조종 가능한 권력자를 원하고 있는가?
제2절 대통령제의 그림자, 책임은 없고 권한만 넘친다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제왕적 권력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었고, 그 결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민주적 절대군주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은 막강한 인사권과 거부권, 법안 제출권과 행정명령을 갖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권력에 상응하는 책임은 구조적으로 희미하다.
대통령이 헌법상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점은 명확하지만, 정작 정치적 책임을 묻는 장치는 무기력하거나 작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탄핵은 극단적 선택지이며, 그 외에는 여론의 비난이나 임기 종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이면서도 ‘최소 책임자’로 기능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러한 구조는 국정 운영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한다.
대통령의 일방적 판단이 국정 전반을 좌우하며, 이는 때로는 무능한 리더십, 때로는 독단적 행보로 이어진다.
특히 정당 정치의 약화와 의원내각제적 견제 장치의 부재는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비대하게 만든다.
각료들은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국회는 여소야대의 경우 국정 발목 잡기로, 여대야소의 경우 거수기 국회로 기능 불능화된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공백’이다.
대통령이 내린 결정으로 사회가 큰 피해를 입어도, 실질적 책임을 지는 이는 없다.
실무자들이 처벌받고, 참모들이 사임하며, 대통령은 ‘보고받지 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논란을 유야무야로 넘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묻게 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책임지는가?"
이러한 무책임 구조는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고, 제도의 비극이다. 정치 시스템은 인간의 이기와 오류를 통제하는 장치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제는 인간의 오만과 독단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대통령이 권력을 휘두를 때는 왕처럼 절대적이고, 책임을 질 때는 시민처럼 평범하다.
이런 이중성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하며, 정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감각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은 종종 국민을 억누르는 수단이 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줄 것인가,
책임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책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할 것인가?
대통령제의 그늘 아래에서, 한국 정치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제3절 민심은 천심인가, 여론조사는 민심인가
“민심은 천심이다.”
이 문장은 한국 정치의 구호처럼 반복된다.
지도자들은 선거 때마다 민심을 받들겠다 외치고, 위기에 처하면 민심을 왜곡했다고 항변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말하는 ‘민심’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 다수의 집단적 의지인가, 언론이 만들어낸 분위기인가, 아니면 여론조사 결과로 대체된 수치적 환영인가?
오늘날 정치권에서 '민심'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손쉽게 소비된다.
특정 정책을 추진하거나 반대할 때, 지도자들은 민심이라는 방패를 든다.
그러나 그 민심은 정제된 통계 수치로 환산된 여론조사에 불과할 때가 많다. “국민의 60%가 반대한다”는 기사는 하루아침에 정국을 흔들고, “30%의 지지율로도 국정운영에 문제없다”는 항변은 냉소를 자아낸다.
여론조사는 본래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민심 그 자체인 것처럼 절대화되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수치를 관리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된다.
진짜 민심은 거리에서, 일터에서, 밥상머리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몇 개의 질문과 응답률에 기대어 그 민심을 해석하려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론이 조작되거나, 유도되는 경우다.
질문 문항 하나, 순서 하나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고, 그 결과는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된다.
포털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뉴스 배치와 댓글 순위는 민심을 왜곡된 거울 속에 가두어 버린다.
결국 정치권은 ‘민심’이 아니라 ‘민심처럼 보이는 것’을 좇게 된다.
이로 인해 정치 지도자는 군중의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고,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 인기에 집착한다.
국가의 중대 과제조차도 지지율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고, 시급한 개혁은 정치적 손실을 우려해 후순위로 밀려난다.
지도자는 어느새 민심의 거울이 아니라 민심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진정한 민심이란, 선거 때의 표심도, 여론조사 수치도 아닌, 국민이 삶에서 품고 있는 고통과 희망, 절망과 요구다.
그것은 때로 말로 표현되지 않고, 통계로도 잡히지 않지만, 정치는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
지도자는 여론조사를 ‘참고자료’로 삼되, 그 이면의 삶과 눈빛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공허한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정치권은 여론이 아닌 ‘현실’을, 수치가 아닌 ‘사람’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허상의 민심에 속고, 허깨비 지도자에게 운명을 맡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