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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30. 2022

어떻게 해야 내이름이 불려지나?

 이름을 아는 관계로 엮어지는 세상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람 이름을 잘 외우는 것은 의식주 다음갈 만큼 중요하다.

세상은 이름을 아는 관계로 엮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름을 모르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인연을 맺는 일이다. 

남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부르는 사람, 또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불려지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며칠 전 고교 동창들이 야유회를 갔다. 1년에 한 차례, 부부 동반 나들이이다. 버스에 타자마자 총무가 명찰을 나눠주었다. 남자들은 자기 이름만 있는 명찰, 여자분들은 자기 이름과 그 아래 괄호에 남편 이름을 쓴 명찰이다. 명찰을 목에 걸면서 갑자기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명찰 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만들었다는 총무 설명이다. 


설명이 맞았다. 부인들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의 짝인지 잘 모른다. 수십 년 지기인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곤란한 때가 많다. ‘네 이름이 무어냐’고 대놓고 묻기도 멋적다. 이번에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애먹고 있는 참에 이름표 도움을 받았다. 


사실, 사람 이름은 고유명사 중에서도 가장 외우기 힘든 고유명사다. 이름에 그 사람의 얼굴 모습이나 성격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미당 서정주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하루아침에 1천 개씩 산 이름을 외우셨다고 한다. 산 이름이나 지명에는 그래도 대개 유래가 있어 기억하기 쉽다. 금강석 일만 이천 봉 금강산(金剛山), 말귀가 솟은 듯 마이산(馬耳山), 매 바위 같은 응암산(鷹巖山),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서귀포(西歸浦) 등등. 


사람 이름도 한자 뜻을 새기면 좀 외우기 쉽지 않을까. 그러나 한자 이름은 대개 항렬이나 오행을 맞춰 지은 좋은 뜻 조합일 뿐이다. ‘성태(煋泰)’는 영리할 성(煋) 클 태(泰)이니 ‘영리하고 크다’는 뜻이다. ‘성순(聖淳)’은 성스러울 성(聖) 순박할 순(淳), ‘성스럽고 순박하다’이다. 뜻은 좋은데 이름 주인과 연결시킬 고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중학생들에게 멘토링 수업을 할 때도 한 반에 10명밖에 안 되는 이름 외우기가 어려웠다. 교실에 있을 때는 앉는 자리 순서대로 이름 메모지를 만들어 그런대로 넘어갔다. 교실 밖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때는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곱슬머리 재우, 큰 키에 긴 속 눈썹 재정이, 꽁지머리 은미, 피부 검고 작은 키 유민이, 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온 구인이 등등, 외모 특징을 묶어 외우는 방법을 썼다. 


이름을 아는 관계로 엮인 인간세상이다. 공자도 “군자는 세상을 마치도록 이름이 남에게 일컬어지지 않음을 근심한다(君子疾沒世而 名不稱焉)”고 말했다. 군자는 학식과 덕행을 갖춘 지도자이다. 지도자는 학식만 쌓을 게 아니라 세상에 이름이 일컬어지도록 덕행을 펼치라는 말씀이다. 지도자는 마땅히 세상 마치기 전 세상에서 부름을 받고 일컬어져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아닌 소시민은 어떻게 해야 이름이 널리 불려질 수 있을까. 명승지에 가면 한자 이름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는 암벽들을 볼 수 있다. 옛날 양반(?)들이 유람차 왔다가 새겨놓은 흔적들이다. 공력이 엄청나게 들었겠다. 석공까지 대동했을 거다. 

 

그러나 바위뿐인가, 옛날만 그랬을까. 해마다 백만 명이 찾는다는 담양 죽녹원에는 대나무 줄기에 개발새발 칼로 새겨놓은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개중에는 애인 이름까지 써놓고 ‘사랑해’라고 새긴 사람도 있다. 이런 억지 이름 알리기는 공적 자산 훼손에다 자기 이름 ‘욕되게 불려지기’일 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공자님의 이말씀은 군자에게만 하신 말씀일까?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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