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물이라는 전근대적 관행에 대하여
[논단] 세금으로 생색내는 권력
– 대통령 선물이라는 전근대적 관행에 대하여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늘 익숙한 풍경이다.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청와대는 선물 구성을 공개하고, 언론은 어떤 품목이 담겼는지를 상세히 전한다. 지역 특산품, 농축산물, 전통 식재료가 빠지지 않는다.
“국민의 식탁을 응원한다”, “지역 상생의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 장면은 대체로 미담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이 관행을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면,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이것은 정말 민주공화국의 풍경인가.
대통령 명절 선물은 대통령 개인의 호의가 아니다.
전액 세금으로 집행되는 국가 예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물은 언제나 “대통령의 마음”, “대통령의 정성”이라는 언어로 포장된다. 돈을 낸 주체는 국민인데, 선물을 베푸는 주체는 권력으로 연출된다. 이 순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조용히 비틀어진다.
이런 관행은 명절 선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대통령 시계’가 있었다. 청와대 문양이나 대통령 휘장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선물로 전달되었고,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대통령 시계를 찼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과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사거나, 실제로 그렇게 인식되는 사회적 풍토도 존재했다.
이 장면은 지금 돌아보면 다소 우스꽝스럽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은 군주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물건을 받았다는 사실이 일종의 ‘은전(恩典)’처럼 받아들여졌고, 권력과의 근접성을 암시하는 표식처럼 작동했다. 더구나 그 물건은 대통령의 사비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대통령은 세금으로 물건을 나눠주면서, 마치 개인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세하는가.
이 관행은 본질적으로 전근대적이다.
권력이 물질을 나누어 주고, 그 대가로 상징적 충성이나 호의를 기대하는 방식은 군주국가의 유산이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국가가 시민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제도와 법률을 통해 보장되어야지, 특정 인물의 이름을 단 물건으로 전달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물 관행은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반복돼 왔다.
군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진보든 보수든 형태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같았다. 어떤 정부는 농민을 위한다며 쌀을 담았고, 어떤 정부는 지역 균형을 말하며 특산품을 넣었다. 메시지는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국가 예산으로 마련한 물품을 대통령의 선물처럼 포장했다는 점이다.
이 관행이 오래 지속되면서, 이제는 질문조차 사라졌다.
“왜 하느냐”는 묻지 않고, “올해는 뭐가 들어 있느냐”만 관심사가 된다. 관행은 검증되지 않은 채 굳어졌고, 비판은 예의 없음으로 취급되었다.
이쯤 되면 선거법의 형평성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일반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선거구민에게 선물이나 금품을 제공하면, 그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액수와 무관하게 기부 행위는 엄격히 제한된다. 정치적 영향력을 물질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대통령은 예외가 된다.
대통령 명절 선물이나 기념품 제공은 ‘개인의 기부’가 아니라 ‘국가 의례’ 혹은 ‘직무상 행위’로 분류돼 왔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 설명은 형식적일 뿐, 실질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대통령 명절 선물이나 대통령 시계는 분명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다.
대통령의 이름이 붙고, 대통령의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며,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것이 정치적 효과를 전혀 낳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법적으로 허용된 예외가 정치적으로도 정당하다고 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더 아이러니한 장면은, 이러한 선물들이 종종 중고시장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명절 선물은 미개봉 상태로 가격이 매겨지고, 웃돈이 붙는다. 이 장면은 수령자를 비난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선물이 시민의 일상에서 공동체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증거다. 국가가 담으려 한 상징은 전달되지 않고, 남은 것은 ‘쓸모’와 ‘가격’뿐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 선물 관행은 그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다.
통합을 말하지만 통합되지 않고, 존중을 말하지만 존중받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예산 집행의 부산물이자, 권력 상징의 잔재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관행이 유지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지 않으면 “왜 안 하느냐”는 말이 나오고, 하면 “원래 해 오던 것”이라며 넘어간다. 국회도, 행정부도, 사회도 이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통령 선물은 합법이지만 불편한 풍경으로 고착된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 관행은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는 선물로 통치하지 않는다.
국민에 대한 배려는 물건이 아니라 제도로, 호의가 아니라 권리로 표현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이름을 단 선물은 민주주의를 강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을 과대 포장하고, 시민을 수혜자로 낮춘다.
세금으로 생색을 내는 권력은,
아무리 오래 지속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통령 명절 선물과 대통령 기념품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권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감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제는 그 상징을 내려놓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