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얼마나 깊은 우물을 파고 있는가
“젊을 때는 산을 바라보고 / 나이가 들면 사막을 / 바라보라 // (---) //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 노력하지 말고 / 무엇을 이루려고 뛰어가지 마라 //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 바라지 말고 /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 먼저 깊은 우물이 / 되어야 한다 ”
<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 정호승 >
가끔 술 한잔 나누며 친구와 인생을 이야기한다. 친구가 없을 때는 혼자 산책하며 좋아하는 시를 중얼거린다. 오늘은 무슨 시가 좋을까. 주간 한국문학신문이 선정한 시 모음에서 재미있는 제목을 발견했다.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친구가 없어 반려견에게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예 친구도 안 들어줄 이야기라 반려견에게 말한다는 뜻인가! ‘가끔 술이나 한잔해라’,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제목은 책을 고르는 첫 낚싯밥이다. 카프카를 읽고 싶어 서점에 갔는데,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란 제목이 갑자기 눈에 뜨였다. 카프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시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경은 독서 에세이’였다. 그런데 제목이 좋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이경은도 <카프카와 함께 빵을>이라는 카툰 모음집을 제목이 좋아서 샀고, 그래서 자기 책의 제목을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라고 붙였다고 얘기했다.
새벽 4시 잠에서 깨어 나에게 인생 이야기를 물어본다. 젊을 때 얼마나 높은 산을 올랐던가? 나이 들어 얼마나 깊은 우물을 파고 있는가? 그런데, 나에게 묻는 인생 이야기는 무어라고 제목 붙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