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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Nov 19. 2022

바람부는 날, 무슨 시를 암송할까요?

습관이 운명이 되듯, 암송한 시는 운명이 된다

왜 시를 읽는가?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위로받기 위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한 말이다. 

박완서는 시를 읽어야 할 때가 많았다.

'글 쓰다 막힐 때,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 무엇을 후회했는지 /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 끝없이 집착했는지 / 매달리며 /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 때로는 /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 -- <서시 / 한강 > " '시 읽어주는 남자'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가 읽어주는 한강의 <서시>를 들었다. 2017년 11월 29일 광산문예회관에서 열린 신형철 포엠 콘서트 <<시, 재즈로 읽다 >> 에서였다.


남도에는 시인이 많다. 김영랑(<내 마음을 아실 이>, <북>), 박용철(<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황지우(<윤상원>,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강(<서시>), 이날 신 교수는 남도 시인 4명의 시 6개를 이야기하면서 얘기 사이사이에 재즈와 국악을 연주해 넣었다. 퓨전 재즈(더블루이어즈), 대금소리(한충은 & Forest)가 시와 만나 어우러진다. 시가 음악을 만나자 감흥이 더욱 깊어졌다. 


살다보면 우리도 소설가 박완서처럼 시를 읽고 싶어지는 때를 자주 만난다. 외롭고 지쳐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을 때, 점쟁이라도 찾고 싶을 때다. 스페인까지 가서 한 달여 씩 산티아고 길 걷는 사람들 심정이 이해된다. “‘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아픈 남편 위한 기도 드리러’, ‘지금 행복하지 못한 내가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려고’, ‘나를 찾기 위해'--- ”산티아고 길을 걷는단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행복한 미래가 보일까. '부처는 곧 나'라면서 부처를 찾으러 먼 천축까지 가야 하나. 틱낫한 스님은 삶에 지쳐 외롭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걷기 명상'을 하면서 시를 되풀이 외우라고 권한다. 걸을 때, 운전할 때, 밥 먹을 때, 청소할 때, 숨 쉴 때마다 시를 되풀이 외우라고 했다. 시가 기도문이 된다. 진짜 시 읽기는 역시 기도처럼 입에서 술술 나오는 암송이다. 


생각과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 운명이 되듯 암송한 시는 운명이 된다. 기도하듯 암송할 시는 어디에 있나? <서시 / 한강>는 우리에게 “어느 날 운명이 찾아올 때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라” 권한다. '우리'는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무엇을 사랑했는지' 묻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나무 관세음보살'을 하루 수천 번씩 외우면서도 막상 ’걸인 관세음보살‘을 문전에서 내쫓는 게 우리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 함부로 부는 바람인줄 알아도 / 아니다! 그런것이 아니다! // 보이지 않는 길을 /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 천상병 > "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를 암송했다. 시암송하며 걷는 길이 행복길이다.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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