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세 단계에 있는 여자들이 있다. 그들의 삶을 구분짓는 단계는 결혼이다. 결혼을 거치기 싫은 여자, 결혼을 거쳤으나 혼자 남겨진 여자, 결혼이 끝나고 혼자가 된 여자. 도시를 빽빽하게 채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노동으로 스스로를 부양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혼이라는 이상한 제도에 묶어있다.
도시는 노동자들에게 시간을 훔쳐가며 집을 빼앗으면서도 화내지 말라고 다그치는 말이 안되는 공간이다. 20년간 살아온 집을 앗아가고 지하철을 침수시켜 사랑을 가로막고 붉은 밥솥의 형태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녀들은 결혼이란 상처를 피하고 인정하지 않고 거기서부터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도시는 가만두지 않는다.
그들이 이 도시를 버티는 방법은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둠 속에서 빛을 상상하는 것'이다. 밤이 되면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도시가 꾸는 꿈처럼 상영된다. 꿈을 꿀 여유가 없는 낮이 지나고 어둠이 치열하고 못생긴 도시의 얼굴을 덮어준 때, '어둠 속에서 상상하는 빛'으로 그들의 꿈과 희망과 사랑이 속삭여진다. 도시라는 거대한 은하수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불빛들을 하나씩 세어본다.
이 영화 속 뭄바이의 영화적 공기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심심함을 달래려 의자를 빙글 돌리는 데서 왕가위의 홍콩 속 달콤씁쓸한 고독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에 고유한 것이 있다면 그 영화적 공기를 배양하는 재료로 다큐멘터리적 원료를 끌고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그 공기에 노동자, 여성, 밤이라는 집단의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적 톤은 뭄바이가 환상성을 얻을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한다. 이 영화의 환상은 사실이라는 단단한 땅이 있어야 떠오를 수 있는 구름 같은 것이다. 시선의 주체를 정하지 않고 정처없이 떠도는 카메라가 만든 뭄바이는 하나의 캐릭터에 종사하기보다 집단에 종사한다. 그리고 그 집단-노동자, 여성, 밤-이 승화해 구름처럼 떠오른 것이 이 영화의 독창성이라 할 수 있는 몽환적인 시퀀스들이다.
뭄바이에서의 1부, 고향 마을에서의 2부라고 할 수 있는 2부 구성은 영화적 공기에 예상하치 못한 습기를 더한다. 바닷가 마을로 이동한 영화의 2부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뭄바이에서 고향 마을로의 이동은,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의 끝으로 가는 정도로 급격하다. 이 변화는 거시적인 풍경에서 점점 내면의 풍경으로 스며든다. 도시의 불빛이 파도의 풍경으로 바뀌고 개별 목소리 대신 자연의 소리가 지배하고 세명의 여자는 술을 마시고 느슨해진다. 도시가 수많은 목소리가 섞여 만들어진 집단이 꾸는 꿈이라면 여기서는 그 주체가 셋으로 준다. 도시에선 이름 없는 목소리들이 불빛 위에서 자신의 꿈을 읊었다면 바닷가에서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동물의 울음 소리가 대신한다.
도시에 짓눌려 생긴 애환의 정서가 서서히 옅어지며 대신 술기운과 나른하고 습한 공기를 불어오는 파도가 흐른다. 이 자연은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장소다. 무언가 일어나는 걸 막고 계속 노동과 고독의 굴레로 밀어넣는 도시와는 다르다. 도시의 지하철이 방해했던 그들의 사랑을 동굴과 숲은 영롱한 빛으로 품어주고 멀리 떠나있는 남편이 돌아왔으면 했던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다.
여자는 남자를 구한다. 그녀는 철저한 직업윤리를 가진 간호사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이어지는 노인의 오해, 둘을 부부인가? 그것이 신비로운 주문인듯 어느새 오해에 취한 그들은 간호사와 환자에서 아내와 남편이 되어 대화한다. 이 환상적 장면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가장 작은 것부터 남자의 몸을 비추고 있는 전구의 빛, 선뜻 짐작하는 노인, 오해라는 마법을 수용하는 정글이다. 이제 그 남자는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이 된 중간적 존재다.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 사이의 그 남자. 이별과 만남 사이에서, 그녀가 도시를 버티기 위해 상상한 빛을 우리도 보게 되는 순간이다. 정글 속의 그녀는 빛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이 자연은 상상한 빛을 유령적 상태로 데려다 준다. 바로 다음 영화의 가장 압도적인 쇼트들이 이어진다. 땅거미가 지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정글의 이미지를 지배하는 열대의 사운드. 그 위로 읊조려지는 유령과의 이별. 열대의 후끈한 공기에 그녀가 직접 말을 거는 것과 다름없다. 정글 마법의 가장 큰 주체와 직접 마주하고 외치는 셈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꿈꿨어.'에서 '싫어.'로 바뀌었다. 마침내 그녀는 결혼이라는 깊은 잠에서 깬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 늦게까지 문닫지 않은 화려한 불빛 노상의 세명의 여자와 한 남자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고향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들의 욕망과 사랑이 한껏 일었다 가라앉은 밤, 거기에는 도시의 착각 속에 잊고 사는 평온함, 시대를 걸쳐 살아온 세 여자라는 생명의 우정이 남아있다. 여성의 세 개 시간대를 한 공간에 얹어놓은 듯한 그 신비로운 바닷가에서 결혼이란 임의적인 단계는 쉽게 흐려진다. 단지 '거기'도 아름답고 '여기'도 아름답다. 도시와 자연, 밤과 낮, 사랑과 이별, 육체와 정신. 모두 빛을 따라가면 아름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