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Oct 25. 2021

10대가 된 아들의 첫 외출

어렵다 어려워

 코로나보다 둘째의 심심해, 배고파 코로나 블루가 더 무서워 둘째는 친구들과 종종 놀이터에서 놀곤 했다. 하지만 첫째는 친구들과 만나는 곳이 학교가 전부였고, 예전처럼 친구 집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첫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켜서 권유조차 하기 어려웠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도 여전히 급식을 먹지 않고, 귀가한다. 그런 아이가 아주 오랜만에 사적인 모임을 했다.

토요일 오후 3시. 아이는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돈을 가지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놀다 보면 편의점과 떡볶이 가게는 필수인데, 아이는 돈을 거부했다.


"네 용돈 가지고 나가는 게 싫은 거야? 엄마가 5천 원줄 게. 일단 가지고 가봐. 다른 친구들은 다 돈 내고 사 먹을 텐데. 너만 안 먹는 거 보단 낫지 않을까? 네가 사줘도 괜찮고."


아이는 천 원짜리를 오백 원 동전으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물건을 사고 계산해 본 경험이 없다. 다른 친구들은 형들처럼 컵라면이 먹어보고 싶다며, 혼자 갈 테니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는데 첫째는 돈을 주고받는 행위조차 어려워한다. 아마도 안녕히 계세요. 까지 포함일 거다.


억지로 점퍼 주머니에 5천 원짜리를 쑤셔놓고 나오고 싶었지만, 테이블 위에 지폐를 두고는 5시가 되면 추워지니 들어오라는 말만 남기고, 남편과 막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돌다 보니, 놀이터 근처라 남편과  나는 아이 눈에 띌까 봐 멀찍이서 아이들을 보았다. 첫째 아이의 핸드폰으로 셋이 머리를 맞대고 게임 중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안 가지고 나왔나 봐."


11살 남자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모여서 게임하는 게 전부라 생각했던 터라 당연하게 들려 보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다른 엄마들이 원망하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한 바퀴 더 돌고 집에 가는 길에도 여전히 세 아이는 핸드폰에 빠져있었다. 4시 50분. 집에 와보니 테이블 위의 5천 원은 사라졌다. 아이에게 춥지는 않냐며 5시에 올 거냐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전화하고 싶었지만, 시간 약속을 어기는 아이는 아니라 기다려보았다. 5시에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조금만 더 놀고 5시 반에 귀가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5시 반에 귀가했고, 10대가 되어 처음으로 돈을 가지고 외출한 아들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던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질문을 퍼부었다.

"뭐하고 놀았어? 아까 멀리서 보니까 네 핸드폰으로 게임하던데. 친구들은 핸드폰 안 가져왔어?"


"응, 한 명은 없고, 한 명은 엄마가 게임한다고 두고 가랬대."


"그랬구나, 다음에는 너도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하나.. 놀이터에서만 있었어? 안 뛰어놀면 추웠을 텐데."


"..."


아이가 잠시 머뭇했다. 나는 너무 많이 물어본 건가 싶어서 잠깐 사이에 후회를 했다. 속으로는 말 안 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있었는데, 편의점에 다녀왔다고 말해주었다.


"친구가 쐈어. 애들은 컵라면 먹고, 나는 딸기우유 마셨어. 원샷."


친구들이 컵라면을 먹자고 했으나, 급식도 안 먹는 탓에 마스크를 벗고 실내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넘어야 할 큰 산이었고, 가뜩이나 저녁에 쫄면을 엄마에게 부탁해놨는데, 컵라면을 먹는다고 하니 난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쫄면은 포기가 안됐고, 다들 먹는데 안 먹고 있을 수는 없으니 딸기우유를 택한 것이다.


"찬 우유 원샷은 배가 아플 텐데. 마스크 빨리 쓰려고 그런 거야?"


아이가 끄덕인다. 컵라면을 같이 먹지 못한 게 나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 아이는 모른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가 허락하는 친구가 데리러 와야 오후 늦게 나가서 놀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이 용돈을 들고 나올 때도 나는 돈이 없었다.

매번 산으로 강으로 해가져야 집에 들어오던 여동생 덕에 나는 공주처럼 집에 있었다. 친구들이 저녁 늦게 모여 불꽃놀이를 하고, 그들만의 추억을 다음 날 등교해서 말할 때면, 나는 소외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았으면 해서, 핸드폰에 돈까지 쥐어 보냈는데. 이 아이는 나와 달리 자존감이 높아서 추가시간도 당당히 말하고, 남들이 컵라면을 먹을 때, 딸기우유를 원샷하며 자리에 같이 남아 주었다. 어린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친구가 사주는 컵라면을 먹으며 꽤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주머니에 돈은 없지, 먹기는 싫지만 거절하지도 못했을 거고...


아이가 나보다 나은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정작 아이는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왜 일까.


다음 날, 셋째가 잠들어 준 덕에 카페에 들러 남편과 아들의 외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5천 원을 가지고 나갔고, 편의점에 갔고, 친구들과 무언가를 먹기는 했으니 첫 외출에 그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예민한 아이라 경험이 중요한데 우리가 부족하긴 했다면서, 그래도 우리에게 얘기를 해주는 게 고마운 게 아니냐 여겼다.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잔을 가져다 놓고

 "잘 마셨어요.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하며 나오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나도 그랬어. 안녕히 계세요. 그 말이 어려웠어."


그러고 보니, 연애 때 단무지 좀 더 달라고 말하지 못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전화주문, 키오스크, 커피 주문, 배달앱 거의 모든 것이 어렵다. )


잡았다 요놈.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내가 별표 안 하고 최대한 풀어볼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