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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Jan 30. 2023

내 '수명시계'는 몇년 짜리입니까 ?

하루하루를 '멈추고 싶은 순간'으로 살아갈 수 있나

   

 

‘어바웃 타임(About Time; 멈추고 싶은 순간)’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20대 여성은 수명이 1백분의 1초 단위로 카운트다운 되는

 ‘수명시계’를 보며 시한부 생명을 산다.

 ‘100일’에서 시작한 디지털 숫자는 0을 향해 달려간다.    

 만약 우리가 ‘수명(壽命)시계’를 볼 수 있다면, 보려고 할까?




 사실 생명체가 하나 태어나면 수명시계도 하나 생긴다. 우리 수명시계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을 거다. 시작 숫자는 ‘100년’쯤 될까. 드라마 속 수명시계는 100일에서 시작하여. 주인공이 사랑을 하면 멈추기도 하고 역주행하여 늘어나기도 한다. 조물주가 만든 인간 수명시계는 어쩌면 성인 말씀대로 인간이 선행(善行)을 하면 느릿느릿 늦게 가고 악행(惡行)을 하면 숫자가 빨리빨리 줄어들지 모른다.    

 

 인간이 만든 카운트다운 시계는 한 번 정해 놓은 숫자를 쉼 없이 같은 속도로 줄여간다. 조물주가 만든 수명시계는 그런 융통성 없는 기계는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가 자기 목숨 카운트다운을 보려고 할까. 순간순간 줄어드는 목숨 숫자를 보며 담담히 밥 먹고 잠자고 놀러 다닐 보통 인간은 없다. 한 오백 년 살 것처럼 돈 벌기, 권력 쌓기에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이 갑자기 수명시계를 보게 되면 저승사자 만난 듯 기절할 일이다.  

    

 수명시계를 보는 일은 역시 큰 사건이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크게 몸이 아프면, 안 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묘비명을 50대 후반에 썼던 분이 계셨다. 위를 다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고 나서다. 그분은 10년 후 암 재발로 돌아가셨다. 결과적으로 그분은 수명 시계를 10년 동안이나 보면서 살게 되었다. 덕분에 묘비명도 미리 써놓고 훌륭한 자서전도 완성했다.  

    

 죽음학을 연구한 최준식교수는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에서 “죽음 준비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장례식을 준비하고, 유서나 간단한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한다. ‘일찍 시작’의 ‘일찍’은 언제인가. 이 단어처럼 규정짓기 어려운 단어도 없다. ‘너무 일찍’ 시작한다면 마음이 느슨해져 ‘있으나 마나, 하나 마나’가 된다. 수명시계를 보게 된 때가 ‘너무 늦기 전’이다.      


 한때 ‘234가 제일 행복하다’는 우스갯말이 유행했다. ‘2일(이틀) 아프다가 3일(사흘)만에 4(死)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웰다잉 개그다. ‘수명시계를 오래 보면 고통스러우니 2~3일만 보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234’는 당사자에게는 가장 행복한 웰다잉이 될지 몰라도 주변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이기 쉽다. 2~3일 안에 떠나도 될 만큼 평소 주변정리를 해놓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빚 많이 진 사람이 대책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웰다잉이 아니다.      


 실제 웰다잉을 실행한 특별한 사람도 있다. 호주의 식물생태학 박사 데이비드 구달은 104세 되던 2018년 5월 10일, 스위스 병원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영면했다. 스스로 정한 안락사 날이다. 언제 그날을 정했는지 알려진 바 없지만 몇 년, 몇 달 전 그날을 디데이로 정해 놓고 호주에서 스위스까지 갔을 거다. 드라마에나 나옴직한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웰다잉이다.      

 

 우리나라 고승 일화에는 더 극적인 웰다잉이 나온다. ‘나 며칠 후 갈란다.’ 디데이를 제자들에게 통고하고 디데이 날 입적하는 고승 얘기다. 그러다 그날 막상 입적이 안 되어 몇 차례 연기한 고승도 있다. 우리도 언제 수명시계를 보게 되나, 미리 걱정하는 고통 겪지 말고 디데이를 아예 ‘5년 후쯤’ 생일 정하듯 정하면 되겠구나! 상상해본다.     


 상상 속 디데이 날짜는 주변에 알릴 필요가 없다. 수명시계 보듯 하루하루를 ‘멈추고 싶은 순간’으로 산다. 그러다 혼자만 아는 비밀의 디데이에 죽지 않는다면 큰 행운이다. 비밀디데이를  ‘3년후’로 정한다. ‘덤’으로 3년 수명이 생겨난다. 비밀을 간직한 보물같은 덤이다.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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