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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Dec 12. 2022

불안과 외로움, 어떻게 풀어냅니까?

마음속 응어리가 먹물처럼 종이 위로 풀려나온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의'를 붓펜으로 꾹꾹 눌러쓴다. 

마음속 응어리가 먹물과 함께 백지위에 까맣게 풀려나온다.

저에게도 아직 12개의 펜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임은 줄고 ‘혼밥’ ‘혼술’이 더 늘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다. 1인 가구 65세 이상 고령층이 매년 7만여 명씩 늘어 ‘10세대 중 4세대는 1인 가구’, ‘지난 3년 사이 노인 고독사가 35% 증가’라는 보도도 나왔다. 거기에 코로나 유행까지 겹쳤다, 반려동물, 반려식물이 대안이 될 수 있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지금 한국 사회를 “다들 혼자가 될까 봐 불안해하는 ‘고독 저항 사회’”라는 신조어로 규정짓는다. 김정운은 <남자의 물건 ; 2012년 발간>에서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내 삶의 콘텐츠)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물건을 통해 매개된 존재의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살펴보기 위해' 김정운은 이어령, 신영복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열 분을 만나 자기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열 분이 펼치는 '자기 이야기'는 ’자기 물건 사랑‘이다. '앞뒤로 총 여섯 대의 컴퓨터가 놓여있는 이어령의 책상은 지식에의 욕망과 근원적 외로움을 확인하는 이어령의 물건'이며, '먹을 갈듯 인생을 사는 신영복의 물건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벼루'다.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재미난 자랑과 사랑이야기가 쏟아진다. 


"무기수 신영복은 감옥에서 오직 편지 쓰는 것(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외에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물건도 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벼루다." 김정운은 자기의 만년필 사랑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커피 한잔 앞에 놓고 종이 질이 아주 좋은 수첩에 만년필로 끼적거릴 때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다. (...) 이제 겨우 60개 정도 모았다. (...) 요즘도 약간의 여윳돈이 생기면 바로 만년필 가게를 기웃거린다"라고 털어놓는다. 사진으로 보니 이름도 어려운 귀한 만년필들이 즐비하다. 


남의 물건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물건’을 찾아본다. 함께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는 물건? 책상 첫 번째 서랍을 여니 일기장과 함께 펜이 한 뭉치 나온다. 붓펜 만년필 1개, 펜촉 만년필 3개, 검정 빨강 파랑 버튼식 수성 볼펜 8개다. 어느 문구점에서나 살 수 있는, 잉크가 떨어지면 카트리지나 심지만 바꿔 끼우는 일회용이다. 우연히 12개가 된 나의 펜은 ‘물건’급은 못된다.

 

‘나의 물건’은 일기장이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12개 펜을 모두 꺼내 책상에 늘어놓고 일기장에 손글씨로 내 이야기를 쓸 때다. 0.28mm 까만 수성 볼펜으로 쓰다가 생각이 바뀌면 파란색으로 바꾼다. 생각이 멈추면 세필 만년필로 써본다. 붉은색 볼펜으로 줄도 쳐본다. 일기장이 아니라 공부 노트나 낙서장 같다. 굵기도 다르고 색깔도 여러 가지인 글씨들이 춤을 춘다. 


한자(漢字)를 최대한 많이 쓴다. 한자 단어는 하나하나 수천 년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침에도 쓰고 시간 날 때마다 덧붙인다. 제목 달기는 제일 나중 몫이다. 일기 쓰기가 막힐 땐 A4 이면지에 붓펜으로 한시를 써본다. 중필 만년필로 남 이야기를 필사도 해본다. 뜻이 통하든 안 통하든 그림을 그리든, 다만 줄을 맞춰 단정하게 쓴다. 단정하게 그려진 큼직큼직한 글자들은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는다.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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