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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10. 2022

나이들어 왜 고향에 안 돌아오나요?

 현대인은 심향을 잃어버린 이방인 병에 걸린다

“인생이란 고향 집으로 향하는 여행”. <백경>을 쓴 허만 멜빌이 한 말이다. 

모든 여행은 목적지가 있다. 멜빌은 여행 같은 우리 인생이 향하는 최종목적지가 ‘고향 집’이라고 말한다.

인생 여행은 출발점이 고향 집이고, 최종 목적지도 고향 집이다. 

그러나 같은 집은 아니다. 출발점은 부모가 계시던 고향 집이지만 

우리가 향하는 종착점은 내가 주인인 고향 집이다.

곧 떠나야 할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어 아침저녁 쓸고 닦고 저녁에 편안하게 잠드는 내 집이다. 


이왈종 '중도와 사색'(출처 : blog.navor.com)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한 후배가 광주로 이사 왔다. 서울에 수십 년 살다 귀향한 셈이다. “나이 들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수십 년 모았던 책을 정리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3천5백여 권이나 되는 책 중에는 전문 서적도 꽤 있었다. 여기저기 도서관에 ‘기증하겠다’ 전화해보았으나 다들 손사래를 쳤다. 결국 지나다니는 고물상을 불렀다. 전부 털어 단돈 7만 5천 원, 파지 값이다. 


 ‘책을 열면 미래가 열린다’는데 책은 닫아놓으니 짐만 된다. 책 하나 버리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수십 년 사귀어온 친구와 지인들, 모임들, 잘 다니는 병원, 약국, 먹거리 집, 길거리, 산보 다니는 공원길 등등, 친숙한 관계와 익숙한 공간을 떨쳐버리고 낯선 환경이 되어버린 고향으로 집을 옮겨온 의지가 대단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향은 낯선 환경은 아니다. 고향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널려있고 아직 옛 친구들도 남아있다. 


 그런데 왜 다들 일자리를 떠나 백수가 된 후에도 고향으로 못 돌아오는가. 20여 년 전 ‘원로들 왜 안 돌아오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고향을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인가? 고향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인가?” 국회의원, 장차관을 역임한 지역 출신 고위직들이 퇴임한 후 서울에 눌러살면서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풍토를 질타했었다. 고향 덕을 입어 높은 지위를 누린 원로들은 ‘빚 갚기 귀향’이라도 했어야 옳다는 논리였었다. 


 그러나 고향에 빚을 안진 보통 사람에게 귀향하라고 권하는 논리는 이길 확률이 희박하다. 입장을 바꿔 보아도 답이 안 나온다. 고향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귀향할 여유는 다음 문제다. 헤아려보니 내 고교동기 4백여 명 중 3분의 2가 서울에 살고 있다. 나이 들어 귀향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서울 비싼 집 팔아 고향 싼 집으로 이사 오면, 여윳돈이 생겨 여행도 다니고 좋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짧은 소견이었을까.


 한 친구는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집이 없으니 고향에 갈 일이 없다’고 고백한다. ‘서울에 사는 타향인들 중 70%가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이제 부모가 아침저녁 쓸고 닦던 고향 집이 있는 곳만 고향으로 그리워하던 세상은 지난 것 같다. ‘태어나 자란 곳’이 고향이던 시대에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 되는 세상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딜 가나 자기 집 안마당처럼 살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가 신인류로 추앙받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문제는 유목민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인류일수록 마음속 깊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음의 고향, 심향(心鄕)이다. 고향 집을 가지지 못한 현대인은 심향을 잃어버린 이방인 병에 걸린다. 중학생 때 유학 가서 26년 만에 변호사로 귀국한 방송인 서동주는 “외국에 나가서도 이방인이었는데 고향에 와서도 역시나 나는 이방인이다. 어딜 가야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하다”고 토로한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이 될 것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제선사의 말씀이다. 서 있는 곳을 참으로 만들어야 진정 고향 집에 오게 되는 걸까?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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