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산업현장의 죽음, 숫자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가. 정치권은 단 한순간이라도 노동자의 죽음을 자기 일처럼 아파한 적이 있었는가. 통계는 줄었다고 하지만, 그 숫자 속에는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청업체의 노동자였고, 계약직이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죽음이 일상이 된 산업현장
하루 평균 1.6명, 산업현장에서 사라지는 생명이다. 건설현장의 추락, 공장의 끼임, 항만의 충돌 — 이 사고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장비를 생략하고, 공기 단축이라는 압박 속에 피로 누적된 노동자가 마지막 발판에서 미끄러진다. 위험은 늘 아래로 흘러간다. 그 아래에는 하청과 재하청, 그리고 가장 약한 사람들이 있다. 죽음의 구조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남겨진 사람들, 그들의 침묵
사망사고의 현장에는 늘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열심히 일하던 분이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남겨진 가족들은 법 앞에서 또다시 싸워야 한다.
“업무상 재해임을 입증하라.” 그 말 한마디에 울부짖음은 멎고, 긴 싸움이 시작된다. 추모의 현수막은 바람에 찢어지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안전모를 베개 삼아 잠든다. 이것이 대한민국 산업의 이면이다.
정치와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정치권은 참사 현장을 찾아 헬멧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그다음 날, 법안은 표류하고 책임은 사라진다. 진정한 추모는 묵념이 아니라 제도다. 노동자의 생명이 기업의 비용보다 싸구려 취급받는 현실에서, 그 어떤 국가 성장도 문명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산업의 부흥을 말하고 수출을 자랑하더라도, 그 대가가 노동자의 피라면 그것은 번영이 아니라 퇴보다.
가난이 만든 위험, 무관심이 만든 죽음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은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위험한 일자리를 떠맡는다.
그들에게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사치다.
생존을 위해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하는 현실, 그것이 오늘의 노동시장이다.
국가가 이 구조를 방치한다면, 그 방관은 곧 공모다.
다시, 생명을 중심에 두자
산업현장의 죽음을 줄이는 일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문제이며, 정치의 의지의 문제다. 하청의 하청까지 닿는 안전망, 고령 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 유족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살피는 보상체계 — 이것이 ‘선진국형 산업정책’의 최소 조건이다. 국가의 품격은 GDP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지키는가로 평가된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노동자의 죽음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이날 이후로는, 그 어떤 산업의 성장도 한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는 가장 단순하고도 엄숙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문명의 시작이며, 정치의 마지막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