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과와 제도개선이 아닌, 책임추궁과 거부가 답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교묘하게 봉합하려 한다. “유감”이니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리며 본질을 가린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한국인 기술자들을 새벽에 급습해 쇠사슬로 발목을 묶고 케이블 타이로 손목을 결박해 끌고 간 행위 자체가 이미 깡패적 폭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미국 당국의 변명이다. “그들이 그렇게 중요한 기술자인 줄 몰랐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자가 아니면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가도 된다는 뜻인가? 보통 사람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괜찮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비문명적이며, 인간 존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이 순간 미국은 문명국가의 외교 파트너가 아니라, 길거리 양아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순하다. 또다시 “우리가 너무 심했나” 자책하며 물러서서는 안 된다. 이번만큼은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기업들도 이번 기회에 무엇이 이익이 되고 자존을 지키는 일인가를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 사드사태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중국에서 발을 빼지 않았는가.
경제적 요구는 더욱 날강도 같다. 트럼프는 한국에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한다. 마치 맡겨놓은 돈이라도 있는 듯이. 이게 너무 말도 안 되는 강도짓인데도 실체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이 액수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90%에 해당하는 돈이다. 만약 이 돈을 바친다면, 한국 금융은 즉시 붕괴한다. 외환보유액 없는 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IMF 경제위기 때를 상상해 보라.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통화스와프 같은 꼼수를 외교 전략인양 들고 나온다. 일본처럼 수천억 달러를 바치고도 수익의 대부분을 빼앗기는 굴욕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일본이 아니다.
안보를 빌미로 한 협박도 뻔하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세계 5~6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핵무기까지 개발할 능력이 있다. 조 단위의 주둔비를 대주는데도 고마움은커녕 협박만 받는 현실을 언제까지 견뎌야 한단 말인가. 이제부터는 미군 주둔비를 우리가 받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우리만 미군들을 칙사 대접하고 있는 줄조차 모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통일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구한 말의 역사적 과오를 절대 반복해서는 안된다. 통일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중매쟁이도 아니고 트럼프와 시진핑을 맺어 주면 우리한테 득이 될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어디 양아치는 양아치일 따름이다. 양아치들을 불러 모아 신성한 국제회의의 물을 흐리지 마라.
해법은 분명하다. 미국이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든, 사과 몇 마디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재발 방지”라는 약속도 공허하다. 그것은 미국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단 하나, 가해자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하며 구체적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그 외의 사과는 모두 기만이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 주말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미국의 오만을 규탄해야 한다. 대통령 내란에는 그렇게도 잘 들고 나온 촛불은 어디로 갔는가. 내란보다 더한 강도를 만났는데. 아울러 생활 속에서도 행동해야 한다. 미제 불매운동도 해야 하지 않는가. 일본의 수출규제에는 일제불매운동을 잘도 하면서 미국에는 입도 뻥긋 못하는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 갈등이 아니다. 미국에 대한 환상, 선진국 신화, 백인 국가 숭배라는 낡은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깔보고 요구하면 언제든 들어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양아치의 먹잇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과와 제도개선은 답이 아니다. 진짜 답은 거부와 결기다. 이번 사건을 끝까지 밀어붙여 미국의 오만 방자함을 꺾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굴종의 고리에 묶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순간이다.
[Editorial] Not Apologies or Institutional Reforms, but Accountability and Rejection Are the Answer
The United States is attempting to neatly cover up this incident. With phrases such as “regret” and “institutional reforms to prevent recurrence,” it tries to blur the essence of the matter. But the problem is not the system. The act itself—raiding Korean engineers at dawn, chaining their ankles, binding their wrists with cable ties, and dragging them away—was already a gangster-like act of brutality.
What is even more outrageous is the excuse of the U.S. authorities: “We didn’t know they were such important engineers.” What does this mean? That if they were not engineers, it would have been permissible to chain them up and haul them away? The very idea that ordinary people could be treated this way is already uncivilized, a complete denial of human dignity. At that moment, the United States proved itself not a diplomatic partner of a civilized nation, but a street thug.
And yet Korean society remains far too meek. Once again, we must not step back with self-reproach, asking, “Were we too harsh?” This time, unless we firmly reject such behavior, we will regret it for generations. Companies, too, must clearly distinguish what truly protects their interests and what preserves their dignity. Have we not already learned, after suffering immense losses during the THAAD crisis, that withdrawing belatedly is too costly?
The economic demands are even more brazen. Trump has pressured Korea to invest $350 billion in cash in the United States—as if it were money deposited with them. This is outright robbery, yet its magnitude is scarcely grasped. That sum amounts to 90 percent of Korea’s foreign reserves. If such money were handed over, Korea’s financial system would collapse immediately. An economy without reserves can only crumble in an instant. Recall the IMF crisis. And yet the Korean government touts tricks like currency swaps as if they were genuine diplomatic strateg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