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의 불편한 이웃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지정학적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좁은 반도 위에 서 있지만, 실상은 두 문명권이 충돌하는 거대한 압력 지대의 중심에 놓여 있다. 문제는 한국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이웃을 두고 태어났는가에 있다. 국가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이 지정학적 조건이야말로 한국이 겪는 지속적 긴장의 근본 원인이다.
서쪽의 중국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한국과는 전혀 다른 체제와 문명 감각을 가진 국가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중심으로 통제·감시·지시·복종의 질서를 국가의 정상적 운영 방식으로 삼고 있다. 개인의 자유는 언제든 국가가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며, 정보는 곧 권력의 자산이다. 반면 한국은 민주주의·자유· 인권을 국가의 기초로 삼고, 권력은 시민에게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 중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국이 말하는 ‘안정’은 통제의 강화이고, 한국이 말하는 ‘안정’은 자유의 확보다. 이렇게 기초 단계부터 세계관이 충돌하는 두 나라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한국이 매일 견뎌야 하는 가장 큰 부담이다.
그리고 이 체제의 괴리는 단순한 이념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위험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은 중국산 전기차를 ‘이동형 감청장치’로 규정하며 군 고위층 차량 700대를 전량 회수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끄고 보안 기능을 강화했음에도, 중국산 커넥티드카가 위치·대화·동선·작전 패턴 등 국가 기밀을 수집할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더 이상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데이터 생산 장치이자 정보전의 플랫폼이 되는 시대에, 중국의 시스템은 언제든 이 장치를 감시·도청·통제의 도구로 전환할 수 있는 위험을 품고 있다. 즉, 중국이라는 이웃은 체제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불편함은 선택이 아니라 지리의 운명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비롯된 또 다른 차원의 불편함이 한국과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도심 한복판에서 아이에게 길거리 화단에 배변을 시키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많은 이가 “문화 차이”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이것은 문화 차이 이전의 문제다.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적 시민 규범, 도덕적 질서, 문명적 기초의식조차 공유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는 공공장소를 공유하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공공 공간에서의 기본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의 안전과 위생, 공공성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런 최소 규범조차 없는 집단이 대규모로 한국에 유입될 때 한국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피로는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현실적 위협이 된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경험이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중국 관광객들의 반복적인 무질서한 배변 문제 때문에 호텔 로비와 기둥에 “배변 금지” 표식을 붙여야 했다. 공공질서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태도가 세계 각국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집단적 감각이라는 의미다. 이런 집단이 아무런 기준 없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결국 한국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정 그 자체를 흔드는 요소가 된다. 미국에서 외국인이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공공질서를 훼손하면 경찰이 즉각 출동하여 단속하듯, 한국 역시 이러한 행동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고, 필요하다면 출입국 관리 단계에서 최소 규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포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한국의 또 다른 이웃인 일본은 전혀 다른 종류의 불편함을 안겨준다. 일본은 한때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과 약탈을 일삼았고, 한국의 언어·문화·이름·존엄을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의 본질은 과거 그 자체보다는 그 과거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 있다. 일본은 지금도 식민지 지배를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이미 끝난 일”로 포장하려 한다. 과거의 폭력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이 가까운 이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게 지속적인 윤리적·심리적 압박이 된다. 한국은 이웃을 선택할 수 없지만, 이웃이 과거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 부담은 더 무겁게 남는다.
결국 중국과 일본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한국에게는 공통적으로 문명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중국은 체제의 차이로, 일본은 역사 인식의 차이로 한국을 끊임없이 흔든다. 한국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생존해야 하는 구조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자리가 만들어낸 숙명이다.
그러나 이 숙명 속에서도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한다. 한국이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더욱 견고히 세우고 세계 여러 나라와의 외교적·경제적 파트너십을 다변화할 때, 주변의 압력은 약해진다. 중국의 영향력은 체제가 다를수록 오히려 한국의 문명적 우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일본이 과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세계에 알림으로써 기억의 주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공공질서와 시민 규범이라는 문명적 기준을 명확히 세워 규범 없는 집단이 한국의 질서를 흔들지 못하도록 국가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한국은 불편한 이웃들 사이에 끼어 있지만, 그들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어떤 체제를 유지하든, 일본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한국이 어떤 문명 기준을 세우고 어떤 질서를 지켜내느냐가 한국의 길을 결정할 것이다. 불편한 이웃은 바꿀 수 없지만, 그들과 어떤 거리와 원칙을 유지할지는 한국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숱한 위기와 억압을 뚫고 오늘의 문명 수준에 도달했다. 앞으로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웃의 무질서가 한국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이 이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