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by 사유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90년대에 태어난 나이지만 누구보다 이 노래 가사에 공감하고 있다.


어린 시절 구몬 학습지를 시작한 나는

선생님께 학습지 푸는 법보다 '연필 잡는 법'을 가장 먼저 교육받았다.


이렇게 생긴 연필 교정기.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봤을 법하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엄지와 검지를 모아 연필을 쥐고 중지 손가락으로 연필을 받친다.


하지만 나는 연필을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워 잡는다.

20대 후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연필을 이렇게 잡는다.


초중고 시절 내내 선생님들은 내가 글씨 쓰는 모습을 보면 꼭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가셨다.

"너 연필을 왜 그렇게 잡니?"

"그렇게 잡고도 글씨가 써져?"


이 질문에 나는 "네, 잘 써지는데요."라는 대답을 반복했고,

이 답변을 끝으론 더 이상 선생님들은 내게 연필 잡는 법을 가지고 뭐라 하지 못하셨다.

왜냐하면, 나는 깨나 명필이었다.


구몬 학습지 선생님께 연필 잡는 법으로 또 혼나던 시절,

나는 내 글씨를 보여드리며 연필에 있던 교정기를 빼 던지며 울었다.

"전 연필 이렇게 잡아도 글씨 잘 쓴다고요!"

이 사건을 이후로 구몬 선생님도 부모님도 나에게 '연필 잡는 법'을 가지곤 잔소리하지 않았다.


그렇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의 공부 판이었다.

"연필잡이 잘해야만 글씨 쓰나요"


그렇게 계속된 나의 잘못된 연필 잡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나는 연필 잡기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젓가락질도 잘못하고 있다. 아직도.


연필을 먼저 잡았는지 젓가락을 먼저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젓가락을 연필과 같이 잡고 있다.


젓가락 두 짝을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워 음식을 잡는다.

하지만 음식을 잡는 데에 무리가 없고, 밥을 잘 먹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여전히 이렇게 지내고 있다.



10년은 거뜬히 넘게 잘못된 연필/젓가락질을 하던 나는 현재 젓가락질을 고쳐볼까 고민 중에 있다.

누군가에게 글씨 쓰는 걸 보여줄 일은 극도로 적으나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하거나

거래처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소개팅을 한다던가...


누군가 내가 반찬을 집는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면 괜히 위축되기도 한다.

속으론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고 외치지만

집에 돌아와선 성인용 젓가락 교정기를 검색해보곤 한다.


'DOC와 춤을...' 가사를 보면 이런 바람이 나온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 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나는 현재 실제로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다니고,

고등학교 때 반바지 교복은 아니지만, 블라우스가 아닌 '생활복'을 입고 다녔다.


90년대엔 어쩌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 저런 바람이 가사로 나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현재 남의 젓가락질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자신 있게 외치고 싶다.

"내 젓가락질, 연필 잡는 법에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살아가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