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난 2명의 왕과 함께 산다_
제주도 푸른 바다 곁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평소 우리 왕자님이 살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제 막 세상의 결을 익혀가는 아이는 수영장 물살을 가르는 씩씩함과 바이올린 현을 켜는 섬세함을
동시에 지녔다 때로는 색종이를 접어 무구한 세상을 빚어내고 가끔은 게임 속 모험에 몰두하는 영락없는
이 시대의 손자 하늘아래는 둘도 없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얼마 전 아빠 엄마와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스크린 속에는 50년 전 내가 아버지 곁에 앉아 보약처럼 전해 들었던 단종 임금님의 애달픈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아이는 참으로 의젓했다고 한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아내며 슬픔의 무게를
견뎌낸 것이다 하지만 극장을 벗어나 가족들만 남게 된 차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댐이 터지듯 참았던 울음을 폭발시키며 통곡을 했다고 아들이 전해준 그 울음소리는 멀리 울산에 있는 내 가슴까지 뜨겁게 적셨다
눈물은 유전인가 할미를 닮 았나?
송할미 눈시울 적신다
진주방울이 뚜두둑!!!
무슨 일인가 왕방울 만한 방울들 나 뒹굴었다
열 살 어린 우리 왕자가 그 비극을 제대로 파악하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사실이 뭉클한 자부심으로
현재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감성 이 다가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아이를 낳아 기른 우리 며느리 또한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아들인 왕과 결혼하여 또 다른 왕을 낳았으니 두 명의 왕과 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제목처럼 진정 왕과 사는 남자들 사이에서 복 많은 삶을 꾸려가는 여인이다
며느리가 황 씨 가문에서 우리 집으로 시집올 때의 일 떠오른다 혼서지를 쓰러 갔을 때 그곳의 선비께서 왕 씨 문중에서 온 며느리라며 귀한 집안과의 인연이라고 알려 주셨다 본래 김수로왕께서 인도의 공주 허왕옥을 왕비로 맞이했으니 왕의 씨족은 왕끼리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그 옛날의 문화가 오늘날 우리 집안에서 다시 증명된 것일까
야성 송가의 후예인 할머니의 의리와 김해 김 씨 수로왕의 기품 그리고 황 씨 가문의 귀한 혈통이 만나 빚어낸 우리 손자 그래서 홀로 남겨진 어린 임금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아 그토록 아프게 울었던 모양이다
50년 전 내가 아버지 곁에서 들었던 그 뜨거운 이야기가 이제는 손자의 눈물이 되어 다시금 생명력을 얻어 흐르고 있다 색종이를 접듯 타인의 아픔을 소중히 어루만질 줄 아는 우리 왕자님을 보며 나는 우리 가문의 정신이 이토록 건강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올봄 아버지 산소에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올리며 꼭 말씀드려야겠다 당신이 내게 주신 그 역사의 씨앗이 바다 건너 어린 손자의 가슴속에서 이토록 귀한 공감의 꽃으로 피어났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