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유치원 교사라면

by 나팔수

내가 만약...

유치원 교사라면

처음 만나는 세상


아침 등원 시간의 교실은 늘 조금 소란스럽다.

작은 신발들이 현관에 가지런히 놓이기도 전에 아이들은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겹친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엄마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아이도 있고, 이미 교실 안으로 달려가 친구를 찾는 아이도 있다. 어른에게는 비슷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곳에 서 있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는 모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어떤 아이는 문 앞에서 잠깐 멈춘다. 부모의 손을 놓는 순간이 아직은 낯설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며 한 번 더 확인하는 눈빛에는 기대와 불안이 함께 섞여 있다. 그 짧은 몇 초의 망설임이 지나가야 비로소 아이는 교실 안으로 한 발을 들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하루를 함께 보내는 어른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집 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회’의 얼굴이기도 하다.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다려 주는지에 따라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유치원 교실은 작지만, 인간이 처음 경험하는 공동체의 형태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에게는 이름을 불러 주는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어른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자기 이름이 다정한 목소리로 불리는 경험은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존재”라는 감각을 만들어 준다. 반대로 서두르는 말투와 무심한 표정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 그 교실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하고.

아마 먼저 눈높이를 맞추려고 할 것이다.

서 있는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아이의 높이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이름을 불러 주는 일. 교실에 들어오기를 망설이는 아이에게는 서두르지 않고 잠깐 기다려 주는 일. 친구보다 조금 늦게 따라오는 아이에게 “괜찮아, 천천히 와도 돼”라고 말해 주는 일. 울음을 참고 있는 아이에게는 이유를 묻기보다 곁에 있어 주는 일. 거창한 교육 방법이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느낀다.

어른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 교실의 공기도 부드러워지고, 누군가를 비교하는 말이 줄어들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안전함 속에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법을 배운다.


유치원 교실은 시험도 성적도 없는 공간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배움이 시작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기다림, 차례, 함께 사용하는 물건,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법, 울고 싶은 마음을 참아 보는 경험. 이런 것들은 교과서에 적히지 않지만, 한 사람의 성격과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나는 완벽한 교사를 상상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른도 피곤한 날이 있고, 실수하는 순간이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한 명의 속도를 잠시 존중해 주는 선택이 가능하다면 그 교실의 하루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 몇 초가 아이에게는 “여기는 안전한 곳”이라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은 거창한 교육 제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작은 존재를 어떻게 대하느냐, 아직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기다려 주느냐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보다, 그 자리에서 어떤 태도로 사람을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해지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교실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 아이가 고개를 들 때까지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 주고 싶다. 그 짧은 기다림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생각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첫 기억이 될 수 있다면, 그 하루의 시작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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