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다.

by 노용우

아라뱃길 자전거 타기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헬스장으로 올라왔다. 자전거 라이딩 복장을 헬스복으로 갈아입고 렛풀다운 ( 헬스 등운동 ) 기구 앞에 앉았다. 2시간이나 자전거를 탔으니 준비운동은 이미 충분히 한 셈이다. 앉자마자 바로 기구를 움켜쥐었다. 힘껏 당겼다.

악!

기구를 당기자마자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왼손 팔꿈치를 움켜쥐었다.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일순간 체육관은 멈춘 듯했다. '기구를 당겼을 뿐인데... 왜 이러지?' 운동을 시작한 이래 처음 겪는 극심한 통증이었다. 너무 놀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다시 한번 기구를 시도했다. 아! 이럴 수가! 기구를 쥘 수도 없다.


25살, 제대 후 갑자기 불어난 체중이 땅딸보 키에 90kg이 넘었다. 바지가 툭툭 터져나갔다. 그 당시 별명이 노땅(노용우는 땅달보 )이었다. 땅딸보 소리에 시작한 운동이지만 어느 진짜 老땅이 된 지금도 여전히 체육관을 드나들고 있으니 나름 꽤 노련해진 보디빌더다. 운동방법을 모를 리 없고 무리하게 한 것도 아니다. 초보자 무게로 깔짝거리는 정도의 기력이니 무리하게 하려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래?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이 될만한 특이 사항은 없었다. 겨우 팔꿈치 한 부위만 아플 뿐인데 콜라병보다 작은 물통(운동 중 수분 보충용)을 쥘 수도 없다.


"테니스 엘보입니다"

"네? 선생님, 저는 테니스 안 하는디요. 더구나 저는 오른손잡이입니다"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손목을 구부린 상태로 장시간 과한 힘을 주신다면 팔꿈치에 이상이 올 수 있습니다. 중국음식점 주방장 웍(wok) 돌리기 같은 거요"

"네? 저는 노땅 백수인디요"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원인도 모른 체 나는 느닷없이 테니스엘보 환자가 되었다. 팔꿈치가 아플 뿐인데 걷기 조차 힘들었다. 팔꿈치를 옆구리에 바짝 붙이고 가만가만 얌전히 걸어야지 평소처럼 팔을 내두르며 씩씩하게 걸었다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침 일찍 눈이 살짝 내렸다. 기온은 오랜만에 온화했다. 집에서 내려다본 집 앞 건너편 공원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포근한 날씨에 토요일 10시... 에라잇! 지난주에 장만한 자전거를 끌고 길거리로 나섰다. 타던 자전거도 헛간에 모셔 둘 나이에 새자전거를 사다니... 시청 대여 자전거를 몇 번 빌려 타 본 적은 있지만 소유 자전거는 처음이다. 남들처럼 갖춰 입은 라이딩복장(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 바지도...)이 어색하고 좀 부끄러웠다. 행인이 많은 거리는 살짝 내린 눈이 녹아 질퍽했지만 자전거 타기에 어려운 상태는 아니었다. 대로변을 벗어나 응달진 하천가 자전거길로 접어들자 노면 상태는 완전 딴판이었다. 번질번질한 빙판길이었다. 아침에 내린 눈으로 자전거 타러 나온 사람들은 없었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빙판길은 눈이 얇게 덮인 상태라서 엄청 미끌거렸다. 자전거 핸들이 맘대로 휙휙 돌아갔다. 가고 오는 2시간 동안 사정없이 요리조리 돌아가는 자전거 핸들을 부서져라 꽉 잡은 손목은 주방장 웍(wok) 돌리 듯 휙휙 꺾여 돌아갔으리라. 마구 꺾인 손목으로 렛풀다운 기구를 당긴 거다.


난생처음 팔꿈치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진통제 효과인지 왼손으로 밥공기는 들 수 있다. 운동도 안 하면서 먹을 때가 되면 왜 그렇게 챙겨 먹으려고 껄떡대는지.... 뚝뚝 떨어져 나가는 근육을 밥으로라도 채우려는 미련한 수작이었다. 자전거 핸들을 그저 꽉 잡았을 뿐인데 밥공기조차 들기 힘들어했다. 제법 알아주는 동네 보디빌더 신세가 그깟 자전거 타기로 꼴이 말이 아니다.


팔꿈치는 시작이었다.

왼손 팔꿈치 통증이 웬만해지자 슬금슬금 헬스 기구를 만지기 시작했다. 두 달 후 왼쪽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되었다. 극심한 통증으로 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손목에서 팔꿈치, 팔꿈치에서 어깨까지는 같은 동네니 그렇다 쳐도 아예 딴 동네인 왼발은 왜 이럴까. 평지를 걸어도 왼발만 바닥에 끌려 균형을 잃곤 했다. 팔꿈치와 어깨통증으로 걷는 자세가 나도 모르게 기우뚱해진 건가? 아니면 엄지발톱 무좀이 문제일까? 하여간 여기저기 정신 사납다. 결국 사달이 났다. 계단에서 굴렀다. 이마는 찢어지고 콧등이 부러졌다.


이제야 실감한다.
40년 보디빌더시라고?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야.... 별수 없이 진작에 노땅이었어.




작가의 이전글춤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