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통제 속에서 자란 아이의 삶이 흘러간 방향
<벼룩 실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적이 떨어지고, 결국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라는 결말이 예상되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았다. 내신 성적은 나날이 떨어져서 결국 전체 학생의 절반정도 위치까지 내려갔지만,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진 않았다. 썩어도 준치 랬던가 모의고사 성적은 2,3등급이 적절히 섞여있는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정시형 인간'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내가 '정시형 인간'이 된 데에는 내가 살아온 학창 시절의 '관성'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그만두었기에 시험 기간에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신 성적이 잘 나올 리 만무했고 수시로는 어디로도 지원할 수 없는 성적이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꽤나 열심히 독서를 한 탓에 크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언어영역 시험은 항상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수리 영역이나 외국어 영역의 경우 예전에 해두었던 공부 밑천으로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시형 인간'이 된 이후에는 나의 모의고사 성적이 어머니를 희망 고문하게 만들었다.
분명 모든 사교육을 내가 반 강제로 우겨가며 다 끊고, 독서실에 다니면서 열심히 일탈(만화책 독서, 오락실 출입 등)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다시 어머니가 강제로 수강해 둔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매일매일 싸우다가 지쳐서 그냥 좋을 대로 하시라고 생각하고 체념했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을 리는 만무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의 사교육은 큰 의미가 없었고, 수능 성적도 결국 독서실에서 일탈을 즐기던 시절의 수준으로 받는데 그쳤다.
그렇게 받게 된 수능 성적으로, 내가 살던 지역의 국립대 2곳과 다른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 1곳을 지원했다. 재수는 죽기보다 싫었기에 그냥 과를 낮춰서라도 합격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을 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국립대 2곳은 최초합 했지만, 다른 지방에 있는 대학교는 대기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지역의 학교에 붙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가 통한 것일까 나는 다른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 거의 문을 닫다시피 해서 추가 합격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학교로 도망치다 시피해서 고향을 떠났다.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SNS가 싸이월드였는데, 내 싸이월드 계정의 대문글은 "이제 고향을 뜨는 거야!"였다. 그때의 나는 고향을 떠나, 대학에 입학하면 나에게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강력히 믿고 있었다.
글로 표현하니 조금 덤덤한 느낌이 있지만, 내 중고등학교 시절의 2/3는 나에게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과 삶이 뭔지 찾지 못해서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였고, 외적으로도 살이 많이 쪄버려서 자존감이 붕괴되어 버렸다. 자존감이 붕괴된 후, 학교 생활은 나에게 그냥 의미 없는 나날일 뿐이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서서히 곪아갔고, 결국 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름이 줄줄 새는 정도까지 심리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난 그 원인이 어머니라고 확신했고, 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병들게 하는 원인으로부터 멀어져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강력히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를 희망했고, 그게 이뤄졌을 때 정말로 많이 기뻤다.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내 인생에서 뭔가 큰 결정을 내린 첫 번째 경험이었다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벼룩실험으로 빗대어 보자면,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뚜껑이 덮인 대형 용기에서 열심히 뛰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뛰는 걸 포기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용기를 알코올램프로 지속적으로 가열해 대는 통에 내가 용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시도한 첫 번째 일이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대학을 가서 나에게 밝은 미래가 펼쳐졌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그냥 대학 새내기 시절 전형적인 아싸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나름 주량이 센 편이어서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곧장 선배 동기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하지만 결국 노는 것도 해본 놈이 잘하더라. 중/고등학교 시절 자아 없이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인생을 살아왔고, 덤으로 뚱뚱한 외모 때문에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바닥에 붙어버린 자존감으로 인해, 내 안에서 피해의식이 자라났고 그런 성향 때문에 나중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졌다. 결국 기숙사에서 1년 내내 온라인 게임만 하고, 당연히 학점은 엉망징창이 된 상태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내 싸이월드 계정의 대문글은 "ㅅㅂ 군대나 가자"였다. 그 시절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머니를 계속 원망했다. 어머니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몰라서 학점이 좋지 못했던 것이고, 어머니 때문에 자아가 무너져서 사회 부적응자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저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많이 한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 어머니로부터 강요되었던 삶이 나를 좀먹어서 더 나은 대학 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저때의 나 자신이 짠하기도 하다. 십여 년간 강요된 삶이 단 1년 만에 드라마틱하게 변화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1년이라는 기간을 홀로 지냈지만, 인간으로서는 크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