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민주주의는 요즘 너무 바쁘다
요즘 한국 민주주의는 정말 분주하다.
헌법 속에 조용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돌고,
연설을 하고,
영화를 찍고,
단체를 만들고,
파출소를 차리고,
귀국하면 공항에서 라이브 방송까지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활동적인 체제였는지
이제야 알았다.
최근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칭하며 윤어게인을 외치는 한 인사의 귀국 입장문을 읽으면서
나는 민주주의가
제도가 아니라
1인 기업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대표, 편집국장, 의병장, 파출소장, 영화 홍보대사까지
모든 직함을 혼자 겸직하는 민주주의.
과로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0만 의병 조직”과 “자유파출소”라는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는 체제였는데,
이제는 시민이
사적으로 무장하고 조직해야 유지되는 모양이다.
다음 단계는 아마
“자유교도소”나
“자유사법부”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프랜차이즈처럼 늘어나는 중이다.
모든 명분은 하나다.
자유와 진실.
이 두 단어는 참 효율적이다.
앞에 붙이는 순간
모든 행위는 고결해지고,
모든 비판은 불순해진다.
자유한길단, 자유파출소, 자유대한민국.
자유가 아니라
자유라는 단어가 일을 하고 있다.
입장문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이것이다.
수사는 탄압이고,
고발은 언론 자유 침해이며,
법적 절차는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주장.
이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법이 작동할수록 위험해지는 체제다.
이쯤 되면
헌법은 민주주의의 적이고,
절차는 폭력이다.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55년간 법 없이 살았다”는 고백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대한민국이
법 없이도 잘 굴러온 나라였다는 사실에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앞으로는
범죄 경력 조회 대신
‘법 없이 산 기간’을 확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길수록 민주적이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단어, ‘진실’.
이 진실은 성격이 급하다.
검증을 싫어하고,
반론을 귀찮아하며,
법정은 아예 회피한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면 진실이고,
의심하면 왜곡이며,
질문하면 탄압이다.”
이쯤 되면 진실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충성의 문제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 모든 언어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아주 당당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영웅이 필요 없는 체제였고,
구원자가 등장하면 위험해지는 체제였다.
그런데 요즘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요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보다
민주주의가 남용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느낀다.
제도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식품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호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주의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헌법 속에 있다.
공항에도 없고,
유튜브에도 없고,
사설 파출소에도 없다.”
민주주의는
조용히 작동할 때 가장 강하다.
스스로를 외칠수록,
자기 이름을 앞세울수록
가장 빠르게 닳아간다.
요즘 한국 민주주의가
너무 많이 불려 다니고 있어서
그게 참,
웃기지도 않고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