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가볍지만 무겁다
종이 그림으로 정체성을 확고히 한 프랑스 디자이너 장줄리앙. 사실 그는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이 꽤 단순하다. 동그라미 얼굴, 땡그란 눈, 콕콕 찍힌 패턴들. 재료도 검정 물감과 붓이 전부다.
그런데 어떻게 장줄리앙은 이토록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을까?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림의 인기 비결은 본 전시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에서 찾을 수 있다.
종이는 심심하다. 심심하면서 삼삼하다. 그게 바로 종이의 매력이다. 거칠지만 유연하고, 쓰임새가 정해져있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장줄리앙은 종이의 매력을 잘 안다. 종이를 오려서 이어붙이고, 요리조리 구부리며 재미난 상상을 한다. 어느덧 식상한 종이는 참신한 폭소를 선사하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여 페이퍼피플이 탄생했다.
장줄리앙은 복잡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페이퍼피플도 마찬가지다. 왜 페이퍼피플이 컨베이어 벨트에 누워있는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서 있는 건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로 하지 않아도 알 거 같은 기분. 바로 이 기분이 시각 예술을 잘하는 사람들이 지닌 오묘한 언어다.
장줄리앙의 작품은 트렌디하면서 아날로그 한 감성이 물씬 풍긴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답게 심플한 구성, 선명한 컬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뒤에선 구깃한 종이에 우둘투둘 서툰 붓질을 하는 장줄리앙이 있다. 프랑스의 고전적인 정취도 페이퍼 감성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현대적 그래픽과 고전미(美)는 서로 충돌이 아닌, 충격적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역시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다.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함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다. 단순함은 친근함과 맞닿아있다. 장줄리앙의 작품은 복잡하지 않고 누구든 쉽게 감상하는 친근한 매력이 있다. 참 쉬워 보이지만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원래 단순한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빼먹지 않았으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경을 뛰어넘은 그의 작품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페이퍼피플을 주제로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메시지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보자마자 와- 하며 가슴으로 와닿는다. 머리는 비워내고 경쾌한 마음으로 즐기는 장줄리앙의 작품을 만나러 가보자.
본 전시는 퍼블릭 가산에서 2025년 3월까지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