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돋보기] 부끄러운 줄 알면 밉지나 않지
김정관 "2천억 달러 대미 투자, 한국 기업에 우선 활용 혜택"(종합)
김동규 기자 / 2025.11.3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은, 그 자체로 국가의 수치다.
얼마 전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과의 협상 결과를 두고 말했다. “2천억 달러는 미국에 주는 돈이 아니라, 우리 기업이 우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터프한 협상가”라 불렀다며 “가문의 영광”이라 했다. 그 한마디에서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난다. 자화자찬의 본능, 그리고 부끄러움의 부재. 국가의 돈을 갖다 바치고도 ‘우리가 유리한 협상을 했다’고 자랑하는 인식 수준이라니.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통상수장을 맡은 자의 태도인가. 문제는 개인의 실언이 아니라, 이런 인식을 가진 인물을 협상장에 내보낸 정부 전체의 무감각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늘 같다. “상대가 세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이게 그들의 변명이며,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다. 이런 인식으로 협상장에 들어가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강자 앞의 저자세를 ‘현실’이라 부르고, 굴종을 ‘실리외교’로 포장한다. 그건 협상이 아니라 패배의 습관이다.
더 한심한 건, 양보를 성과로 포장하는 그 태도다. “미국이 핵잠수함 추진 원료를 허락했다.” “우리 기업의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이런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다. 허락했다, 약속했다는 말의 주어는 우리가 아니다.
그마저도 냉정히 말해, 그것은 이미 내준 것의 값싼 보상 — ‘돈을 냈으니 던져주는 당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협상의 성과로 포장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게 바로 자기 비하적 외교의 전형이다. 이번 협상을 두고 말발께나 자랑하는 언론인들은 물론 일부 국민들까지 잘했다고 듣기에 거북할 정도로 칭찬한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내 것을 남에게 갖다 바친 협상이 왜 잘된 협상이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왜 강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왜 우리는 늘 양보를 ‘성과’로 바꾸어 자위해야 하는가. 외교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자존의 문제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웃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국익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말할 용기 — 그것이 진짜 협상력이다.
부끄러운 줄이나 알면 밉지 않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모르면, 그것은 한 사람의 오만이 아니라 체제 전체의 굴욕이 된다.
지금의 외교는 국익을 지키려는 싸움이 아니라, 체면을 세우려는 연극이 되어버렸다. 강자 앞에서 고개 숙이는 걸 지혜라 부르고, 굴종을 협상이라 포장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갑자기 협상에 나간 자들이 혹시 국익이 뭔지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국익은 강자의 눈치를 보는 데서가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잃지 않는 데서 지켜진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외교는 이미 진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