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취1-2

행다

茶취
— 마신 적 없는 고요


단순히 물을 마시는 일은 아니었다
비어 있던 잔에
빛이 번지는 순간
닫혔던 세계 하나
조용히 풀린다
향의 길을 따라가면
혀끝에 머무는 맑은 단맛
그 한 모금이
지나온 계절의 떫은 기억을
낮게 가라앉힌다


조잘대던 초록 잎들
손바닥 온기에 숨을 고르고
찻잔 속 어린 정적은
잎을 물속에 잠기게 하고
번뇌는 그 아래
천천히 바닥을 찾는다
내면을 스치던 소란
서늘한 물빛 아래 멎고
숨은 둥글게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로 간다


비워진 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이미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차취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