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문명과 반문명의 기로에 선 한국

by 나팔수

[논단] 문명과 반문명의 기로에 선 한국


한국이 인류문명의 등불이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곧 현실은 아니다.

한국이 문명 전환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내부의 장애물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사대주의의 유산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꾀해왔다.

조선시대의 명분론과 중화사대, 일제강점기의 친일 부역, 그리고 해방 이후 미국과 일본, 심지어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적 판단보다 ‘눈치’와 ‘따름’이 우선시 되는 정서가 고착되었다.

이러한 사대주의는 단순히 외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 언론, 소비문화, 리더십 구조, 나아가 국민의 자존감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문명을 새롭게 상상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기 언어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다른 나라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는 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리더십의 회복이다.

진정한 문명은 지도자 없는 대중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공동체를 이끄는 철학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 공감할 줄 알고 말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지도자, 가르치려 하기보다 먼저 경청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적 포퓰리즘과 이미지 정치, 무책임한 언행과 갈등 조장에 길들여진 리더들로 가득하다.

이 구조 속에서는 결코 새로운 문명이 태어날 수 없다.


리더십의 회복은 단순히 ‘좋은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성숙한 요구와 감시, 참여의식으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문명을 이끄는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시민이 길어 올리는 존재이다.


세 번째,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과제는 기억의 윤리다.

한국 사회는 너무 쉽게 잊는다.

일제의 학살도, 군부의 총칼도, 언론의 침묵도, 재난의 피해도…

역사의 죄를 진 자들이 언제든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복귀하는 풍경은 이 땅에서 기억이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편리한 망각’에 의해 지워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문명의 전환은 곧 존재방식의 변화이며, 존재란 곧 ‘기억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우리의 아픔과 실패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고 응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문명, 더 나은 문명을 말할 자격이 없다.


결국, 한국이 문명 전환의 주체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은 이 세 가지다.

사대주의를 버리고 자주적 언어로 세계를 말할 것.

포퓰리즘을 넘어설 리더십을 복원할 것.

기억의 윤리를 실천할 공동체로 거듭날 것.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능성의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서게 될 것이다.

망하지 않을 이유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한국은 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망하지 않을 이유도 충분하다.

정치와 교육, 언론과 자본, 공동체와 리더십…

그 모든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타인의 눈치를 보고, 과거의 잔재를 치우지 못한 채 미래를 말한다.

스스로의 언어를 만들지 못한 사회, 기억을 지우는 데만 능한 사회는

언제든 파국을 향해 미끄러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망하지 않을 이유 또한 너무나 분명하게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이 땅은 무릎 꿇지 않았던 민중의 기억으로 숨 쉬고 있고, 돌봄과 연대의 정서가 아직도 골목 어귀마다 남아 있으며, 전통과 첨단, 공동체와 개인, 과거와 미래가 끝없이 충돌하며 서로를 향해 다리를 놓는 나라다.


우리는 두 문명의 경계에 서 있다.

하나는 이미 무너져가는 탐욕과 경쟁의 문명, 다른 하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도래할 상생과 존엄의 문명.

그리고 한국은 바로 그 사이에 있다.


이것이 위기이자 기회다.

선진국의 모방자가 아닌, 새로운 문명의 실험자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은 단순히 국가의 정책이나 대통령의 담론으로 오지 않는다.

시민의 윤리, 기억의 의지, 일상의 태도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한글을 만든 나라.

민중이 제왕을 끌어내린 나라.

‘사람이 먼저다’는 말을 촛불로 증명한 나라.

그 나라가, 자신을 기억하고, 자신을 믿고, 자신을 버티며 걸어간다면 세계 문명의 전환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다.

문명의 전환은 먼 데 있지 않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작고 복잡한 공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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