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Nov 11. 2021

사랑하는 셋째에게

엄마는 반성중

땅콩아 엄마야.

우리 땅콩이 가 벌써 생후 18개월을 맞이하네.

누나가 이맘때쯤 어린이집에 갔는데, 누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았지만 그네도 서서 타고, 말도 알아듣고, 계단도 혼자 올라가고, 밥도 혼자 먹었었거든. 그래서 엄마가 큰 걱정 없이 일찍이 보낸 거 같아. 근데 땅콩이는 엄마가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코로나는 핑계고, 엄마가 너무 지쳐서, 한창 궁금한 거 많을 시기인데 자주 데리고 나가지 못했어. 밥 먹을 때 계속 핑크퐁 틀어주고, 국이랑 반찬도 줘야 하는데 배달 이유식에 형이랑 누나가 먹는 국에서 두부만 빼서 주고... 예전 사진 찾아보니까 엄마가 형아 밥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더라고. 형아는 국에도 두세 가지 재료 넣어서 끓이고, 반찬도 항상 3가지씩 만들어서 먹이고 그랬더라. 걷기 시작한 지도 5개월이 돼가는데, 이제야 양말을 보면 발을 들이 미는 널 보고 더 미안했어. 부지런히 나갔으면 네가 더 빨리 양말의 의미를 알았을 텐데. 어제도 오늘도 오전 10시만 되면 짜증인지, 흥인 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중문을 열고, 침착하게 현관으로 한걸음 내딛는 널 보면서 엄마는 또 반성했어. 그렇게 날이 좋았던 날들엔 엄마는 뭘 한 걸까. 엄마는 무엇 때문에 찬바람이 불고 나서야, 코로나가 덜 무서워져서는... 너의 즐거움을 그동안 누리지 못하게 했을까. 아무리 심장이 두근거려도, 어떻게든 널 위해서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미안해.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을 보면, 우리 땅콩이 가 얼마나 누리지 못했는지 보여서 마음이 무거웠어. 형아랑 누나가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겠지 생각했거든. 엄마 멋대로 생각해서 미안해.

어린이집 가려면 공갈젖꼭지랑 이별도 해야 하고, 숟가락으로 밥 먹는 것도 연습해야 하고, 계단 오르고 내리는 것도 익혀야 하는데  봄이 오기 전에 할 수 있을까?

형아랑 누나도 이맘때 쪽쪽이랑 이별했거든. 5일 정도는 울다가 잤어. 달래서 재우느라 힘들었지.  한 달을 울어도 엄마는 받아줄 수 있어. 첫 이별이라 힘들 거야. 엄마는 핑크퐁이랑 이별해야 하겠지? 손으로 음식을 누르고 던지고 매끼마다 전쟁을 치르기 싫어서, 엄마가 편하려고 그랬어. 형아가 대단했거든. 반경 1미터에 항상 밥알들이 뿌려져 있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바닥 치우는 것도 힘든데, 깔끔한 아빠가 그걸 못 참았거든. 저녁시간엔 그 모습까지 보려면 더 견디기 힘들었어. 그렇다고 계속 식사시간을 입 벌리고 밥 넣어주는 시간으로만 지내면 안 되겠지? 엄마가 많이 노력할게. 계단은... 이제 찬바람이 불어서 놀이터에서 연습하려면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데, 이건 네가 좀 도와줘야 해. 알지 알지. 어디서 봤는데, 뱃속에서 탯줄 감고 있었던 아이들은 목도리도 싫어하고, 목을 감싸는 옷들도 싫어한다더라. 땅콩이 너는 그래서인지 몸을 갑갑하게 하는 건 못 참잖아. 마스크는 엄마도 마음이 아프지만, 필수인 시대라 네가 강력하게 싫어해도 엄마는 씌울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벗지 말고, 익숙해지도록 해보자.

아, 낮잠이 한 번으로 줄고, 이제 8시면 잠들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엄마가 조절하려고 할 때는 안되더니 말이야. 너는 다 계획이 있는 아이라는 걸 또 깨달았어. 너희 누나도 단호박에 호불호가 강해서 대단했는데, 너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지. 짐작은 했지만, 매번 놀라. 다른 점이 있다면 누나는 끈질기게 원하는 걸 얻어내지만, 너는 상황 파악이 빨라서 너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떼를 쓰다가도 금방 미련 없이 포기하지. 그래서 또 놀라워. 방문을 닫고, 씩 웃으면서 어떤 장난을 칠지 둘러보는 것도 육아 인생 1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랍고 재밌어. 자다가 뒤척이며 온몸으로 엄마를 찾아 자석처럼 들러붙는 것도 네가 처음이야.

네가 찾아왔을 때 기뻐하지 않아서 미안해. 누나가 태명을 땅콩이라고 지어서 아들일까 봐 속으로 짜증 냈던 것도 미안해. 아들인 거 확인하고 운 것도 미안하고, 밤마다 자주 울었던 것도 미안해. 엄마는 너한테 미안한 거 투성이야. 그런데도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어 줘서, 잘 웃는 너라서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재접근기는 언제쯤 끝낼 거야? 한 달은 지난 것 같거든. 엄마가 한 달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미리 알려주면 안 될까? 안 되겠지?

땅콩아 엄마도 많이 웃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