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깡패짓, 우리의 대응은?

by 나팔수

[논단] 미국의 깡패짓, 우리의 대응은?


미국은 더 이상 문명국가의 외교 상대가 아니다. 트럼프와 그의 세력은 이제 완전히 깡패로 전락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이 깡패라고 해서 따질 이유는 없다. 깡패는 깡패일 뿐이다. 문제는 그 깡패짓이 우리를 향할 때다. 트럼프가 한국인 기술자들을 불법 체포하고 쇠사슬을 채우며 모욕을 준 것도, 협상에서 우리를 겁박하려는 계산의 일부였다. 우리는 여기에 침묵할 수 없다.


트럼프는 날강도처럼 한국에 3,500억 불을 현금으로 투자하라고 요구했다. 도대체 왜 우리가 그런 돈을 미국에 쏟아부어야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 본질은 묻지 않고, 통화스와프를 하나의 협상카드로 제시하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외교 전략인 양 포장한다. 빚쟁이도 아닌 우리가 미국에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주는 꼴인데, 미국에 대한 압박인 듯 자랑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날강도의 요구를 정당한 거래로 포장하고, 굴욕을 외교적 성과로 둔갑시키는 이런 태도야말로 진정한 문제다. 국민의 돈과 미래를 미국의 압박에 내주면서도 체면만 차리려 하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국민이 미국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쇠사슬에 묶여 돌아왔는데, 대통령도, 외교부도, 누구 하나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자리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말했어야 한다. “여러분의 고통을 반드시 해결하겠다. 결코 모욕을 잊지 않겠다.” 이 메시지가 있어야 국민은 정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은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침묵만 지켰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모욕이다. 불법 체포구금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정부가 법률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미군이 철수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허상이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려면 한국에 미군을 주둔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패권을 위해 주둔하는 미군에게 한국민의 세금으로 비용을 대줄 이유가 없다. 이 참에 걸핏하면 주둔비 인상을 요구하는 버릇도 고쳐야 한다. 설령 미군이 철수한다 해도 한국은 이미 세계 5~6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무기 수출국이다. 핵무기도 개발할 능력이 있다. 따라서 미군 철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국민에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라고 분명히 알려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기업의 대응이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20여 개 공장을 짓고,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를 생산해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근로자들이 모욕을 당하는데도 기업들이 침묵한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굴종이다. 기업들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우리 근로자를 모욕한다면 우리는 미국에서 공장을 돌릴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한국에서 생산할 수 있고, 물건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입장을 천명해야 미국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미국이 사과를 한다 해도 절대 쉽게 응해서는 안 된다. “재발 방지” 약속 또한 별 의미가 없다. 이미 모욕은 당했다. 재발 방지는 미국이 스스로 할 일이지, 우리가 애걸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관세 협박 이전, 즉 한미 FTA가 유지되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떠한 사과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첨단 기술과 부품 생산 능력을 보유한 나라다. 미국의 협박에 굴복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끝까지 버티며 미국이 무릎 꿇고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트럼프는 사실 깡패라는 말조차 아깝다. 깡패는 그래도 간혹 의리를 지킨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의리조차 없다. 그는 길거리에서 행인을 볼모로 삥 뜯는 양아치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자와 굴욕적인 거래를 하며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라면,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수치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분명히 배워야 한다. 깡패의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하고, 국민을 지켜야 한다. 기업도, 정부도, 대통령도 모두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한국은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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