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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Jan 23. 2023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편지' 있는가?

자기 이야기를 생산 못하면 언제나 '구경꾼' 신세

쇠귀 신영복 선생은 무기수로 20년 20일을 감방에서 보내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편지를 썼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감옥에서 보낸 편지들이  '글씨 하나 틀린 게 없이 서화작품처럼 똑바르다'면서

"왜, 여학생들의 연애편지처럼 예쁜지?” 신영복에게 묻는다(<남자의 물건> 177쪽 ).

신영복 선생은 "편지 한 장 쓰는 것 이외에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 없어, 한 달 내내 생각을 정리해 거의 암기한 수준에서 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코로나 사태로 디지털 세상이 빨리 왔다. 덕분에 ’ 홀로 시간‘이 늘었다. 홀로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가? 친구 한 분은 넷플릭스 영화 보는데 재미를 붙였다. 장편 드라마 삼국지를 몇 달에 걸쳐 섭렵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왕자 노릇을 하는 유튜브는 어떤가. 명강의, 명연주, 고전 읽어주기, ’ 명시 낭송‘ 등 감동을 심산유곡까지 실시간 무료 배달한다. 골라보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디지털 세상의 대세는 SNS다. '카페인(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중독'을 넘어서 댓글에 매달리다 악플에 자살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문자메시지로 만족하지 못해 문자 대신 목소리만 오가며 토론하는 음성 SNS도 나왔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홀로 시간' 소비하는 방법이 이렇게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젠 홀로 있더라도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낄 시간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홀로 있는 시간을 힘들어한다. '홀로 시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코로나 블루 같은 우울증으로 번진다. 사회심리학자는 '남의 노래, 남의 강의, 남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대리만족이나, 남의 댓글에 일희일비하는 인정욕구 충족만으로는 자존감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스스로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가지려면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 독립할 수 없는 '구경꾼'이란 해석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그 해법으로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되는 글쓰기'를 권장한다. '양생과 구도, 그리고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칼럼, 에세이, 리뷰, 여행기 예문까지 들어가며 글쓰기 수련을 강조한다. '글쓰기는 소유의 종말, 공유경제의 산물인 SNS 바다를 헤엄치며 디지털 노매드로 살아가는 최고의 실천이자 전략'이라는 논지가 명쾌하다.     


그러나 글쓰기가 어디 밥 먹듯 쉽게 되는 일인가. 평생 글쓰기로 밥벌이해 온 글쟁이도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 잡기부터 막막하다. 천지 만물 세상만사가 다 주제다. 마치 '무슨 인생을 살래?' 선택하라는 주문 같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써야 하나?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닌, 나만 감동하고 나의 자존감만 높이는 글쓰기라면 하루 한 장 일기 쓰기로 족하다. '양생(養生)과 구도(求道)' 단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밥벌이 단계'까지 끌어올리려면 남이 읽고 감동할 이야기를 써내야 한다. 얼마 전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4,000자 분량을 써달라는 부탁이다. 마감이 일주일, 촉박하다. 더군다나 A4용지 2장이나 채울 만한 행복 스토리가 있나? 남의 이야기라도 빌려야 했다. 다행히 책 읽기 모임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쓴 행복론, <행복의 정복>을 읽고 있던 때였다.  

   

도서관에서 '원재호 시인이 만난 우리 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빌렸다. 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헤르만 헤세)를 찾아내 좋은 대목을 골라 읽고 메모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읽어라'는 고미숙 잠언을 치열하게 실천한 일주일이었다. 마감에 몰리며 남의 책읽고 내글쓰기에 몰두한 일주일이 내내 행복했다. 글을 보낸 후에도 그 행복감은 한 달 내내 계속되었다.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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