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선(善)하다 - 세르주 블로크展

선을 따라 살자

by 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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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선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색채도, 복잡한 구도도 아니었다. 바로 ‘선’이었다. 그것도 딱딱하고 기계적인 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듯한, 흐르고, 떨리고, 움직이는 것 같은 선이었다. 그림의 선 하나하나에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세르주 블로크의 선은 단순히 형상을 그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의 선은 살아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감정을 품고 있고,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어떤 선은 살짝 미소를 띠는 것 같고, 또 어떤 선은 지쳐 보이거나, 무언가 할 말을 꾹 참고 있는 듯 했다. 얇고 단순한 선들이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유머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으며, 때로는 조용한 위로와 사색도 담겨 있었다.


그림이 정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은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이 이어지고, 흐르고,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마치 선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을 따라 내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은 단순한 형상을 넘어, 이야기의 흐름을 만드는 도구였다. 선이 어디로 이어질까, 저 인물이 바라보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작품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블로크의 선은 그만큼 몰입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생 = 선


선이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그림 속 선은 심하게 꼬여 있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간도 안 될 만큼 엉켜 있었다. 질서 없이 뒤엉킨 선을 보고 있자니, 살아오면서 겪었던 혼란과 감정들이 떠오른다. 실수했던 일, 감당하기 어려웠던 순간들, 후회와 아쉬움이 뒤섞여 있던 시간들. 그리고 깨달았다. 그렇게 꼬인 선도 결국 하나의 그림이 되듯, 우리의 삶도 결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Less is more.’ 덜 그려도 많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세르주 블로크는 이 원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작가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색, 디테일을 과감히 덜어내면서 오히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블로크의 그림은 여백이 대부분이고, 색은 거의 쓰지 않고, 얼굴의 세부 묘사는 생략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더 깊은 감정과 통찰이 느껴진다. 더 그리는 게 능력이 아니라, ‘덜 그리는 것'이 바로 능력이다. 선은 복잡한 기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블로크의 선 하나에 담긴 감정과 의미, 인생의 단면들을 느끼며 마음에 고요한 감동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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