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 김종남 Jan 29. 2023

'이름만 불러도---' 그 산이름은 ?

무덤산, 무당산, 서석산, 선돌산, 무돌산 -- 무등산은 이름도 많다 

 오월문예연구소가 엮은 '시로 읽는 무등산' 표지화  (김경주 화백 수묵화; 190X85cm, 2020)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 -------------------------------------------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 산을 보며 / 이해인 >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시구다. 마치 기도문 같다. 덕분에 하루 대 여섯 번씩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릴 때마다 기도하듯 읽는다. ‘부르기만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희망이 생기는 산’, 그런 ‘산’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 ‘그 이름을 불러 힘을 얻는 내 산’이 있다.


 ‘내 산', 무등산은 이름이 많다. “담양에서 보면 무덤덤해서 무덤산, 화순에서 보면 골마다 무당이 많아 무당산, 광주에서 보면 상서로운 돌이 많아 서석산, 선돌산, 무지개가 솟는 돌 무돌산---. 무등(無等)은 무등등(無等等; 등급을 매길 수 없이 높고 높은 부처 같은)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몇 년 전 무등산 무돌길 45km를 걸을 때 들은 해설사 설명이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증표다. 어느 이름이든 부르는 사람의 사랑 표시다. 무등산은 8천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여 생겼다. 그때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든 주상절리가 1,100m 고지 ‘서석대(천연기념물 제465호)’다. 지금은 침묵하는 푸른 산이지만 한때 불을 뿜는 검붉은 화산이었다.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을 감추고 있는 거인처럼 더욱 우러러 보인다.


“ 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 / 춘하추동 계절 없이 넘어선 / 언제나 붉은빛이 푸른빛이고 ---- < 무등산 송 / 범대순 > ”. ‘무등산 시인’ 범대순 (1930~2014)은 평생 1,100번이나 서석대(1,100m)에 올랐다고 <무등산>에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20년 넘게 계속해야 다다를 수 있는 숫자다. 시인의 지독한 무등산 사랑은 101편이나 되는 무등산 시 구절마다 절절하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광주토박이인 나도 무등산을 수백 번 올랐다. 고교 2년 때는 체력단련 한다고 일요일마다 상봉까지 올라갔었다. 왜 주말마다 산에 오르나? 누구나 다 자기 이유가 있다. ‘일주일 동안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몇 년 전 무등산에 왔었던 산악인 엄홍길 대장 말이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조지 맬러리경 명언보다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산에서 얻은 활기는 일주일 아니라 일 년도 유효하다. 꼭 상봉에 오르지 않고도 넉넉하고 든든한 푸른 힘이 가슴 가득히 찬다. 천왕봉 인왕봉 지왕봉을 가까이 바라보며 숲과 산마을 길을 걷는다. 도원마을 개망초 우거진 풀밭을 흔들던 바람소리. 평촌마을 여름 하늘에 하얀 눈송이처럼 늘어선 설악초, 독수정 가는 길에 줄줄이 나무 백일홍 붉은 꽃 무더기, 금곡마을 담장을 덮은 마삭줄 덩굴, 흔들리는 강아지풀까지 ---, 지금 걷지 않고 방 안에 앉아 있는데도 귀에 들릴듯 눈에 잡힐듯 마음속에 살아난다.


어둠이 가려 밤에 보이지 않는다고 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새벽 아파트 창을 열면 동쪽 야산 능선 위로 청록색 무등산 상봉이 얼굴을 내민다. 군왕봉 바탈봉 장원봉 향로봉 조대 뒷산 깃대봉 등 낮은 능선들이 둘러친 녹색 병풍 위로 솟아오른 ‘푸른 침묵’이다.


무등산은 아침마다 빛고을 광주에 새벽 빛을 뿌려주는 성자다. 무등은 어둠을 물리친 ‘빛고을’을 두팔 벌려 감싸 안는다. 세파에 밀려 마음이 어두워 질 때 '무등등' 푸르른 무돌을 부르며 기도한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2018.07.09.

              <무등의 설화>  낭촌 홍승민 박사가 1987년에 발간한 사진집 '고향산천' 9쪽


작가의 이전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편지'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