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가 참 좋다. “너는 나한테 왜 그러니?”, “질린다.” 등 시간을 뛰어넘어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엮어주기 위해 반복적으로 쓰이는 대사들 모두가 인상적이다. 인물들이 하는 말들이 가장 가까운 가족, 연인 관계에서 쓰이는 꾸며지지 않은, 현실적인 말들이어서 반복됨에도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후 되돌아보면 1, 2부는 과거의 이야기고 3부가 현재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1, 2부가 3부라는 메인 스토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백스토리로 느껴지기 보다는 1, 2부를 보는 중에는 두개의 병렬적인 이야기로 느껴지게 짜여 있다. 과거를 다룬다는 힌트를 주지 않고 해당 챕터의 인물이 느끼는 현실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여러 시간대를 다루는 이야기는 각 시간대의 이야기의 비중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그 이야기 사이의 관계가 결정된다. ‘가족의 탄생’은 과거 이야기인 1, 2부를 3부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앞 두 챕터로 그려진 미라의 삶, 선경의 삶이라는 단단한 두 줄기를 잡고 3부에 진입하기 때문에 미라의 삶, 선경의 삶, 그리고 경석, 채현의 삶, 이 세 줄기가 엮여가며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으며(펄프픽션이나 디 아워스 같이 각각 서사들을 붙이는 구조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다) 가족의 탄생이라는 제목과 동일한 주제가 강력하게 두드러진다.
1부는 미라의 집을 떠나는 무신의 모습으로, 2부는 엄마를 잃은 선경의 후회와 그리움으로 끝난다. 이후 무신은 미라의 집으로 돌아가 채현을 같이 기르고 선경은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 경석을 기른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남자는 집을 나가 떠도는 존재이고 여자는 집을 지키는 존재다. 그리고 그 집에서 아이 또한 책임진다. 3부의 마지막에 미라의 가족과 선경의 가족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집을 지킨 여자들이 만들어낸 가족이다. 후회, 용서, 연민을 느끼는, ‘헤프고 구질구질한’ 여자들을 중심으로 완성된다(형철을 내치는 귀여운 마무리는 이를 더 공고히 한다). 역사가 묻은 집에 각자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반짝이는 눈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미지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말부의 전개 방식은 영화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다. 이전까지 미라, 선경, 경석, 채현 네 인물의 인생을 그 안의 행복, 비애, 모순, 그리고 관계의 미묘한 어긋남까지 굉장히 자세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에 비해 그들이 연결되어 이야기가 끝을 맺는 방식은 급하고 과하다. 미라와 무신 사이의 화해의 서사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생긴, 채현을 미라와 무신, 두명의 엄마가 길렀다는 작은 반전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 화해의 과정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전까지 쌓아 올린 뛰어난 인물묘사에 매료되었기에 지나치게 낙천적인 마무리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