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서서히 조여 오고 있다

쇠사슬의 기억을 잊은 협상은 또 하나의 굴욕이다

by 나팔수

[논단] 가슴이 서서히 조여 오고 있다 - 쇠사슬의 기억을 잊은 협상은 또 하나의 굴욕이다


조지아의 한 공장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기술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다.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발에는 족쇄가 걸렸다.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오직 ‘한국 기업의 이름 아래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 나라의 협상 태도와 국민의 자존심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지금 한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는 또 다른 서류들이 오가고 있다. 그 종이 한 장에 찍히는 도장이, 다시 한번 우리의 손목을 묶는 쇠사슬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협상은 외교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상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지혜가 아니며, 굽히는 자세는 외교가 아니다. 굴종은 협상력이 아니라, 기억 상실의 증거다.


조지아에서 끌려간 이들을 생각하라.

그 장면은 한국의 현실을 압축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경제협정도, 기술동맹도, 무역이익도 의미가 없다. 주권 없는 번영은 공허하고, 존엄 없는 동맹은 위험하다. 그것이 우리가 외교와 협상을 바라보는 첫 번째 원칙이 되어야 한다.


협상팀은 지금 단순히 숫자와 조건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기억과 자존을 대표하고 있다. 당신들이 책상 앞에서 서명하는 그 문서 한 장이,

쇠사슬에 묶인 300명의 한국인을 다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외교의 진짜 힘은 기술이 아니라 기개에서 나온다. 국익은 구걸로 얻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압력 앞에서 허리를 세우는 순간, 그것이 바로 협상의 시작이다. 굴종의 외교는 일시적 안정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세대 전체의 수치로 돌아온다. 쇠사슬의 기억을 잊은 나라는 또다시 쇠사슬을 찬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협상 전략이다. APEC회의가 다가오면서 서서히 가슴이 조여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급히 성과를 내기 위해, 또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은 국익에도 통일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기억을 잃은 협상은 곧 굴복이며, 굴복은 언제나 역사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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