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茶筅)에 핀 말차와 쑥물꽃

차선 끝. 물방울이 맑다

차선(茶筅)에 핀 말차와 쑥물꽃


​찻자리가 끝나면 어머니는 딸이 쓰던 차선을 가져다 가느다란 대나무 살에 맺힌 찻물을 맑게 씻어내셨다.

볕 좋은 곳에 정갈히 말려주시던 그 손길.

그것은 단순히 도구를 닦는 일이 아니라,

자식의 마음자리에 끼었을 번뇌의 찌꺼기를

매일같이 털어내주시던 고요한 수행이었다.

유창한 설법보다 정직한 실천이셨으리라.


​어머니의 삶은 일상에서 길어 올린 미학이었다.

풍기 인견에 쑥물을 들이고 철 녹을 매염제 삼아, 세상에 없던 그윽한 자연의 빛깔을 옷에 입히시던 분. 그 귀한 옷을 입고 차 향을 쫓던 시절,

나는 어머니가 내 나이보다 훨씬 젊으셨음을,

그 옷 한 벌에 담긴 예절이 얼마나 고귀한 가르침이었는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


​옷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방은 늘 정갈한 도량 같았다.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린 모시옷들이 벽면을 따라 줄지어 걸려 있던 풍경. 그것은 단순히 의복을 거는 행위가 아니라 당신의 흩어짐 없는 마음을 곧게 세우는 의식(儀式)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손길도 세월의 무상함은 비껴가지 못했다.


먼저 간 가족들을 여의고 꼿꼿하던 허리가 굽어갈 때, 우리 딸들의 가슴에는 마르지 않는 낙숫물이 고였다.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아린 기억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 목욕탕에서 개운하게 몸을 씻고 나오신 어머니는 일명 ‘단지 모양’ 바나나 우유를 빨대 꽂아 달게 드셨다. 새로 하신 파마머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거울을 보며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 내 차를 타고 봉화로 향하던 드라이브 길에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씩 사 먹고, 나는 다시 홀로 계실 친정집에 어머니를 두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6남매 자식들 다 소용없다던 그 말씀 그날 백미러에 비친 어머니의 뒷모습이

왜 그리 작았는지. 서글픈 마음이 차창 밖 풍경보다 빠르게 울먹이며 스치고 지나갔다.


​49재 때부터 성묘 때마다 늘 맑은 전차(煎茶)를 올려드렸으나, 오늘은 산소로 떠나기 전 차실에 앉아 고요히 말차를 격불 해본다.

어찌 된 일인지 유화(乳花)가 잘 일어나지 않고

자꾸만 찻잔을 맴돌다 허물어진다. 낮아지라는 가르침인가, 아니면 나를 비우라는 죽비인가.

어머니가 유달리 마음 써 씻어 말려주셨던 그 차선을 쥐고 아ㅡ, 살아생전 말차 한 잔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송구함이 깨달음으로 차오른다. 그 미안함을 눈물에 섞어 찻사발에 담아 난 엄마를 마셨다

이번 설명절 성묘 길, 차선을 들고 산소로 향한다. 솟구치는 슬픔보다 가라앉는 그리움으로, 평소 좋아하시던 노란 바나나 우유 곁에 직접 격불 한 말차 한 잔을 놓아드리려 한다.

격불이 일지 않아도 좋으리. 어머니가 쑥물 빛으로 물들여주신 이 삶의 자락 위에, 이제야 비로소 자식의 철든 진심이 찻물에 번진다

​봄의 쑥,

그린의 말차,

옐로 바나나.

​자연의 품 안에서 그 향기 드시고,

딸의 차 향기도 바람에 머물기를.

​바람에 실려 보낸 찻물 한 잔이 부모님께 닿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차선 끝에 맺힌 물방울이 맑다.]


2026. 02. 23. 말차를 격불 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