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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02. 2022

황룡강 바람은 어디로 불려 갔을까?

모든 끝은 돌아서면 처음이 된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

                                 < 바람이 불어 / 윤동주 >


 


 시를 암송하는 데는 길 걷기가 최고다. 황룡강 바람길을 걸으며 시를 소리 내어 외운다. 길을 걸으며 시를 외우면 걷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 목청을 높여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암송 소리는 물결치는 갈대, 하얗게 반짝이는 억새 숲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 내발이 반석위에 섰다. //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 내발이 언덕위에 섰다.”

황룡강 가을꽃 잔치 (출처 ; ontrip.kr )


 걸으며 시 암송에 가을 정취까지, ‘황룡강 바람길’만 한 좋은 길이 있을까. 송산유원지에서 시작해 황룡강 물길 따라가는 둑길, 갈대, 억새, 왕 버드나무 숲, 길옆까지 기어 나온 칡넝쿨 속에는 푸른 나팔꽃, 붉은 꽃무릇도 보인다. 둑 아래 망월 평야는 황금 담요로 덮여있고, 오른편 강변엔 백로가 물 위로 날아오른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이 길이 아니라면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나의 길을 숨기고 있습니까 내가 당신의 길을 가로막았습니까 하루 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울 / 이성복>”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이시 저시 뒤섞어 읊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귀천 / 천상병 >” 


 문구도 내식으로 바꿔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풀꽃 / 나태주 >”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사랑스럽다. 당신이 그렇다’. '풀꽃' 제목도 < 당신 >으로바꾼다. 그런데 이성복시인이 <거울>에서 말하는 ‘당신’은 누구일까. ‘이성복의 당신’과 ‘천상병의 세상’은 같은 의미일까! '당신'을 '세상'으로 바꿘본다.  “하루 종일 나는 ‘세상’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


 40 분 쯤 걸었을까, 멀리서 수탉 우는 소리가 들린다. 표지판을 보니 ‘입석마을 앞’이다. 여기부터 황룡강 바람길은 코스모스길로 변한다. 길 한편이 온통 바람에 출렁이는 코스모스가 무더기무더기 이어진다. 쉼표 마침표 하나 없이 잇대어 이어지는 <거울> 시 구절처럼 코스모스길도 끝없이 이어진다. 길 오른편 강변쪽은 나무 백일홍이 가로수처럼 줄지어 코스모스와 짝을 이룬다. 2km나 이어지다 끝난다. 


 “땅끝에 / 왔습니다 / 살아온 날들도 / 함께 왔습니다 // 저녁 / 파도소리에 / 동백꽃 / 집니다  < 땅끝 / 고은> ”. 나도 황룡강 바람길 끝에 왔다.  황룡강 바람에 코스모스가 진다. 모든 끝은 돌아서면 처음이 된다. 발길을 돌려 왔던 길로 다시 들어선다. 바람길은 가는 방향만 반대로 바뀐 바람길 그대로인데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롭다. 


 아까는 강물 흐름을 거슬러 산으로 향한 길이었다. 지금은 강물 흐름 따라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쉬엄쉬엄 두 시간여, 처음 시작점에 섰다. 이젠 세상길이다. 세상길엔 바람 대신 자동차가 흐른다. " ----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 천상병 > ".  황룡강 바람은 어디로 불려 간 것일까.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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